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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몸값' 진선규 "제가 만든 울타리를 깨고 있어요"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2.11.19 08:00

사진: 티빙 제공

잔혹한 악역부터 코미디까지, 어떤 장르에서도 스며드는 연기를 보여준 진선규. 연극, 드라마, 영화할 것 없이 여러 장르를 섭렵한 그가 '몸값'에서 그 진가를 톡톡히 보여줬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은 서로의 몸값을 두고 흥정하던 세 사람이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에 갇힌 후, 각자 마지막 기회를 붙잡기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며 광기의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극 중 진선규는 주영(전종서)과 성매매하기 위해 가평의 한 모텔을 찾았다가 불법 장기 매매 피해자가 된 인물 '노형수' 역을 맡았다. 모텔방에 도착한 형수는 주영의 흠을 잡으며 '몸값'을 흥정하지만 이내 그는 정 반대 상황에 처한다. 주영이 불법 장기매매 경매사였고, 주영은 형수의 '몸값'을 장기 경매 입찰자들에게 흥정한다.

진선규는 욕망이 넘실대는 인간이자 가여운 생존자이기도 한 형수의 입체성을 유연하게 오갔다. 게다가 원테이크 방식으로 진행된 촬영임에도 쉴 틈 없이 내뱉는 대사로 웃음과 공감까지 잡았다.
티빙 오리지널로 선보인 미드폼(상영시간 30분 분량의 짧은 드라마) 드라마 '몸값'은 이충현 감독의 단편영화 '몸값'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은 형수가 장기밀매 피해자가 되는 것에서 끝나지만, 드라마에서는 지진 소재가 더해져 생존을 갈구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까지 그려냈다.

원래부터 원작의 팬이었다고 말한 진선규는 리메이크 제안을 받자마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소재도 소재이거니와, 원작 단편에서 보여준 원테이크 촬영을 시리즈에서도 차용했기 때문이다. 180여 분이 되는 분량을 쉼 없이 원테이크로 가져가는 촬영. 배우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일이었다. 고난이 눈앞에 훤했지만, 진선규는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전부터 '몸값' 단편을 아주아주 좋아했고 대단한 작품이라고 느꼈던 관객 중 한 명이었죠. 이걸 장편으로 한다고 했을 때, 단편이 생각나기는 했지만, 뒤쪽 이야기가 흥미롭고 재밌었어요. 이들이 하는 말이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는 게 궁금했어요. 시나리오 보자마자 하고 싶다고 연락을 드렸어요."

"카메라가 계속 움직이다 보니 저뿐만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이 어려움을 느끼셨을 거예요. 카메라 동선에 따라 다 움직여야 했거든요. 전날에 워킹을 연습하고, 촬영할 때는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집중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어요. NG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연습을 많이 했죠."
진선규는 원작과는 다른 톤의 '형수'를 완성했다. 원작 형수가 강압적인 인물이었다면, 새 작품에서는 정신없이 내뱉는 욕설과 촐싹대는 모습까지, 코미디적 면모가 강하다. 게다가 갑작스러운 지진 이후엔 줄곧 팬티 차림으로 등장한다. 비닐 로브나 재킷을 입는 순간도 있지만, 하의는 줄곧 벗은 채다. 부담스럽진 않았을지 궁금했다.

"형수가 원작 단편에서는 굉장히 좀 세고 무서운 인물이잖아요. 저는 이번 '몸값'에서 180분 6부작을 끌고 가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삭막하고 무섭기만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형수라는 인물은 순간순간 대처하는 게 어리숙하지만,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좀 라이트하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농담을 던질 수 있는 그런 성격을 플러스했어요."

"첫 촬영부터 팬티만 입고 있는 모습이 좀 민망하긴 했어요. 원테이크로 길게 찍다 보니까 어느 순간 무대 위에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짧게 끊어서 촬영하면 딱 찍고 부끄러워하고 했을 텐데, 길게 쭉 가니까 민망함이나 불편함이 없어졌어요. 계속 그러고 있다 보니까 춤도 추고 별 걸 다한 거죠.(웃음)"
형수는 주영에게 속아 죽을 뻔하지만, 지진이 난 후에는 주영과 공조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한다. 여기에 형수의 신장을 낙찰받은 '극렬'(장률)까지, 세 사람은 죽음밖에 남지 않은 공간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공조과 배신을 반복한다. 진선규는 그런 힘든 현장을 함께한 전종서, 장률 배우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아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전)종서 씨의 유니크함과 독특함이 굉장히 좋아요. 현장에서 나오는 감각을 잘 던지면 잘 받아주고, 그런 식으로 촬영했어요. (장)률이는 정말 섬세함의 극치를 달리는 친구예요. 상대를 배려하고 상대 배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강점을 잘 살려내는 스타일이거든요. 률이와는 모든 신, 모든 컷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촬영했었는데, 률이가 저에게 질문도 많이 했어요. 언제 한 번은 신을 언급하면서 '선배님, 이 장면에서 극렬은 코로 숨을 쉴까요, 입으로 쉴까요?' 묻더라고요. '얘가 이 정도로 섬세하게 생각하는구나' 싶기도 했는데, 나중에 '률아. 코로 숨 쉬든 입으로 숨 쉬든 아무렇게나 해도 되지 않을까?'라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함께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 아내 박보경의 반응은 어땠을까. 진선규는 "내용이 진하고 욕이 워낙 많이 나와서 아내 반응이 안 좋을 줄 알았는데,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여보, 진짜 너무 잘 만들었어. 정말 재밌다'라고 해줬어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러면서 결혼과 출산, 육아 후 비로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아내를 향해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일단 보경이가 다시 배우의 길을 조금씩 갈 수 있게 된 지금의 순간들이 행복하고, 제가 '범죄도시'를 찍었을 때 아내가 느꼈던 감정을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냥 좋은 마음인 거죠. 아내가 육아를 위해 살짝 접어놨던 꿈을 펼치는데, 현장에 대한 얘기를 즐겁게 하는 모습을 보면 묘하게 제 기분도 좋아져요. 보경이는 동료 배우로서, 와이프로서, 아이 엄마로서 100점이에요.
진선규는 요즘 가장 바쁜 중년 배우 중 하나다. 최근 몇 년 간 방송, OTT, 스크린 할 것 없이 종횡무진했다. 특히 얼마 전엔 처음으로 예능프로그램에 도전하며 작품에선 볼 수 없었던 '사람 진선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여전히 도전하고 열일하는 진선규는 그 원동력으로 가족과 동료들을 꼽았다.

"몇 년 동안 영화만 해왔어요. 그런 와중에 OTT도 하게 됐고요. 스스로 예능을 못하는 배우라고 생각해서 출연 제안이 와도 고사를 많이 했었는데, 이번에 해보니까 그냥 제가 만들어 놓은 울타리였던 것 뿐이더라고요. 영화를 하는 것처럼, 누군가와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이런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저를 보여드릴 수 있는 부분이 더 넓혀진 느낌이에요."

"너무 식상한 말일 수 있지만, 저는 제 가족과 동료들이 원동력이에요. 내 일에 열정을 쏟은 다음, 내 머리와 마음을 쉴 수 있게 하는 가족의 품이 있기에 저도 리프레시를 할 수 있고 힘을 낼 수가 있어요. 이 두 가지가 없으면 제가 연기할 이유도, 살아갈 이유도, 무언가를 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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