이한준 LH 사장이 20일 오후 강남구 LH(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LH 용역 전관카르텔 혁파 관련 긴급회의에서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뉴스1
대규모 철근 누락 사태 이후 전관 특혜 논란에 휩싸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철근 누락 발표 이후에도 전관 업체와 체결한 648억원 규모의 용역 계약을 모두 해지키로 했다. 전관 업체가 설계나 감리 용역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국토교통부와 LH는 20일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긴급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LH 전관 카르텔 철폐 방향’을 밝혔다.
LH가 철근 누락 단지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달 31일 이후 현재까지 전관 업체와 체결한 설계·감리 용역 계약은 총 11건, 648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설계 공모가 10건(561억원), 감리 용역이 1건(87억원)이다.
이한준 LH 사장은 “법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국민의 전관 배제 여론을 고려해 해당 계약을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달 31일 이후 입찰을 공고했거나 심사를 진행 중이나, 아직 낙찰자를 선정하지 않은 설계·감리 용역 23건(892억원)은 공고를 취소해 후속 절차를 중단하기로 했다. LH는 전관 업체 입찰 배제를 위해 내규를 개정한 이후 취소된 용역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퇴직자를 보유하지 않은 업체에 심사 과정에서 가점을 부여하고, 입찰 시 퇴직자 명단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은 즉시 시행하기로 했다. 또 기획재정부 특례 승인을 거쳐 전관 업체가 설계나 감리 용역에 참여하는 것을 원천 배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최근 5년 내 LH와 설계·감리 계약을 맺은 업체를 전수조사해 퇴직자 및 전관 업체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LH 퇴직자가 취업 시 심사받아야 하는 기업의 범위도 기존 ‘자본금 10억원 이상, 매출 100억원 이상’에서 넓히기로 했다.
그동안 LH는 2009년 출범 때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후 비리 사고가 터질 때마다 근절 대책을 냈다. 하지만 14년이 지나도록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비대한 조직과 광범위한 업무 범위 탓에 직원들에 대한 통제가 어렵고, 토지 수용과 용역 발주 등 막강한 사업 권한을 쥐고 있어 전관 로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LH 혁신안을 마련 중인 정부도 LH 조직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H의 권한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소유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토지를 강제 수용해 택지로 용도를 바꾼 뒤 아파트를 지어 분양까지 한다. 또 LH에서 연간 발주한 사업 규모는 작년 기준 9조9000억원으로, 1위 건설사인 삼성물산의 국내 수주액(9조3737억원)보다 많다. 이렇게 막강한 이권을 휘두르다 보니 기업들이 전관을 동원해 LH 직원이나 심사위원들에게 로비하는 카르텔이 형성됐다는 평가다.
정부는 건설 분야 이권 카르텔 혁파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10월 발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