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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S60 급발진 재판, "EDR로 원고 과실 주장한 볼보, EDR 모순성 드러나" 논란

김혜란 기자 ㅣ lift@chosun.com
등록 2022.10.13 18:04

지난 12일 '볼보 급발진' 재판서, 증거 수집 의지 보인 재판부
볼보 측, 사건 주행 데이터 제출에 소극…재판부, 원고편에서 강경한 태도 보여

2020년 10월 29일 전 씨가 타고 있던 볼보 차량이 판교 청소년수련관 국기게양대를 들이받고 멈춰 섰다./네이버 카페 '판교 엄마들의 모임' 홈페이지 갈무리

볼보자동차의 ADAS(첨단운전자보조장치)가 급발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돼 사고 차주와 볼보자동차코리아가 법정 다툼중이다. 볼보코리아는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에 허점이 발견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볼보코리아는 신차 행사 등에서 ADAS 성능에 자신감을 나타내면서도 이번 재판에서는 이를 증명할 증거 감정을 회피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재판부는 원고의 감정 신청 내용이 부적절하다는 근거를 가져오지 않는 한 이견을 내지 말라며 볼보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최규연 부장판사)는 지난 12일 오전 볼보 S60 T5 차량(2020년식) 운전자 전 모 씨와 가족 3명이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이사 이윤모와 볼보코리아 공식 딜러사 에이치모터스 대표이사 황호진을 상대로 낸 2억원 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운전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차량의 ADAS가 오작동해 급발진 했다는 게 원고인 전 씨 측 주장이다.

지난 12일 '볼보 급발진 재판'이 진행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김혜란 기자

이날 재판부는 적극적인 증거 감정 의지를 보였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원고가 신청한 다양한 기술 감정 신청 현황에 대해 처리한 것.

특히 전 씨 측 법률대리인이 새롭게 추가한 감정 신청에 대해서도 적극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이날 전 씨 측은 EDR(Event Data Recorder‧사고조사기록장치)이 신뢰할만한 자료가 아니라면서 EDR의 모순성에 대해 면밀히 따져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볼보코리아 측은 EDR 기록상 전 씨가 가속 페달을 밟은 것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번 사고가 급발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던 터였다. 이에 재판부는 "피고(볼보코리아)가 EDR 조사가 아주 부적절하다는 근거를 들어서 내지 않는 한 채택할 것"이라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간 볼보 측은 원고가 감정 신청을 할 때마다 "객관적 사실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등으로 일관하며 재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전 씨 측 주장은 이렇다. EDR에 기록된 충돌 4.5초 전부터의 속도가 실제 주행 상황과 괴리를 보인다는 것. EDR 자료에 다르면 사고 차량의 속력은 충돌 4.5초 전 116km/h에서 94km/h로 줄어든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해당 시점을 분석한 결과 rpm(분당회전수)은 4200에서 6000까지 상승한다. 이 차의 제원상 5500rpm에서 최대출력인 250마력을 내기 때문에 속도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원고는 ▲블랙박스 ▲변속장치 작동 ▲오토홀드 작동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 ▲도로표지인식기능(RSI) 작동 ▲운전석 도어 경고음 작동 여부 ▲ASDM(Active Safety Domain Master) 분석 등에 대한 감정을 신청한 상태다.

이중 볼보코리아는 ASDM 감정 실시에 비협조적인 상황. 차량 운행 당시의 각종 데이터를 수집·처리하는 ASDM을 분석하면 ADAS가 어떻게 작동했는 지 알아낼 수 있어 이번 소송에서 핵심 단서로 꼽힌다. 특히 EDR 자료에 허점이 드러나면서 ASDM 분석이 더욱 중요해졌다.

ASDM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감정하자는 전 씨 측 주장에 볼보코리아는 해당 데이터를 추출할 장비가 국내에는 없어 스웨덴 본사로 보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전 씨 측은 회사가 자체 감정을 하게 되면 제대로 된 결과를 낼 수 없다며 맞섰다. 그러면서 볼보 본사로부터 추출 장비를 받아 오거나, 또는 미국 등으로 보내 감정을 받자고 제안한 상태다.

명칭은 다르지만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ADAS 작동데이터를 저장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테슬라는 카로그(Carlog) 데이터를 SD카드에 저장한다. 토요타는 VCH(Vehicle Control History)에 ADAS 정보를 담는다. 볼보는 ASDM이나 일부 차종에 대해서는 ASDR(Active Safety Data Recorder)을 통해 주행 기록을 저장한다고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이때 미국 미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오토파일럿(테슬라의 주행보조장치)으로 주행 중이던 테슬라 교통 사고 원인을 가를 때 이러한 카로그를 주요 지표로 삼았다. 해외의 자동차 포렌식 기관인 ARCCA 역시 토요타의 VCH를 통해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이런 업체들과 달리 볼보는 ADAS 정보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며 비밀주의로 일관하고 있다. 이에 업계 한 관계자는 "스웨덴에서 장비만 가져오면 쉬운 문제인데 왜 숨기려드는지 모르겠다"며 "앞으로 볼보 자율주행과 관련한 사고가 나면 기계가 아닌 사람 탓으로 몰고 가기 쉬워졌다"고 말했다.

소장에 따르면 전 씨는 2020년 10월 29일 오전 10시 43분께 경기도 판교 한 아파트 상가 앞 도로에 차량을 정차한 뒤 세탁물을 찾은 뒤 다시 운전석에 올라타 시동을 켰다.

시동이 걸려 있는 상태에서 차에서 내린 뒤 세탁소 옆에 있는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사 다시 차에 올라타 10초 정도의 통화를 하는데 갑자기 차가 굉음과 함께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전 씨 차량은 시속 30㎞를 준수해야 하는 어린이보호구역과 2~3개의 사거리, 신호등, 과속방지턱 등을 무시한 채 약 500m를 시속 120㎞로 달린 뒤 판교 청소년수련관 국기게양대를 정면으로 들이받고 나서야 멈춰 섰다.

이 사고로 전씨는 얼굴뼈, 목, 척추, 팔과 다리뼈 등이 모두 부러지는 최소 20주간의 절대 안정 및 입원치료가 필요한 중상해를 입었다. 전 씨 외에 다친 사람은 없었다.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보면 정차중인 차가 갑자기 출발하자 전 씨는 "이거, 이거, 안 돼! 안 돼! 안 돼! 아악. 아악. 아악!"이라며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전 씨측은 당시 운전대 등 차량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고, 결국 차를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는 게 전 씨 측 주장이다.

볼보코리아는 사고 차종인 S60의 후속 모델을 지난달 26일 공개했다. 이 자리에서 닉 코너(Nick Conner) APEC 총괄은 "한국에서 S60 시리즈가 전 세계 시장에서 세 번째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하는 등 한국은 볼보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장이다"고 말했지만 정작 ADAS 데이터 추출 장치는 한국에 구비하지 않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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