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700억 회사가 3兆 기업을 인수? 자금력·진정성 논란

    입력 : 2018.03.28 09:14

    [타이어뱅크 등장에 더 꼬인 금호타이어 매각]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 "타이어뱅크 상장하면 가능, 해외서 공동인수 제안 있었다"
    30일까지 자구안 불발땐 법정관리
    금호 회장 "헐값에 사려는 속셈", 産銀 "실현 가능성 떨어진다"


    국내 타이어 유통업체 타이어뱅크가 27일 "금호타이어 인수를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금호타이어 매각이 또 혼선을 빚고 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타이어뱅크의 제안은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부적으로 내렸다. 원칙대로 오는 30일까지 노조가 경영정상화 방안에 동의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해외 기업 제안도 있었다"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은 이날 대전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금호타이어가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에 통째로 매각되는 것을 국내 기업으로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인수를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우선 국민 여론과 노조, 채권단의 생각을 들어본 후 인수 여부를 최종 결정하겠다"고도 했다.


    타이어뱅크는 전국 400여 개 매장을 운영해 2016년 기준 매출액이 3729억원이고 영업이익이 약 660억원이었다. 매출액이 3조원에 육박하고 빚이 2조원이 넘는 금호타이어를 인수할 만한 현금 여력이 없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타이어 업계에서는 "동네 구멍가게가 백화점을 사려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도 나왔다. 김 회장은 인수를 위한 자금조달 방법에 대해 "타이어뱅크를 상장하거나 회사 자체를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하면 차입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기업 2~3곳의 공동 인수 제안도 있었다"며 "(이들은) 타이어뱅크가 국내 공장을 맡아달라고 했다"고도 말했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타이어뱅크 매장에서 직원이 금호타이어 제품을 정리하고 있다. 이날 오전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은 기자회견을 열고 금호타이어 인수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자동차·타이어업계에 따르면 '타이어뱅크가 피렐리, 요코하마타이어 등 글로벌 업체에 공동 인수를 제안했지만 부정적인 의견을 들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타이어뱅크가 '중국 공장은 더블스타가, 국내는 타이어뱅크가 운영하자'고 제안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 회장이 일부 판매점을 점장들이 운영하는 것처럼 위장해 현금 매출 누락이나 거래 내용을 축소 신고하는 수법으로 종합소득세 80여억원을 탈루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들어, 김 회장의 인수 의사에 대해 '진정성'을 의심하기도 한다.


    ◇"타이어뱅크는 중국 문제 해결 못한다"


    산업은행은 "언급할 것이 없다"며 대응을 자제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여기서 휘둘려 또 협상 기한을 미뤄주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산적한 구조조정 이슈에서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채권단은 금호타이어를 정상화하려면 현금을 대규모로 투자할 여력이 있으면서 금호타이어의 중국 공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수자가 나타나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올해만 갚아야 할 회사채가 1200억원 규모에 이르는데, 현재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할 정도로 현금이 말랐기 때문이다. 또 금호타이어는 2011년 중국 관영방송 CCTV가 금호타이어 톈진 공장에서 재활용 고무를 과도하게 썼다고 고발한 후 대규모 리콜 사태를 겪고 나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이대현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은 지난 2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중국 법인만 별도로 매각하려면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니라 돈을 줘서 팔아야 할 정도로 적자가 심각해 국내와 해외를 분리해 매각하거나 제휴를 맺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64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중국 네트워크도 갖춘 더블스타가 현재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채권단 안팎에서는 타이어뱅크의 등장으로 갈등만 더 커지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노조 관계자는 이날 "인수하려는 국내 기업이 있는 상황에서 채권단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국내 기업에도 시간과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종호 금호타이어 회장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타이어뱅크는 경쟁사 제품(넥센)을 주력으로 취급하는 소매업체"라며 "이 시점에 인수하겠다고 밝히는 것은 금호타이어가 법정관리로 들어가도록 조장해 헐값에 사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인수·합병 같이 이해관계자가 많은 이슈에서 대중을 상대로 발표부터 하는 것은 시장을 교란시키는 행동이 될 수 있다"며 "채권단도 타이어뱅크와 관련된 상황을 명확하게 시장에 공개해야 혼선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