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에서 마음껏 실패하라"… 3D로 스마트시티 실험

    입력 : 2018.04.26 10:16

    프랑스 기술기업 다쏘시스템, 기존 도시의 모든 정보 입력
    교통 체증 등 문제 분석하고 해결… 최적의 결과 도출해 현실에 적용


    프랑스 북서쪽에 있는 도시 렌(Rennes)은 인구 21만명의 중소 도시다. 작년 11월 렌 공무원들은 프랑스의 기술기업 다쏘시스템과 함께 '스마트시티 디자인' 프로젝트에 나섰다. 도시가 빠르게 성장해 수년 내 인구가 3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던 시점이었다. 공무원들의 고민은 '학교, 공공기관, 주택을 어디에 짓는 게 시민들에게 가장 편리할까' '도로를 몇 차선으로 확장해야 교통 체증이 덜할까'와 같은 것이었다.


    다쏘의 3D(입체)디자인·시뮬레이션 기술은 자동차·항공·패션·건축 등에 주로 사용됐다. 신제품의 모습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본 뒤 최고의 결과물을 찾아내는 식이다. 렌과 다쏘의 프로젝트는 이런 방식을 아예 도시에 적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지난 17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다쏘시스템 전시관 1층에 설치된 높이 6m의 대형 공기정화 구조물. 일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다쏘의 3D 프로그램을 통해 설계했다. /다쏘시스템 제공


    다쏘는 렌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모았다. 위성사진을 이용해 도시의 건물, 나무, 도로 하나하나까지 파악해 정보를 입력했다. 2만종 이상의 나무, 수천 가지 이상의 건축 소재는 물론 지도 상의 건물을 클릭하면 이 건물에 사람이 몇 명 드나드는지까지 나올 정도다.


    가상 세계에 옮겨 지은 도시에 도로를 새로 짓고, 건물도 세워보면서 과연 도시가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있다. 앤 아센시오 다쏘 수석디자이너는 "전문가들이 한데 모여 마치 게임을 하듯 시뮬레이션을 해보면서 가장 효율적인 도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하듯이 도시 디자인


    다쏘시스템은 지난 17일(현지 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스마트시티(Smart city)'를 주제로 디자인 행사를 개최했다. 세계적 디자인 축제인 '밀라노 디자인 위크(Milano Design Week)'에 맞춰 엿새간 열린 이 행사에는 전 세계의 디자이너, 건축가, 엔지니어 등 1000여명이 참가했다.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CEO(최고경영자)는 "가상 세계에서는 실컷 실패해도 된다"면서 "많은 실패를 해봐야 현실과 가상 세계 간 오차를 줄여 실제 세계에선 성공적으로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쏘의 3D 플랫폼을 활용해 스마트시티를 구상하는 도시들은 렌뿐만 아니다. 싱가포르는 2015년부터 '가상 싱가포르(Virtual Singapore)'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싱가포르를 통째로 가상 세계에 옮겨 놓고 도시를 바꿔보고 있다. 도시의 데이터를 입력하고 숱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언제 어느 곳의 교통 체증이 가장 심한지, 어떤 건물의 공기가 가장 정체돼 있는지 등을 분석한다. 문제가 발견되면 공무원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가상 현실에서 실험해본다. 가상에서 문제가 해결되면 그제야 현실에도 적용하는 방식이다.


    중국 정부도 다쏘와 손잡고 곳곳에 스마트시티를 짓고 있다. 중국 남서쪽 구이저우성(省)에 있는 구이양(貴陽)시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판잣집이 즐비하고 도시 전체의 90%가 농지였다. 구이양시는 3D 시뮬레이션을 거쳐 2020년까지 1만㎞가 넘는 고속도로와 4000㎞가 넘는 철길을 설치하는 등 스마트시티를 만들어낼 계획이다.


    ◇도시 공기 오염 해결에도 활용


    다쏘가 밀라노에 문을 연 전시장에는 3D 기술을 활용해 도시 공기 오염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들도 소개됐다. 전시장 로비 천장에는 일본의 건축가 구마 겐고가 만든 6m 높이의 거대한 나선형 모양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었다. 마치 아코디언처럼 종이를 수백 번 접어 꼬아놓은 듯한 이 조형물은 도시의 오염 물질을 흡수하는 공기 정화 시설이다. 단단한 천 두 장 사이에 스펀지처럼 폭신한 검은색 탄소섬유를 채워 만들었다. 다쏘 관계자는 "바람이 불면 공기에 섞여 있는 미세 먼지와 매연이 탄소섬유에 흡착되는 구조"라면서 "이 조형물 하나로 자동차 9만대가 내뿜는 매연을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쏘의 프로그램으로 조형물이 설치되는 곳의 풍향(風向)까지 사전에 시뮬레이션해 디자인한 제품이다.


    네덜란드 디자이너 단 로세하르데는 곡선으로 된 7m짜리 탑을 선보였다. 마치 거대한 공기청정기처럼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서 오염 물질을 걸러낸 뒤 맑은 공기를 배출한다. 풍력(風力)을 이용하기 때문에 물 한 번 끓이는 정도의 전력(1170와트)으로 시간당 3만㎡의 공기를 정화할 수 있다. 이미 폴란드와 중국 일부 도시에 설치했고 멕시코와 인도 델리에도 이 탑을 세울 예정이다. 앤 아센시오 수석디자이너는 "3D는 단순한 기술이 아닌 하나의 언어와 마찬가지"라면서 "미래의 편리한 스마트시티를 만드는 데 3D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