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도시바 인수 "美·中 무역전쟁 때문에…"

    입력 : 2018.04.16 09:42

    中, 美 자본 들어간 M&A 반대


    SK하이닉스 등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인수가 중국 반(反)독점 당국 승인을 받지 못해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미국의 베인캐피털·애플, 일본의 산업혁신기구(INCJ) 등은 작년 9월 약 2조엔(약 19조8500억원)에 세계 2위 낸드플래시 업체인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를 인수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15일 SK하이닉스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13일까지 한·미·일 연합의 도시바 인수를 승인하지 않았다. 한국을 포함해 미국·EU(유럽연합)·중국 등 8국 가운데 중국만 유일하게 승인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 승인 이후 계약을 마무리하는 데까지 걸리는 2∼3주가량을 감안하면 이번 인수·합병(M&A)의 2차 마감 시한인 5월 1일까지 마무리하기가 힘들어졌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 간 무역 갈등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 미국 자본이 들어간 M&A를 아예 승인하지 않고 있다"며 "SK하이닉스는 양국 간 갈등의 유탄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6월까지 마무리 못 하면, 재(再)협상 가능성도 제기


    애초 SK하이닉스는 3월 말까지 거래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중국 반독점 당국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질 우려가 있다"며 "인수 이후 낸드플래시 가격을 일정 기간 동결하거나 사업 부문 분할 같은 추가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승인을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미·일 연합은 "지나치게 가혹한 조건"이라는 생각이다. 한·미·일 연합 관계자는 "현재 중국 정부를 대상으로 이번 M&A에 대해 계속 설명하고 있다"며 "늦어도 6월 1일까지는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한·미·일 연합이 6월 1일까지 도시바 인수를 마무리하지 못할 경우에는 M&A 협상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고 본다. 6월 말로 예정된 도시바의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재(再)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홍콩의 사모펀드(PEF) 등 외국계 자본을 중심으로 한 도시바의 일부 주주는 "도시바 메모리 사업부 매각 가격이 지나치게 저(低)평가됐다"며 "이를 제대로 평가해 다시 매각 대금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작년 도시바의 재무 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급하게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가치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미·중 무역 전쟁에 올스톱한 반도체 업계 M&A


    반도체 업계에서는 한·미·일 연합이 미국과 중국 간 첨예한 무역 갈등의 유탄을 맞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양국이 치열한 무역 전쟁을 하는 가운데, 중국 정부에서 미국 자본이 들어간 초대형 M&A를 승인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보복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한·미·일 연합의 인수 자금 중 30~40%가 미국의 베인캐피털과 애플, 델 등이 부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이 밖에도 미국 퀄컴이 2016년 10월 네덜란드의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 NXP를 440억달러(약 47조원)에 인수하는 거래도 유일하게 승인하지 않고 있다. NXP의 본사가 있는 EU에서도 조건부 승인을 해줬지만, 중국 정부만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역시 이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달 12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화교계 자본이 주도하는 싱가포르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미국 퀄컴 인수 시도를 막았다.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인수하는 거래가 무산되면 SK하이닉스도 기술 개발 같은 미래 성장 동력 확보 측면에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며 "정치 논리에 M&A가 무산되는 상황이 계속될 경우 기업 간 M&A 시도 자체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