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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금이 가장 행복한 나문희, '영웅'에 담은 마음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3.01.21 08:00

사진: CJ ENM 제공

"많이 늙었어요, 나.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끼도 없어요. 이제는 내가 사는 날까지, 관객이나 시청자들 만날 때까지는 열심히 해야 하는 거죠. 크게 바라는 건 없고, 항상 내가 움직인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뭐든 굳어지는 게 싫어요."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과 눈물을 모두 짓게 하는 사람이 있다. 수십 년간 무대 위에서, TV와 스크린 속에서 우리네 엄마로 있어준 나문희가 그렇다. 나문희는 영화 '영웅'을 통해 또 다른 엄마의 옷을 입었다. 무려 안중근 의사의 모친 '조마리아' 여사 역을 통해서다.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에 붙잡힌 아들에게 삶을 구걸하지 말라 말하는 어미의 심정을 덤덤한 노래로 전했다. 영화 '영웅' 시사회를 마치고 취재진을 만난 나문희는 극 중 아들의 수의를 만들며 부른 노래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직접 부르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나문희는 "깜짝 놀랐다. 내가 아직도 이런 힘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며 오랜만의 매체 인터뷰에 설렌 듯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인터뷰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면서 왔어요. 꼴이 심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머리해 주시는 분이 천연덕스럽게 가발을 넣어서 (머리를) 잘 해줬어요. 아까 사진 찍었는데 잘 나와서 좋았어요."
나문희는 영화 '하모니'에서 호흡을 맞춘 윤제균 감독의 러브콜에 응했다. 60년 연기 생활에도 '영웅' 속 '조마리아' 여사 역할은 쉽지 않은 배역이었다. 나문희는 여사님에 누를 끼칠까 망설여졌다고 운을 뗐다.

"윤제균 감독은 제안을 계속하시지도 않았어요. 그냥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라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나를 믿으니까 시켰겠지 하는 생각으로 했어요."

"그전엔 제가 조마리아 여사님한테 무슨 큰 관심이 있었겠어요.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하니까 이렇게 저렇게 찾아는 봤어요. 그런데 너무 엄청나서, 어떻게 자기 자식을 희생시킬 수 있었을까 저는 그 부분이 아직도 가늠이 안 돼요."
실제 아이를 키우고, 손주까지 본 나문희는 같은 엄마로서 조마리아 여사를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식이 마음먹은 일을 인정하고 믿어주는 것도 안전이 보장됐을 때 얘기다. 나문희는 극 중 사형을 앞둔 아들의 배냇저고리를 들여다보며 연기했던 그때를 회상했다.

"(아들이) 의병대장으로 가서 일본 사람한테 굴하지 않고, 죽을 걸 뻔히 아는데도 끝까지 해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저는 조마리아 여사님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아들에게 '굴하지 말고 네 큰 뜻대로 해라'하는 게. 그렇잖아요. 엄마는 아들이 열 살이어도 서른 살이어도 쉰 살이어도, 내 자식은 그냥 아이잖아. 나는 그거는, 내가 표현을 아무리 했다고 해도 (조마리아 여사에 비하면) 훨씬 못 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속으로는 울멍울멍해져요. 기가 막혔어요. 얼마나 (감정이) 복받쳤겠나. 그래서 별로 울지도 않았어요. 표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속마음이 많이 많이 슬펐어요. 말로 슬프다는 표현도 모자랄 만큼요."
나문희에게 '영웅'은 가족의 이야기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가족에게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고 집을 떠나는 안중근 의사, 그런 아들의 큰 뜻을 묵묵히 지켜봐 주는 엄마 조마리아 여사. 두 모자의 관계성이 작품의 한 축을 담당했다. 나문희는 감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기꺼이 가족을 꺼내 썼다.

"나는 상당히 깍쟁이예요. 대부분은 우리 식구들을 (상황에) 가정시키면서 연기해요. 그래서 조금 미안하기도 해요. 그럴 땐 부처님께 더 기도를 많이 해요. 이건 내가 연기할 때만 쓸 거니까 현실에선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요. 평소에는 염불 외우면서 딴 생각도 하는데, 노력할 때는 간절히 기도드려요.(웃음)"
나문희의 존재감은 극 후반부에 빛을 발한다. 그는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를 부르는 신에서 감정을 억눌러도 터져 나오는 그런 어미의 마음을 담아 라이브를 소화했다.

"노래를 라이브로 했는데, 나는 끝나고 나서 '나 참 잘 한 것 같아' 했는데, 윤 감독이 자꾸 더 하라더라고요. 그러더니만 결국엔 맨 처음 거를 쓰시고. 그러니까 결국엔 처음 나오는 감정보다 더 좋은 건 없었던 거죠."

"저는 이번에 알았어요. (언론시사회에서) 조재윤 씨가 윤 감독이 자기 연기할 때 내 노래를 틀어줬다고요. 그런 감정으로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하라고 했다는걸요. 그래서 그날 기분이 많이 좋았어요. 내가 하나 하기는 했구나 싶었거든요."

나문희는 원작 뮤지컬 '영웅' 속 조마리아 여사 역에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안 그래도 뮤지컬 '영웅'에서 정성화(안중근 역) 엄마로, 자주는 아니어도 어쩌다 한 번씩 뛰라고 했었어요. 근데 윤 감독이 영화 먼저 한 다음에 하라고 했어요. 절 도운거죠. 우선은 내가 (체력적으로)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연극은 아직 할 수 있어요 내가 나를 잘 조절해서. 그런데 뮤지컬은 못할 것 같아요.(웃음)"
올해로 83세인 나문희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재미에 산다. 작품에 예능까지 하더니 이젠 젊은이들이 많이 한다는 틱톡도 시작했다. "젊은 분들은 저를 '하이킥', '호박고구마'로 안다"며 소녀 같은 미소를 지었다.

"틱톡도 해요. 왜 하느냐면, 그거 하려면 일주일에 한 번은 준비를 하고 세상 사람들, 특히 애들하고 만나잖아요. 그게 재밌더라고요. 내가 이걸 하길 잘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요. 10월 4일부터 틱톡을 했는데, 젊은 사람들이 저를 호박고구마로 아니까 맨날 (댓글로) 고구마를 줘요. 저는 '호박고구마'가 너무 좋아요. 그런 가벼운 극요. 안중근이는 너무 무거워 무서워."

"예능요? 나 못 해~ 시청자한테는 정말 미안한데, 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하는 거예요.(웃음) 부담스러워서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 내 수준에 맞는 것만 하고 싶어요. 어느 날 '호박고구마'를 넘는 게 또 나오기를 바라기는 해요. '나와야겠다!'하는 의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러길 바라긴 해요.(웃음)"
여전히 소녀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나문희였다. 새로운 걸 마주한 눈에선 빛이 반짝였다. 60년 연기 생활을 하며 배우로서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었다. 나문희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죠. 미안하긴 하지. 나 하나를 위해 이렇게 여러분이 오셨으니까. 한편으로는 '내가 이렇게 존재감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원동력? 생각 안 해도 이젠 술술 나와요. 60년 동안 뭐를 해보세요. 벼르지 않아도 그냥 나와요. 난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나는 이 일을 아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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