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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30년만에 마무리…경찰 "머리 숙여 사죄"

권혁민 기자 ㅣ hm0712@chosun.com
등록 2020.07.02 10:54

살인 14건·강간 34건 범행 자백…"싸이코패스 성향 뚜렷"
8차 사건 억울한 옥살이 윤모씨는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사과하는 배용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장/권혁민 기자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잔인하고 영원한 미제로 남을뻔한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가 2일 마무리됐다. 

최초 수사가 시작된 1986년 이후 3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춘재가 14건의 살인과 9건의 강간을 저지른 이유는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연쇄범행을 한 것으로 최종 결론났다.

모방범죄로 알려지며 진범 논란을 빚은 8차 사건은 수사 참여 경찰관 및 검사 등 8명에게서 직권남용 감금 등의 사실이 확인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일 오전 10시 지방청 강당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종합 수사 결과' 브리핑을 열었다.

배용주 청장(치안정감)이 브리퍼로 나서, 직접 그간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과거의 잘못 사죄한 경찰

2020년의 경찰이 30년전 경찰의 잘못에 사죄를 했다.

배용주 청장은 사건 수사 개요 브리핑에 앞서 "이춘재의 잔혹한 범행으로 희생되신 피해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유가족분들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애도와 위로를 전했다.

이어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씨와 그의 가족, 당시 경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해 피해를 입으신 모든 분들께도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며 과거 경찰의 잘못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춘재의 고교 졸업앨범 사진/조선DB

연쇄범행에 대한 결론

이춘재가 자백한 총 14건의 살인사건(1986년9월15일∼1991년4월3일)은 시간적으로 그가 군대 전역(1986년1월23일) 이후부터 발생했다.

장소적으로는 이춘재의 출생·학교·직장 등 연고가 확인되는 지역으로, 발생의 시기와 장소가 그의 행적 및 생활반경과 일치했다.

이 중 5건의 살인사건은 30여년이 지났지만 증거물에서 DNA가 검출됨으로써 이춘재의 범행임이 명백해졌다. DNA가 검출되지 않은 9건의 살인사건도 자백의 임의성과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된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당시 현장 상황을 합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게 하는 등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고, 진술 내용의 핵심적인 부분이 과거 수사기록과도 부합했기 때문이다.

이춘재는 34건의 연쇄 강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가 자백한 34건의 강간사건이 발생시기와 지역이 연쇄살인의 시기·지역과 일치했다. 경찰은 범행수법의 유사성으로 봐 연쇄살인과 묶여진 일련의 범행이며, 이춘재가 자신의 실제 범행을 자백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의 강간사건만을 이춘재의 범행으로 확인했다. 이는 나머지 25건의 강간사건도 이춘재의 실제 범행으로 판단되지만 살인사건에 비해 진술의 구체성이 떨어졌다.

또 발생 당시와는 많은 지형적 변화가 있어 정확한 범행 일시 및 장소 특정이 어렵고, 피해자가 진술을 원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추가 혐의를 밝혀내지 못했다.

경찰 "이춘재는 사이코패스 성향 뚜렷"

경찰은 이춘재의 심리특성과 범행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전국에서 프로파일러를 소집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자신의 삶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군대에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인 역할을 경험하게 됐다.

군 전역 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의 상태에서 상실된 자신의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성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됐다.

성범죄가 살인을 이어가며 죄책감 등의 감정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감정상태에 따라 살해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점차 범행수법도 잔혹해졌고 가학적인 형태로 진화했다.

이춘재는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한 것으로 결론났다.

그는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며 반성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으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했다.

동시에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언론과 타인의 관심을 받고 싶어했다.

경찰은 이춘재의 범행동기에 대해 '욕구 해소와 내재된 욕구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가학적 형태의 범행을 한 것'으로 최종 결론냈다.

8차 사건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권혁민 기자

8차 사건의 결론…윤모씨의 억울한 옥살이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에서 13세 박모양이 자기 집에서 성폭행을 당한 뒤 목 졸려 살해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윤모씨를 범인으로 검거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윤씨는 20년간 옥살이를 했다.

이번 조사결과, 당시 경찰이 윤모씨를 임의동행한 후 구속영장 발부 전까지 3일간 법적 근거 없이 경찰서에 대기시키며 조사하는 등 부당하게 신체를 구금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사과정에서 폭행 및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 허위의 진술서 작성 강요, 조서 작성시 참여하지 않은 참고인을 참여한 것처럼 허위의 공문서를 작성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 및 담당 검사 등 8명을 직권남용 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끝나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지난 2월 검찰에 송치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초등생 김모양 실종사건은 당시 경찰이 실종된 피해자의 유류품을 발견했지만 유족에게 알리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피해자의 유골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닉한 혐의가 상당하다고 판단, 당시 형사계장 등 2명을 사체은닉 및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끝나 '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검찰 송치 예정이다.

"이춘재 잡을 기회 3번 있었다"

과거 총 세 차례에 걸쳐 이춘재에 대한 수사가 진행됐다.

1차는 6차 사건(1987년5월26일) 발생 이후인 1987년 7월께 1986년 8월께 발생한 별건의 초등학생 강간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를 수사했다. 그러나 구체적 증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2차는 8차 사건(1988년9월16일)을 수사 중이던 1988년 11월께 1차 수사가 미진했다는 이유로 재수사에 착수해이춘재의 음모를 국과수에 감정의뢰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의 혈액형은 B형이었으나 이춘재는 O형으로 배제됐다.

국과수는 당시의 감정결과에 대해 '모발의 경우 혈액형 항원이 극미량으로 존재하고, 당시 감정기법으로는 항원 분비량의 차이 등 모발 특성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3차는 1989년7월7일 발생한 초등생 실종사건 관련해 1990년 1월께 이춘재를 수사했다.

그러나 6차 사건에서 확인된 용의자 족장(255mm)과 이춘재의 족장(265mm)이 불일치하다는 이유 등으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영원한 미제로 남을뻔한 이춘재 사건은 처재 살인사건 피의자로 수감 생활을 하던 이춘재의 존재가 지난해 8월 세상 밖으로 알려지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57명 정원의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려 지난해 9월부터 올 4월까지 52회에 걸쳐 이춘재를 접견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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