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복지사회와 나눔의 중요성 '상호협조적 동반자적 관계'

  •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

    입력 : 2019.03.29 09:45

    사진제공=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

    21세기의 복지는 국가가 전담하는 방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20세기의 복지국가가  정부 주도의 복지체제를 의미한다면, 21세기의 복지사회는 정부와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의 나눔 사이의 상호협조적 동반자적 관계를 요구한다. 이는 단순히 정부의 복지에 대한 책임을 기업과 시민사회에 전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21세기에 다양화되고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복지국가 개념으로는 역부족이라는 필연성에서 나온 개념이 복지 다원주의에 입각한 복지사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나눔 수준은 아직 낮은 편이다. Charities Aid Foundation이라는 기관에서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 의하면 2018년 기준으로 한국은 전 세계 142개 국가 중 나눔의 수준이 60위에 머물고 있다. 일 인당 국민소득 3만불과 세계 경제 순위 10위권 대의 경제 수준에 비하면 나눔의 수준은 상당히 미약한 형편이다. 우리 사회의 나눔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책임 의식이나 시민의식보다는 동정심과 측은지심에 기반을 둔 공공부조형 나눔에 머물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나눔의 대상과 방식도 상당히 제한적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대상에 대한 나눔은 여전히 미약한 수준이다. 단순한 동정심 차원이 아닌 사회구성원으로서의 건강한 책임의식에 근거한 나눔의 정신이 보다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나눔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홍보의 노력이 필요하다.

    나눔 활성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가 나눔 활성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제도 정비를 통하여 나눔 활성화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우선적 과제로는 나눔과 관련된 각종 법안의 정비다. 현재 나눔과 관련된 법령은 기부금품법, 세제 관련 법률 등 개별법에 내용이 산재해 있어 관련 법률 내용 간에 상충하거나 모순되는 경우도 많다. 기부와 자원봉사 등을 다루는 나눔정책과 프로그램도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어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나눔 활성화 정책을 기대하기도 힘든 형편이다. 기부를 포함한 나눔 전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나눔 관련 법령과 정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나눔 활성화를 위한 정책의 기본적인 방향을 수요자 중심적인 관점에서 규제 위주의 법령과 정책에서 활성화 위주로 변경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체적으로는 기부금품 모집활동에 대한 사전규제는 대폭 완화하되, 사후 관리 및 정보공개를 통해 모집단체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때 모집단체의 투명성 제고와 함께 기부된 자원의 용도와 그 효과성에 대한 정보도 공개돼 기부자의 기부동기를 제고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나눔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기부금에 대한 세제 혜택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14년에 기부금에 대한 세제혜택 유형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변경한 바 있다. 세액공제의 경우는 고소득자의 기부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을 줄여 기부 동기를 약화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참고하면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한 재논의도 필요하다.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은 세수 감소를 상쇄하는 기부 증가의 효과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부금에 대한 세금감면 혜택 축소는 보다 신중히 검토돼야 한다. 오히려 세금감면 혜택 등의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어떻게 하면 나눔을 장려할 수 있을지가 논의의 초점이 될 필요가 있다. 세금감면 혜택의 축소를 통해 세수를 늘려 국가의 사회복지지출을 증가시키는 것이 자칫 나눔의 감소로 이어진다면, 정부의 사회복지지출과 나눔 사이에 대체적 관계를 구축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나눔 활성화를 위해서 새로운 방식의 기부와 사회적 투자 모델을 제도화하는 것도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예로는 Social Impact Bond(SIB) 형식의 사업을 들 수 있다. SIB는 일종의 사회적 투자 프로그램으로 기업이나 재단 등 민간기부자와 정부 간의 계약을 통해서 기부자가 효과성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 복지사업에 투자하고 정해진 기간에 그 성과가 입증되면 투자액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방식이다. 기부자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에 투자한 자원에 대해 정부를 상대로 일정의 채권을 가진다는 의미에서 채권(bond)이라는 개념을 적용한 프로그램이다. 나눔의 결과에 대한 효과성에 초점을 둔다는 점, 그리고 기부자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에의 기부는 정부로부터 돌려받아 다시 기부할 수 있어 기부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정부의 입장에서도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프로그램에의 직접적인 공적 자원의 투입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한 전략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

    간접적인 차원에서는 정부의 나눔 문화 확산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교육 분야에서 나눔 교육을 제도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점에서는 나눔의 세대 간 전승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린 시기의 나눔 경험이 축적되고 내면화되는 학습 과정을 통해 성인기의 나눔 행동으로 구현된다는 것이다. 아동 및 청소년 시기의 나눔 교육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눔 문화의 활성화에 미치는 영향은 큰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초중등 교육과정에 나눔 교육을 제도화하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나눔 문화의 확산에 필요하다.

    한국 복지사회의 복지의 총량은 공적 사회복지지출, 민간부문 사회복지지출, 그리고 나눔의 수준으로 결정된다. 이때 각 영역의 책임이 다른 영역의 책임을 대체하는 방식은 복지의 총량을 늘리는데 비효율적이다. 문제는 각 영역 간의 협력적인 상승효과를 어떻게 도출해내 궁극적으로 복지의 총량을 늘림으로써 복지사회로 갈 수 있는가이다. 건강한 복지사회를 위한 나눔의 활성화가 중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