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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라미란 "'나쁜엄마' 덕에 코미디 이미지 쇄신…배우 인생에 한 획 그었죠"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3.06.21 18:24

사진: 씨제스 제공

"이따 만나"라는 말처럼 뭉클한 말이 또 있을까. '나쁜엄마'를 봤다면 이 말이 또 얼마나 슬픈 말인지 와닿을 터다. 라미란 역시 '나쁜엄마'와 '진영순'을 떠나보내며 "이따 만나"라는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나쁜엄마'가 방송할 그 시간이면 헛헛한 마음을 느끼는 듯 "이젠 정말 보내줘야겠죠?"라고 추억을 곱씹은 그다.

'배우 라미란' 하면 코미디가 떠오른다. 전작에서 생활감 있는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온 그는 '나쁜엄마'에선 '엄마'라는 그 존재 자체에 집중했다. 극 중 라미란은 20대부터 50대에 이르는 시간의 영순을 직접 소화하며 순박한 새댁이 독해질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서사를 모두 표현했다. 시청자는 '라미란 아닌 영순은 생각할 수 없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배우들의 호연과 서사, 연출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지니 시청률은 절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3%대 시청률로 시작한 '나쁜엄마'는 최종회에서 12%(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사전 제작으로 진행된 작품이지만 매회 올라가는 시청률은 배우들과 제작진에게 큰 힘이 됐다. 라미란 역시 매 방송이 끝나면 시청률을 기다리기에 여념 없었다고 털어놨다.

"시청률요? 사실 매일 검색하고 매일 확인해요. 방송할 때는 어쩔 수 없어요. 분위기를 잘 봐야 하니까요. 저는 쓸데없는 것까지 다 찾아보는 성격이라서요. 반응을 보니 많은 분들이 '나쁜엄마'에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엄마로서 공감한다는 말, '강호 좀 그만 괴롭혀라' 하는 말도 많이 하셨고요.(웃음)"

사진: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나쁜엄마'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려는 아들 '강호'(이도현)가 의문의 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고 7살 지능으로 돌아가는 스토리로 모자 서사를 함께 엮어간다. 그 속에서 영순은 아들에게 가혹하기도 하고 하염없는 모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 엄마 라미란은 미숙한 엄마 영순에게 자신을 투영하기도 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순간들을 맞이하잖아요. 영순에게는 가혹할 만큼 정말 힘든 일이 많이 오는 게 사실이에요. 그 힘든 일 속에서 얻어지는 반전의 행복 같은 게 큰 것 같아요. 강호가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영순이) 아이가 다시 깨어나고 밥을 먹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오는 그 벅참을 못 느꼈을 거 아니에요. 죽을 것처럼 너무 힘든 상황이 어떻게 행복으로 바뀌어가는지, 그 과정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았어요. 순간순간들이 감동스러웠고, 되게 행복했죠."

"저도 엄마이지만, 아이를 어떻게 가이드 해줘야 하는지 저도 배운 적이 없잖아요. 결국에는 제 삶을 녹여내게 되는 것 같아요.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양육 태도도 달라지니까요. 그래서 사실 (영순이) 아이 밥그릇 뺏어가고 하는 건 너무 한 거 아닌가 싶었어요. 강호를 검사로 만드는 과정에서 너무 혹독하게 몰아붙인 것 같기는 해요.(웃음)"
아무래도 가족 서사가 짙은 작품을 소화한 만큼,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했다. 아들에게 자신은 "완전 좋은 엄마"라고 자신한 라미란은 "아들에게 전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거의 방치"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가족들은 저에게 관심이 없어요. 본인이 하는 일들이 바쁘니까 그러려니 해요. 아들도 주변에서 '나쁜엄마' 얘기를 많이 듣는다더라고요. 그래서 '봐야 하나' 싶었다는데 그냥 안 봐도 된다고 말했어요. 아들은 물론 남편도 제 작품은 안 봐요.(웃음)"
'나쁜엄마'의 인기 요인은 단연 절절한 모자 서사다. 극 중 아들 '강호' 역을 맡은 이도현과의 호흡이 좋지 않았다면 이 정도의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터다. 라미란은 이도현이 "보기 드문 청년"이라며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났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도현 씨 같은 친구는 근래 들어 처음 본 것 같아요. 그 또래 친구들 중에 그 정도 깊이를 보여주는 친구는 별로 없거든요. 작품 들어가기 전에 '오월의 청춘'도 보고 도현 씨 전작을 몇 개 봤는데 저는 20대인 줄 몰랐어요. '30대 초반 정도 됐겠다' 했거든요. 강호 역할이 되게 어렵잖아요. 30대 중반 검사 역할도 해야 하고 7살 아이도 해야 하고. 그때 도현 배우가 딱 떠올랐는데 역시나 너무 좋았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감정을) 주고받지 못한 채 연기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도현 씨는 진짜 제 눈을 보면서 연기를 다 받아치더라고요. 그게 너무 재밌어서 함께 연기하는 것 자체가 신났죠. 어느 순간부터는 서로의 눈물 버튼이 되었어요. 쉬는 시간에 장난치다가도 슛 들어가면 쑥 몰입되는 그런 경험이었어요. 도현 씨는 참 좋은 배우예요. 이런 감흥을 주는 배우는 많지 않다는 생각이거든요."
'나쁜엄마'는 영순을 주인공의 엄마쯤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모성의 다양한 면을 드러낸 스토리로 입체적인 엄마의 모습을 그려낸다. 라미란 역시 이런 점에 끌려서 작품을 택했다. 최근 여러 작품에서 중년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바, 자신도 그 대열에 함께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해했다.

"제가 '나쁜엄마'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배우로서 욕심이 나서였어요. 우리 작품은 영순의 사서가 쫙 펼쳐지잖아요. 다른 작품이었다면 아마 강호가 중심이 되고 영순은 그저 강호의 엄마로만 나오겠죠. 하지만 '나쁜엄마'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이었죠."

"아직도 언니들이 곳곳에서 주름을 잡고 계세요. 엄정화 선배님도 최근에 작품 정말 잘 되셨고, 김혜수, 전도연 선배님처럼 많은 언니들이 모두 자리를 탄탄하게 잡고 계신 덕에 이렇게 연령층이 넓어진 것도 사실인 것 같아요. 중년 이상의 캐릭터들도 많아져서 어떤 때는 젊은 배우들도 에이지를 올려서 배역을 맡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사진: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SLL,필름몬스터 제공

중년의 로맨스를 다룬 작품도 많아지고 있다. 로맨스 작품에 참여할 생각도 있는지 묻는 말에, 라미란은 멋쩍어 하면서도 제안이 온다면 마다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로맨스요? 제 로맨스를 누가 보고 싶을까요? 물론 보고 싶으시다면 모르겠지만요.(웃음) 저는 그냥 배우로서 어떤 것이든 재밌으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에요.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준비를 해야겠죠.(웃음) '일타 스캔들', '닥터 차정숙'을 보니까 그렇게 못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가능성은 있다고 봐요. 그렇게 열어 두고 좋은 대본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라미란은 '나쁜엄마'로 코미디적 이미지를 한 꺼풀 거둬냈다. 중견 배우 라미란에게도 변화가 필요했던 시점이었나 보다. 자신에게 '나쁜엄마'는 변곡점을 맞을 기회였다고 덧붙였다.

"'나쁜엄마'는 제 배우 커리어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된 것 같아요. 그동안 해왔던 작품에선 코미디를 많이 보여드렸는데, 그런 이미지도 쇄신시켜주고 배우로서 '라미란이 이런 모습이 있구나'하는 다양한 면을 대중분들께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였던 거죠."

'나쁜엄마'를 떠나보내는 와중에도 라미란은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공개를 앞둔 작품도 줄줄이다. 영화 '시민 덕희'와 '하이파이브', 티빙 오리지널 '잔혹한 인턴' 촬영을 마친 그는 차기작으로 드라마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을 촬영 중이다. 다양한 작품에서 보여줄 라미란의 또 다른 모습은 어떨까. 만능 배우 라미란의 활약에 기대가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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