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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윤박의 1˚C 덕분에

조명현 기자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2.04.09 00:01

'기상청사람들'에서 한기준 역(오른쪽)을 맡은 배우 윤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앤피오엔터테인먼트,SLL 제공

"그 중 기억에 남는 건 '1˚C' 였어요. 물이 100˚C에서 끓잖아요. 99˚C에서는 안끓는데 1˚C만 올라가면 끓는 것처럼, 조금만 더 다가가면 뭔가를 해낼 수 있는데 그 1˚C가 모자라서 실패하고 안 되고. 그런 것들이 많이 공감이 됐어요."

제목 그대로 기상청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JTBC 드라마 '기상청 사람들: 사내연애 잔혹사'에서 한기준 역을 맡은 배우 윤박이 말했다. 각자의 사연과 감정은 '기상청' 답게 날씨와 연결되어 펼쳐진다. '1˚C'는 결과를 완전히 달리하는 조금의 차이를 말하는 11화의 부제다. 1˚C 때문에 끓지 못하는 물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1˚C 덕분에 끊지 않을 수 있었던 물이 아닐까. 윤박이 '한기준'이라는 캐릭터에 정확히 1˚C만큼의 공간을 내어준 덕에 '한기준'은 온전히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기상청사람들' 스틸컷 / 사진 : 앤피오엔터테인먼트,SLL 제공

기준 역을 맡은 배우 윤박은 '기상청 사람들' 속에서 '먹구름'을 담당했다고 해야 할까. 하경(박민영)과 사내연애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연인으로 지내놓고, 결혼 직전에 파혼하고 유진(유라)이와 결혼해버린 분노유발자가 바로 윤박이 맡은 캐릭터 한기준이다. 윤박은 한기준 캐릭터가 처음부터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감독님을 만나 뵙고 거절하려고 미팅에 나섰다. 그런데 감독님의 말씀에 설득을 당했다.

"'원래 한기준이 나쁜 사람이 아니고, 좀 찌질한 사람이거든. 대본에 충실하면 오히려 위험해서, 네가 가진 성향으로 연기하면 동의는 받지 못해도 이해는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하셨어요. 그 말씀이 저에게 도전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한기준을 연기하면 과연 시청자분들이 그렇게 받아들여 주실까?' 궁금했고요. 제가 연기했는데, 기준이가 마냥 나쁜 놈으로만 그려졌다면, 도전에 실패한 거로 생각했을 거예요.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기상청사람들' 스틸컷 / 사진 : 앤피오엔터테인먼트,SLL 제공

반응은 뜨거웠다. 뜨겁게 욕을 먹었고, 전작 '산후조리원' 등에서 보여줬던 스윗한 윤박의 모습은 차갑게 잊혀졌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독특한 점이 있었다. 사람들이 '한기준'이라는 캐릭터는 욕해도 '윤박'은 용서했다는 점이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윤박이라서' 용서가 가능했던 한기준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도, 스스로 제 도전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너무나 감사하게도 감독님이나 주변 동료들도 '윤박이가 아니면 한기준이 안 됐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거든요. 정말 감사하게도요. 촬영 마치고 나서는 잘 못 느꼈는데, 시청자분들께서도 어떤 식으로든 좋은 반응을 주셔서 감사하고, 뿌듯한 마음이 컸어요. 주변 지인들의 연락도 기억에 남고요. 특히 '매형이 너 연기 늘었다고 칭찬하더라'라는 친척 누나의 연락이 기억에 남고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윤박이 한기준을 연기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둔 것은 "악의적으로 연기를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동했는가는 선과 악을 구분 짓는데 큰 작용을 하는데, 한기준의 이해 안되는 행동에 '악한 의도'를 보태고 싶지 않았다. "어느 정도 미워할 수 없는 기준이를 만들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윤박이다.

배우 윤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가장 중심축에 있는 건 유진(유라)이에 대한 사랑이었어요. 1부부터 16부까지 한기준은 유진이만 사랑해요. 정말 사랑하는데, 풀어가는 방식이 초반에는 안에서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유를 밖에서 찾고, 그래서 사고가 나고 갈등이 일어나고 오해도 생겼죠. 그런데 회차가 지나갈수록 문제를 밖이 아닌 안으로 가지고 오면서, 점차 성숙해지고 해결해나가는 모습이 그려지죠. 유진이를 사랑하는 것이 기준이의 첫 번째고요. 저는 기준이가 유진이를 사랑했다고 믿습니다."

"사람이 사실 관계 속에서 변화하잖아요. 저 역시도 가족과 만날 때, 회사 분들과 만날 때, 친구들과 만날 때 다 달라지거든요. 기준이도 그랬을 것 같아요. 유진이를 만날 때, 시우를 만날 때, 하경이를 만날 때가 모두 달랐을 거예요. 사람은 한 가지로 정의되는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바뀌는 거니까요. 사실 기준이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가는 건 아닌데요. 연기해서 표현해야 하는 만큼 최대한 많은 경우를 돌려보고, 상상해봤어요. 그래서 유진이를 사랑했기 때문에 하경이와의 관계도 연인으로서가 아닌 친구, 가족으로 접근을 하면 행동이나 말들이 풀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관계에 집중한 것 같아요."

배우 윤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사실 윤박은 한기준을 이해하지 못했다. 원형탈모도 왔었다. 한기준(윤박)이 그런 식으로 하경(박민영)을 떠나고, 유진(유라)과 결혼 후에 하는 행동들이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기준을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자신인데, 그 마음이 너무 어려웠다. 스트레스는 원형탈모 증상으로 나타났다.

"어쨌든 저는 해내야 하잖아요. 그거 아세요? 하기 싫어서 눈물 날 것 같은 거. 그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저는 몰랐는데 헤어 스타일링을 해주시는 분께서 '박아 원형탈모 온 것 같아'라고 말씀해주셔서 알게 됐어요. 그 이후로 탈모 병원 가서 원형탈모 부위에 스테로이드 주사도 맞았어요. 두 달 반 정도 지나서 나아졌어요. 지금은 괜찮고요. 산재처리는 제가 프리랜서라 안된다고 합니다.(웃음)"

배우 윤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애증의 사이를 보여줘야 하는 유라와 박민영과의 사이는 좋았다. 윤박은 "평상시 편하게 농담을 주고받고 하다 보니, (박민영) 누나랑 싸우는 것도 호흡이 잘 맞았고요. 기준이가 하경이 한 마디면 쭈그리가 되는 게 제 평소 모습 같았어요. 누나한테 여러 말을 하다가도 한 마디에 쭈그리가 되거든요. 평상시 지낸 부분이 싸움 케미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라고 웃으며 촬영 현장을 회상했다. 친구 사이였던 유라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듣고 우리가 어떻게 부부 연기를 하느냐고 걱정도 많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애정씬은 별로 없더라고요. 부끄러운 건 면했고요.(웃음) 유라가 열심히 준비해오는 스타일이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씬을 만들어간 것 같아요. 제가 좀 더 서포트를 해줬어야 했는데, 저도 부족한지라 유라한테 미안하죠."

배우 윤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원형탈모까지 얻을 정도로 한편으로는 힘들었고, 도전에 박수를 받았으니 한편으로는 뿌듯한 작품일 수 있다. 윤박에게 '기상청 사람들'은 어떤 작품으로 남았을까.

"하나 남은 건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를 얻은 것 같아요. 그전에는 부끄럽고, 제가 한 것에 믿음도 덜 갔거든요. 그런 부분이 시청자분들께도 다 보이는 것 같아요.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연기를 잘해도 못해 보이고, 연기를 못해도 자신감이 있으면, 잘해 보인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자신감과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과정이 순탄하다고 좋은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과정이 복잡하다고 나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저 스스로를 돌아보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윤박의 날씨는 '쨍쨍'하다. 바닷가에 휴가 나와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이 휴가를 빨리 끝내고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다.

"제가 영화 쪽을 많이 못했었어요.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영화도 할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러브콜을 보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갖춰 입고 정형화된 캐릭터보다는 좀 더 캐주얼하게 옷을 편하게 입고 날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를 해보고 싶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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