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04 16:06
- ▲ 한국예문화연구소 하중호 소장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국경일과 버금가는 기념일들이 이어지고 여러 캠페인도 곳곳에서 활발하다. 효와 자녀사랑이 강조되는 기간이어서인지, 마침 사단법인 치사랑실천운동본부에서 필자와의 인터뷰 요청이 왔다. 아마도 그간 발표된 나의 칼럼이나 전통문화관련 저서들 때문인 듯하다. 취지는 "요즘 세태가 내리사랑만 있고 치사랑(孝)은 없다"며 필자의 견해를 물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사회에는 치사랑뿐 아니라 내리사랑도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 자식 감싸기와 과보호를 내리사랑으로 착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내리사랑을 빙자한 자기기만이며 자기만족일 수 있고, 자칫 이런 눈먼 사랑은 귀한 자식을 망친다.
동물도 본능적으로 새끼를 끔찍이 사랑한다. 이성을 가진 인간은 동물과 좀 달아야 할 것이다. 아이가 넘어지면 털고 일어서기보다 일단 뒤를 보고 운다. 도움을 청하는 신호 겸 응석일 게다. 버선발로 달려가 감싸야만 사랑일까? 짠한 마음 감추고 응석을 거절하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다. 자식을 싸고만 든다면 마마보이나 서울대학에 입학하고도 계속 가정교사가 필요한 얼간이를 만들 것이다. 어느 맹수가 새끼를 낳으면 벼랑에서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다. 자식에게 바른 독립심을 심어주고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돕는 부모의 역할이 참 내리사랑이 아닐까. 부모는 진짜 사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의 잘못된 과잉보호는 흔히 자식을 망치고 불효자를 만든다. 오래전에 아버지를 총으로 쏴 존속살해를 한 박○○사건을 기억하는가? 피난민으로 어렵사리 자수성가한 부모가 보란 듯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식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사랑으로 믿었고 자식은 망나니가 되었다. 해외유학마저 실패하자 참다못한 부모가 뒤늦게 용돈 지급중지와 엄격한 규제를 시작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그간 부모는 말 잘 듣는 자동금전지급기였는데 갑자기 고장 난 셈이었고, 자식은 망가진 기계가 원망이었을 게다. 불효자는 부모가 만든다. 치사랑도 바른 내리사랑을 통해 만들어지는 법이다.
배고팠던 어린 시절에 호떡을 사주었던 고마운 친구의 기억을 잊지 못하여, 장성한 지금도 깊은 우정과 그 은혜를 나누고 있다는 청년의 미담을 들은 적이 있다. 부모는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얼마나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는가. 내리사랑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자생력과 부모에 대한 감사도 알게 하는 성장과정이어야 한다. 치사랑은 감사와 흠모의 마음에서 나오는 보은이어야 하며 강요해서 얻는 보상이 아니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효(孝)이다. 과보호로 양육된 아이는 치사랑을 모르며, 받는 것에만 면역이 되어서 보은이란 단어를 애당초 모른다. 이것은 부모의 책임일 것이다. 이러고도 효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100년쯤 걸려도 힘들 비약적 경제발전을 불과 몇 십 년 만에 후딱 해치운 대단한 민족이다. 이 같은 압축성장이 천민자본주의를 낳고, 갓 쓰고 골프 치는 형국이 되었다. 갑자기 닥친 물질의 풍요를 향유할만한 정신문화와 가치관이 이를 뒤따르지 못하고, 물질 앞에 인성은 메말라 가고 있다. 아름다운 전통과 예문화의 복원으로 경제성장에 걸 맞는 한국인의 품격과 정신문화가 그 간극을 매워야 한다. 이것이 BC500여 년 전 공자가 살고 싶어 한 나라, 예의문화선진국인 동방예의지국이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