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책에 IT 미래 있다, 독서 권하는 CEO들

    입력 : 2018.04.24 09:19

    어제는 '세계 책의 날'


    삼성전자는 23일 유네스코 제정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사내(社內)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읽은 책 6권을 발표했다. '유니티 UI(사용자 환경) 디자인 교과서' '프로그래밍 대회에서 배우는 알고리즘 문제 해결전략' '반도체 공학'과 같은 전문 서적과 '사피엔스' '말의 품격' '채식주의자' 등 소설·인문 서적이 리스트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6개 도서관에 총 5만8600여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다.


    첨단 디지털을 추구하는 IT(정보기술) 기업에서도 아날로그의 정수(精髓)인 책 읽기를 강조하는 곳이 많다. 삼성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게임업체, 신생 벤처기업 중에도 사내 도서관을 만들거나 직원들의 도서 구입비를 지원하는 곳이 점차 늘고 있다. 프로그램 개발 등 업무 특성상 회사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만큼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하고 업무와 관련된 지적 호기심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사내 도서관, 전 직원 책값 지원


    음식 주문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전(全) 직원의 도서 구입비를 무제한 지원한다. 원칙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구매해야 한다'는 것.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경험과 '제값을 내고 책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김봉진 대표의 생각 때문이다. 500여 명의 직원들이 1인당 월평균 12만원을 책값으로 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사옥 근처의 대형 서점에선 우아한형제들 직원들이 거의 VIP급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김 대표는 최근 '책 잘 읽는 방법'이란 책까지 냈다. 그는 "책을 통해 직원들의 생각이 깊어지면 회사도 함께 성장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게임업체 엔씨소프트는 경기도 판교 사옥 12층에 3만7000여 권의 장서를 보유한 '엔씨 라이브러리'를 운영 중이다. 국내 게임업계 최대 규모로 김택진 대표의 사무실과 같은 층이다. 게임 개발, 디자인 서적을 비롯해 여행, 자녀 교육, 만화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보유하고 있다. 특화된 분야는 해외 역사와 원화(原畵)집이다. 김창현 홍보팀장은 "게임 스토리를 짜거나 캐릭터의 복장, 건축물 등을 고증할 때 직원들이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사서(司書)가 해외 출장까지 가서 책을 사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 때문에 도서관 책 분류도 탈것, 무기, 식물, 동물 등으로 나뉘어 있다.


    SK텔레콤도 서울 을지로 사옥 18층에 'T 라이브러리'라는 사내 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지방에 근무하는 직원이 대출을 신청하면 서울의 책을 배송해주기도 한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직원들이 IT 트렌드를 놓치지 않도록 최신 기술 서적을 항상 구비해 놓는다"고 했다.


    ◇IT업계 다독 CEO도 많아


    IT업계 CEO(최고경영자) 중에서도 다독가(多讀家)들이 많다. '벤처 1세대'인 이기형 인터파크 회장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한 이 회장의 꿈은 과학자였다. 기업가가 된 뒤에도 과학 전문 출판사 '반니'를 세웠고, 서울 한남동에 '블루스퀘어 북파크'란 서점도 운영 중이다. 이 회장은 "평소 과학 분야 원서를 읽거나 미국 MIT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개 강의 비디오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회사 곳곳의 휴게 공간에도 책을 항상 비치해놓고 임직원들의 도서 구입비도 지원해준다.


    스타트업 육성 기관 프라이머의 김상헌 파트너는 네이버 대표에서 물러난 이후 '책'을 중심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올 1월 서울 종로구 안국역 근처 와룡동에 문화 공간을 마련해 1층에는 한국을 소개하는 영어 원서를 구비한 카페를 열었고, 2~3층은 독서 모임을 하는 스타트업에 사무실로 내줬다. 지난 20일에는 대통령 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위원이 됐다. 김 파트너는 "IT업계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감각적이고 가벼운 콘텐츠도 넘쳐나지만 여전히 고전(古典)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