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 한국의 2배… 은행들 동남아로 발 넓힌다

    입력 : 2018.04.10 09:04

    임금 저렴하고 순이자마진 2배… 우리, 300여개 해외 영업망 구축
    신한, 베트남서 외국계 은행 1위… 하나, 순이익 16% 해외서 올려


    지난해 말 필리핀 중부에 위치한 바콜로드시(市) 중심가에 우리웰스뱅크필리핀이 새 지점을 열었다. 우리웰스뱅크필리핀은 2016년 우리은행이 필리핀 저축은행 웰스뱅크를 인수해 설립한 은행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준 해외 네트워크가 301개로 늘었다"며 "올해 상반기 중 해외 네트워크를 500개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2009년 신한은행이 설립한 베트남 현지 은행 '신한베트남은행'은 지난해 4월 'ANZ베트남' 소매금융을 인수하고 현지 외국계 은행 1위로 올라섰다. 신한베트남은행의 총자산은 33억달러, 총고객 수는 90만명에 달한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동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수수료와 예대 마진으로 수익을 올리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동남아시아에서 먹거리를 찾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는 한국보다 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이 1.5~2.5배 높다"며 "약 10년 전부터 한국기업이 보다 임금이 저렴한 동남아시아 등으로 생산 기지를 옮기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라고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은행이 해외 네트워크에서 거둔 당기순이익은 8억7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23.9% 늘었다. 지난해 국내 은행 총 당기순이익의 7.7%에 달하는 수치다. 시중은행 중 해외 진출 선두주자인 신한·우리·KEB하나는 지난해 순익의 각각 13.7%, 10.7%, 16.2%를 해외에서 거뒀다.


    ◇20년 만에 '재수' 성공한 해외 공략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역사는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시작되기 전 국내 은행들은 세계화 바람에 힘입어 해외 진출에 나섰다. 외국에서 영업 중인 국내 기업의 금융 창구 역할을 하겠다는 취지였다. 한국 기업이 진출한 미국 뉴욕·LA, 영국 런던, 일본 도쿄, 싱가포르, 중국 베이징·상하이 등 대도시 위주로 해외 점포를 세웠다. 하지만 외환 위기를 맞은 이후 국내 은행은 해외에서 일제히 철수했다.


    국내 은행은 2010년 이후 다시 해외시장에 재도전하기 시작했다. 저금리로 예대 마진을 남기기 어려워지고, 수수료 등 비이자 수익 규제로 국내 영업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2011년 미얀마의 대외 시장 개방 등 동남아시아의 개방도가 개선된 점도 해외 진출을 촉진하는 요소가 됐다.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총자산 규모는 2005년 276억달러에서 작년 말 1049억달러로 늘었다.


    ◇달라진 진출 전략… 동남아·현지화 우선


    국내 은행의 해외 진출 '재수 전략'은 세 가지다. 동남아시아 우선, 현지화, 비(非)은행 우선이다. 과거 전 세계 주요 대도시에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은행 영업에 나섰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KEB 하나은행은 중국·인도네시아에 이어 인도·베트남·필리핀을 5대 거점(Hub)화 전략을 통해 '아시아 벨트'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아시아 금융벨트 구축'을 목표로 하는 신한은행은 "아시아는 한국계 기업의 진출이 많이 이루어진 데다, 한국과 문화적으로도 동질성을 가진 만큼 경쟁 우위 확보에 유리하다"고 했다. 우리은행도 301개 해외 네트워크 중 238개가 동남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대면 거래를 강화하고, 한국의 부동산 담보 대출, 우량 고객 신용 대출, 할부 금융, 신용카드 등을 현지화하겠다는 것이다.


    영업 노하우가 쌓이면서 진출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은행업이 성숙되지 않은 만큼 소액대출회사(MFI), 저축은행, 할부 금융 등 비은행 업종에 먼저 진출해 고객과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이후 은행업을 추진하는 식이다. 신한금융은 장기적으로 해외에 은행, 카드업, 보험업 등 현지 금융사로 이뤄진 금융지주를 설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는 금융 규제와 감독이 여전히 까다롭고, 다른 외국계 은행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점이 난관으로 꼽힌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은 은행장의 재임 기간(3년)이 다른 외국은행보다 짧은 만큼 은행장이 바뀔 경우 해외 진출 기조가 바뀔수 있다는 점도 리스크 중 하나"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