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인지적 구두쇠'… 믿는 제품 있으면 굳이 다른 것 안 찾아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안서원 교수

    입력 : 2018.07.05 03:00

    [2018 소비자가 선정한 품질만족대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경영학과 안서원 교수

    [2018 소비자가 선정한 품질만족대상]

    한 7~8년 전의 일이다. 평소에는 잘 쓰지 않는 봉할 수 있는 비닐봉지를 아이 생일날 유치원 친구들에게 나눠줄 간식거리를 담기 위해 샀다. 그리고 일 년 뒤 아이의 생일이 다가와 다시 비닐봉지를 꺼내니 개수가 적어 보인다. 그래서 똑같은 것으로 하나를 더 사다두었다. 1년 만의 재구매인 것이다. 그리고 간식거리를 준비한 후 담기 시작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나온 같은 브랜드, 같은 크기의 비닐봉지인데 비닐이 현저하게 얇아졌다. '어라… 같은 제품인데 일 년 사이에 이렇게 달라졌네…' 그 때 느꼈던 감정을 말로 표현하자면, 적절한지는 모르겠으나 배신감이 제일 가까운 것 같다. 사람도 아닌 제품한테…

    소비자행동에서 나오는 개념 중 차이식역(差異識閾)이라는 것이 있다. 사람의 감각기관은 감지할 수 있는 자극의 범위와 강도가 있다. 우리는 가시광선만 볼 수 있고, 맑은 날 밤 약 48㎞ 떨어진 곳의 촛불은 빛이 있다고 감지할 수 있지만 더 멀리 떨어진 불빛은 감지하지 못한다. 자극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모든 차이를 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변화가 어느 정도 커야 차이를 감지할 수 있다. 아마도 앞서 말한 제품의 경우 비닐봉지의 두께가 갑작스레 얇아진 것은 아닐 것이다. 소비자가 그 변화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줄여왔을 텐데, 1년 만에 재구매를 하고 1년 전과 후에 만들어진 제품을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드문 소비자한테 딱 걸린 것이다.

    위 경우엔 직접적으로 비교가 가능했던 상황이지만 대개의 경우 품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품질지각이란 표현을 쓴다. 주관적일 수 있고 우리의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물론 상당부분은 대상에서 자료를 받아들여 자료 주도적으로 처리를 하지만 우리가 어떤 기대와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진다. 제품에 대한 만족도 마찬가지다. 품질이 같은 제품에 대해서도 느끼는 만족은 다를 수 있다. 품질이 5라고 해보자. 6을 기대했던 소비자는 제품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 4만 기대했던 소비자는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아홉 번 만족스러웠어도 한 번 어그러지면 끝이다. 부정적인 경험은 긍정적인 경험보다 훨씬 그 영향이 크고 길다. 신뢰는 쌓기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아무리 마케팅 기법이 세련되고 흥미를 유발하고 자연스럽게 제품 사용이나 구매를 유도한다 해도 결국은 제품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처음의 관심과 호감은 실망으로 바뀐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때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간과되기 쉽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굳이 언급을 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다. 품질이 그렇다. 당연하기 때문에 품질이 좋다고 소비자의 만족도가 높아지지는 않지만 소비자의 품질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불만족을 가져온다.

    관계마케팅에서는 현재 시점으로만 고객을 보지 않는다. 한 고객이 향후 일으킬 구매의 양에 기초해 그 고객의 평생 가치를 평가한다. 고객생애가치의 개념이다. 그리고 새로운 고객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만족시켜 유지시키는 것이 훨씬 비용이 적게 든다. 이런 이유로 많은 기업들은 고객을 자사 제품에 묶어놓기 위해 여러 방법들을 사용한다. 마일리지나 포인트를 준다거나 약정기간을 설정해 놓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다 이런 방법의 일환이다. 그 고객을 묶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품질이다. 한번 품질에 만족한 고객은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새로운 제품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으로 정보로 무장한 소비자지만 항상 정보처리를 즐기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는 인지적 구두쇠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 머리 쓰기를 즐기지 않는다. 이미 믿을만한 제품이 있는 경우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는다.

    올해에도 많은 기업들이 품질만족대상에 선정되었다. 수년 간 선정된 기업도 있고 새로이 선정된 기업도 있다. 제품의 가장 기본인 품질을 끌어올리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을 터이다. 주관적이고 뚜렷이 차이가 나지 않는 품질을 많은 소비자와 전문가들이 일관되게 여러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결과를 낳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이런 기업들의 노력을 이렇게 해마다 공표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해당 기업들에 큰 자부심을 주고 이런 노력을 지속하도록 할 동인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