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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지자체, '이건희 미술관' 유치 총력전

김동성 기자 ㅣ estar@chosun.com
등록 2021.06.15 11:51

서울과 비수도권에 낀 경기도···도내 국립박물관·미술관, 서울에 10곳, 충남에 1곳 적어
수원·용인·평택 등 삼성과 인연 강조···오산은 부지와 운영비 지원, 파주는 반환미군공여지 내놔
미술계 "관람객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근대미술관' 건립해야"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들이 사회공헌 계획에 따라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기증품/조선DB

'(가칭)이건희 미술관' 건립 입지를 놓고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들이 앞다퉈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경기도 내 지자체들은 삼성과의 연관성 등을 내세우며 '이건희 미술관' 유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동안 서울시나, 비수도권 지자체와의 경쟁에서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만큼 이번에는 유치에 성공할 지 관심이 쏠린다.

15일 도내 지자체 등에 따르면 수원시를 비롯해 용인·평택·오산·의정부·파주·과천시 등 7곳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로 따지면 경기지역을 포함, 세종시, 부산시, 전남 여수시, 경남 진주시 등 약 20곳에 이른다. 일부 지자체는 유치를 위해 지역 간 공조에 나섰고 일부에서는 유치위원회까지 가동한 상태다.

하지만 이건희 미술관 건립을 검토 중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서울시에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제공할 수 있는지 문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유치에 나선 지자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서울시에 송현동 부지에 대해 문의를 한 것 뿐"이라며 "미술관 건립에 대해서는 전문가 자문을 받고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여러 지자체 요청도 살펴보고 있다"고 해명했다.

문체부가 이건희 미술관 건립과 관련, 서울시에 문의하면서 끓어오른 경기도 내 지자체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서울과 같은 수도권, 비수도권과는 '균형발전론'···상대적 홀대받는 '경기도'

경기도는 서울시와 인접해 있고 비수도권 지자체와의 경쟁에서는 '균형발전론'에 밀리다보니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체부에 따르면 국내 국립박물관·미술관은 총 54곳으로, 전국 17개 시·도 중 서울시가 16곳으로 가장 많았고 충남 7곳, 경기 6곳, 전북 4곳 순이다.

경기도 인구는 약 1400만명으로, 서울시(약 959만명) 보다도 인구가 약 441만명 더 많지만 국립박물관·미술관은 10곳이 적다. 이는 경기도 내 국립박물관·미술관 1곳 당 도민 약 223만6000명을 담당하는 반면, 서울시 내 국립박물관·미술관 1곳 당 시민 약 59만9000명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도 내 국립박물관·미술관은 인구 약 211만명의 충남보다도 1곳이 적다.

경기도에 위치해 있는 국립박물관은 포천 수목원산림박물관(1987년 4월5일), 고양 여성사전시관(2002년 12월9일), 수원 지도박물관(2004년 11월1일),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2017년 5월15일), 파주 6·25전쟁납북자기념관(2017년 12월5일) 등 5곳, 국립미술관은 과천 현대미술관 1곳(1986년 8월25일) 등 총 6곳이다. 포천 수목원산림박물관 조성 이후 고양 여성사 전시관까지 15년이 걸렸고, 수원 지도박물관과 여주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사이에는 1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경기도 내 대부분의 국립 박물관들이 2000년도가 넘어서 조성된 것이다.

비수도권 지자체들은 삼성가의 인연과 지역 내 문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균형발전론이 어김없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앞서 여주시는 2015년 인천·세종시와 함께 세계문자박물관 유치에 뛰어들었으나 결과는 인천시에 돌아갔고 철도특구인 의왕시는 2016년 철도박물관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지자체 간 과열경쟁 탓에 철도박물관 계획이 무산됐다. 화성시는 2009년 경기도의 지원을 받아 자연사박물관 유치 신청을 제출했으나 정부의 내부 결정에서 탈락했다.

의왕시 관계자는 "시는 철도특구이면서 한국철도공사가 운영 중인 철도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시는 철도축제 등 철도 관련 사업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국립 철도박물관 유치에 큰 기대를 걸었다"며 "시는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가졌음에도 당시 유치전에 나선 지자체들 간 과열 경쟁으로 국토교통부가 사업 계획을 중단했다. 현재까지도 국토부는 박물관 건립 계획이 없다고 하지만 다시 철도박물관을 유치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경기지역 지자체 7곳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 참전···'균형발전론' 뚫고 건립 성공할까

이에 수십여 년 간 서울시와 비수도권 지역과의 경쟁에서 균형발전론에 밀려 고배를 마셨던 경기도 내 지자체들이 이번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부지를 제공을 내세우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다.

경기지역에서 가장 먼저 유치전에 뛰어든 곳은 수원시다. 수원시는 삼성전자 본사와 사업소가 위치한 데다, 이 회장의 묘역도 수원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 이건희 컬렉션 중에는 '화성능행도', '환어행렬도', '화성성역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관련한 작품들이 다수 있는 것도 유치 명분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용인시는 삼성전자 기흥공장과 고 이병철 회장의 소장품이 있는 호암미술관, 에버랜드가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용인시는 이건희 미술관까지 조성되면 삼성가가 대를 이어 수집한 미술품 관람 투어도 가능할 것이라며 유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삼성반도체 공장이 위치한 평택시는 평택호 관광단지,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구역, 고덕국제신도시 등을 후보지 검토 대상에 올렸으며 과천시는 정부과천청사 유휴부지를 활용한 4000호 주택 공급 정책에 반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나섰다.

경기 오산시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내삼미동 내 공유지 모습/오산시 제공

삼성가와 인연은 없는 오산시는 시 소유 부지와 사통팔달의 교통여건을 강점으로 적극적인 유치전을 펼칠 예정이다. 오산시는 문화・관광단지로 조성되고 있는 내삼미동 내 3만8961㎡를 소유하고 있어 복잡한 행정절차 없이 바로 이건희 미술관 착공이 가능하며 운영비까지 전부 부담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내삼미동은 봉담-과천 간 고속도로 북오산IC에서 1㎞ 거리밖에 되지 않으며 경부고속도로, 전철, 고속철도 및 국도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최적의 교통망을 갖추고 있다.

파주시는 근린공원 조성사업이 추진되는 반환미군공여지 캠프 하우즈에, 의정부시는 예술인마을과 문화예술복합단지로 도시계획에 반영돼 있는 캠프 잭슨에 각각 이건희 미술관 건립에 나섰다. 안산시는 이건희 회장 소장 미술품 가운데 단원 김홍도와 관련한 작품이 안산으로 올 수 있도록 해달라고 문체부에 요청했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선 한 지자체 관계자는 "경기도는 수도권이라고 하지만 서울과 비수도권에 끼어 있는 위치다 보니 균형 발전에 대한 피해를 받아 온 것도 사실"이라며 "경기도는 서울시보다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만큼, 도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국립 문화시설도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건희 컬렉션'은 그 가치가 뛰어난 만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는 위치와 교통, 주변 인프라가 조성돼 있어야 한다"며 "문체부는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도전하는 지자체에 대한 현장 실사를 통해 공정한 선정 결과를 보여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미술 전문가 "이 회장 컬렉션 대부분이 근대미술품, 작품 모아 근대미술관 건립해야"

전문가들은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국가에 기증한 예술품들을 한곳에 모아 관람은 물론, 연구·관리가 함께 이뤄질 수 있는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보이고 있다.

미술계 인사 약 380명이 참여한 '국립 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달 27일 발족식과 세미나를 열고 '이건희 컬렉션'을 보여주는 '이건희 미술관'이 아니라 기증 작품을 포함한 근대미술품을 모은 국립 미술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 형성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시기인 근대의 정신과 물질을 상징하는 국립 근대미술관의 존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때마침 근대의 위대한 유산이 포함된 이건희 소장품의 국가 기증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계기를 역사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의 모습/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 제공

각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미술계는 삼성가에서 기증한 근대미술품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근대미술품 약 3000점을 모아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안미희 경기도미술관장은 "현대미술관은 있는 반면 근대미술관이 없다.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90% 이상이 근대미술품인 만큼 근대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것이 미술계의 중론"이라며 "각 지역마다 미술관 유치에 나섰는데, 작품 관리를 잘 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이 기증품들은 자료의 가치가 높은 만큼 관람은 물론 연구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근대미술관 조성은 입지가 중요하다. 관람객이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교통이 편리하고 해외에서도 와서 볼 수 있는 곳이 선정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회장 유족들은 이중섭의 '황소',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문화재와 미술품 약 2만3000점을 기증했다. 김종영·허백련·박수근 등의 작품 일부는 작가 연고지가 있는 지자체 박물관과 작가 미술관에 기증됐다.

문체부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각계 의견을 수렴 중에 있으며 이달 중 이건희 미술관 신설을 위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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