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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데뷔 17년차' 정일우, 스스로 타협하지 않는 배우가 되어가는 중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2.10.04 17:51

사진: 9아토ENT,제이원인터네셔널컴퍼니 제공

'돌아온 일지매', '해를 품은 달', '야경꾼 일지', '해치', 그리고 '보쌈-운명을 훔치다'까지, 정일우는 사극만 했다 하면 대박을 터트리는 자타칭 '사극왕'이다. 그런 정일우가 '굿잡'을 통해 '로맨스왕' 수식어를 겨냥했다. "로코를 한 지가 오래된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 로맨스적 면모를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 정일우. 전작 '보쌈'에서 호흡을 맞춘 권유리와 함께였기에 두 사람은 더 완벽한 로맨스 케미를 선보일 수 있었고, 이에 두 사람은 '환생커플'이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드라마 팬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굿잡' 촬영을 마친 정일우를 만났다. "인터뷰를 거의 4년 만에 한다"며 긴장했다고 말한 정일우는 데뷔 17년 차 배우답게 편안하고 능숙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ENA 드라마 '굿잡'은 방영 전부터 정일우와 권유리의 재회, 그리고 올해 대 히트를 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후속작으로 기대를 모았다. 이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묻자, 정일우는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좋게 생각하려고 했다. '우영우'라는 작품을 통해서 ENA 채널 인지도가 확 올라오지 않았나. 그런 부분에선 감사했다. 사실 부담감은 과거보다 현재가 더 크다. 동시간대 작품이 더 신경 쓰였지, '우영우'가 부담으로 다가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정일우는 "사실 한 번만 3%를 넘기면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3%도 넘기고 또 동시간대 1위도 해봐서 마음이 좋다"며 "'굿잡'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바는 다 이뤘다"고 미소를 지었다.
12부작인 '굿잡'은 촬영 기간이 1년이나 소요됐다. 촬영 초반 감독이 교체되는 일이 있었고, 정일우의 부상까지 겹쳐지면서 일정이 딜레이된 것. 정일우는 "대본 수정이 많아서 재촬영도 많이 했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없었다. 감독님과 회의를 하면서 더 좋은 신을 만들기 위해 대사를 수정했던 거라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것 같다"며 "기사에는 안 난 것 같은데, 제가 촬영 도중에 발목 인대가 끊어졌다. 오토바이 타는 신이었는데, 그래서 3주 동안 촬영이 딜레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굿잡'은 제작진과 배우가 함께 만들어가는 현장이었다.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감독과 세세한 부분까지 변주하며 그야말로 애정을 담아 완성한 신들이 담겼다. 정일우는 이런 현장 분위기 덕에 "'굿잡'에 영혼을 갈아 넣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감독님이 배우들의 역량을 많이 끄집어 내주신 것 같다. 감독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신데, 강민구 감독님은 배우들이 아이디어를 내면 함께 만들어주시면서 촬영을 하셨다. 특히 음문석 형의 아이디어가 굉장히 많았는데, 매 촬영 때마다 아이디어가 막 나오고, 감독님이 채택을 해주시면 배우들이 준비해서 해보곤 했다. 매회 배우들의 아이디어가 담긴 신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제목도 유리 씨가 지었다. 제작진 분들이랑 회의를 하는 도중이었는데, 원래 제목은 '나의 시크릿 파트너'였다. 어감이 좀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있었는데, 유리 씨가 ''굿잡'이 좋지 않겠냐'고 해줬다. 딱 들었는데 귀에 박히더라. 감독님과 제작사분들도 정말 좋다고 하셔서 '굿잡'이 됐다."
'굿잡'은 정일우와 권유리에겐 남다른 작품이다. 차기작에서 곧바로 같은 배우가 만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 두 번째 만남이니 호흡은 걱정되지 않았으나, 시청자가 느낄 수 있는 기시감 탓에 "서로에게 플러스가 될까 싶었다"고 털어놓은 정일우다.

"감독님이 유리 씨와 너무 해보고 싶다고 하셨었고, '보쌈'에서 워낙 큰 사랑을 받아서 차기작에서 같이 만나는 게 좋은 일일까 걱정도 있었다. 하지만 워낙 둘의 케미가 좋았고, 그걸 좋아해 주시는 시청자분들이 많으셔서 '현대극에서 유리 씨와 연기하면 훨씬 재밌고 새로운 걸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든든함이 있었다."

"'보쌈'과 '굿잡'의 로맨스는 결이 굉장히 다르다. 물론 신분도 달랐다. '보쌈'에서는 키스신이 없어서 시청자분들이 굉장히 아쉬워하신 거로 알고 있어서 이번 작품에서 키스신을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했다. 잠들어 있다가 깨어나서 키스를 하는 건데, 어떻게 해야 아름답게 그려질까 싶었다. 그러다 책상 키스를 해보자 했다. 최대한 조심스럽고 부드럽고 아름답게 그리려고 했다."
'보쌈'에서는 사극 초보인 권유리를 정일우가 리드했다면, '굿잡'에선 권유리의 에너지가 두 주인공의 호흡에 한몫을 했다. 정일우는 이번 작품에서 권유리의 더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유리 씨는 굉장히 다채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본을 보면서 어떻게 연기할까 싶은 부분을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보여주곤 했다. 유리 씨를 보면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라 유리 씨의 그 에너지, 밤샘 촬영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벌써 데뷔 17년 차, 30대 중반이 된 정일우는 "유일하게 싫증이 안 나고 아직도 모르겠고, 할 때마다 어려운 게 연기다. 그래서 계속 배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연기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16년 넘게 연기를 하니까 '지금도 재밌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싫증이 안 난다. 그만큼 연기가 좋다. 연기를 하면 본인과의 싸움을 하게 된다. 저는 요새 저랑 타협하지 않으려고 한다. 연기하며 시간적으로 쫓기다 보면 테크닉적으로 연기를 하려고 할 때가 문득문득 생긴다. 그럴 땐 '타협하지 말자. 이 시간은 돌아오지 않으니까. 후회 없이 하자'는 마음으로 연기하려고 한다."
정일우는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한 후, 쉴 틈 없이 달려왔다. 신예 시절부터 스타덤에 오른 그이지만, 정일우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은 채 지금에 온전히 집중하는 배우다. 잠시간의 휴식을 갖고 싶을 법도 한데, 정일우는 아직도 연기와 도전에 목말라했다.

"제가 나온 작품은 모니터링할 때 외엔 한 번도 찾아본 적이 없다. 과거에 연연하고 싶지 않고, 과거를 빨리 잊으려고 하는 편이다. 저는 항상 뭔가를 하고 있다. 작품을 안 할 때도 연극이나 팬미팅을 한다던지, 스케줄이 있어서 일에 몰두하는 때가 많다."

"당장 10월엔 일본 팬미팅 투어도 있고, '부산국제영화제'도 가야 하고, 11월 초에는 영화까지 개봉한다. 거의 연말까지 바쁘게 지낼 것 같다. 하루도 못 쉬고 일하고 있는데, 지금 하는 일에 더 열심히 몰두할 생각이다."
정일우는 자신을 더 내려놓은 채 '꾸밈없는 배우'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굿잡'에서도 좀 더 망가지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조금 아쉽다. '보쌈'과 'SNL'을 하면서 많이 내려놓기 시작한 것 같다. 배우가 굳이 멋있어 보여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젠 그런 것에서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정일우. 한 꺼풀 한 꺼풀 겉치레를 벗어내고 있는 그의 또 다른 변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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