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아이디어 뱅크 '한성숙의 아이들'

    입력 : 2018.03.23 15:21

    대표실 옆방에 신입 15명 배치 '스테이션 제로' 직보 팀 만들어


    시장 변화·관료화에 위기의식
    서비스 개선 방안 등 과제 주면 10·20代 소비자들과 직접 만나 매주 모여 현장의 목소리 전달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또 하나의 직함을 갖고 있다. 바로 팀 스테이션 제로의 리더(Leader·네이버에서 팀장을 지칭하는 명칭)다. 스테이션 제로는 한 대표가 취임 6개월째인 작년 9월 만든 직보(直報) 조직이다. 한 대표는 본사 15층 자신의 집무실 바로 옆에 사무실을 차리고 그해 6월 입사한 기획 직군 신입 사원 15명을 불러 모았다. 한 대표는 "IT(정보기술) 업계는 하루아침에 트렌드가 바뀌는 곳이다. 젊은 시각을 네이버 서비스에 반영하는 역할을 맡아 달라"며 "기존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바닥(zero)부터 시도해보자"고 말했다.


    ◇대표 집무실 옆에 신입만 모아 만든 조직


    한 대표는 매주 신입 사원들에게 직접 과제를 낸다. 주로 '네이버 ○○ 서비스, 나라면 이렇게 바꾼다'라는 식이다. 출범 초기에는 쇼핑, 예약,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등 네이버 기존 서비스의 문제점 지적과 보완책이 과제로 주어졌다. 작년 12월부터는 동영상 검색, 블록체인, 인공지능(AI) 스피커에 대한 질문이 많아지고 있다. 네이버 내부에서는 "한 대표가 내는 과제를 보면 회사의 관심사가 보인다"는 말이 나온다.


    22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본사에서 신입 사원으로만 이뤄진 스테이션 제로 팀원들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스테이션 제로는 한성숙 대표가 직접 챙기는 조직으로, 팀원들은 매주 신사업 관련 아이디어와 10대 청소년의 의견을 보고한다. /네이버


    신입 사원들은 무조건 현장으로 향한다. 이들의 타깃은 10대 청소년이다. 인터넷 보급 이후에 태어나 디지털 기기와 함께 자란 세대다. 작년 10월 직원 이사임(여·26)씨는 '쇼핑을 개선하라'는 과제를 받고 인근 중학교로 향했다. "물건 살 때는 어디서 검색하느냐"는 질문에 여중생들의 대답은 "스마트폰의 유튜브 동영상 검색을 주로 쓴다"는 것. 이 보고를 받은 한 대표는 실무 조직에 "동영상 검색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신입 사원들은 매주 월요일 저녁 한 대표의 집무실에서 5분짜리 프레젠테이션 방식의 보고를 한다. 한 대표는 발표마다 "크고 거창한 것보다는 작고 구체적인 것이 낫다" "기존 서비스를 너무 고치려고 하면 엉망진창이 된다"는 식의 코멘트를 단다. 팀원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이거 쓸 사람 손들어봐"다. 이승준(27)씨는 "본인 아이디어에 다른 팀원들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으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스테이션 제로팀이 보고한 문제점과 신규 아이디어 중 일부를 네이버 임직원들이 모인 네이버 밴드에 올린다. 한 팀원은 "임원급인 해당 분야 리더가 밴드에서 발표 내용을 보고 스테이션 제로 사무실로 찾아와, 아이디어를 낸 신입 사원과 회의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최고 실적 낸 네이버의 위기감


    네이버는 작년 매출 4조7000억원과 영업이익 1조1800억원이라는 역대 최고 실적을 냈다. 하지만 한 대표는 주변에 "지금이 네이버 19년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20대 신입 사원들이 10대 소비자를 만나는 스테이션 제로는 한 대표의 이런 위기의식에서 나온 조직이다. 예컨대 네이버의 주력 서비스인 검색은 텍스트(text·글) 검색에서 동영상 검색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중·고등학생들은 유튜브에서 재미있는 영상만 보는 게 아니라 각종 정보와 쇼핑 검색을 한다. '화장하는 법'을 검색하면 각종 10만개가 넘는 동영상이 쏟아진다. 국내 이용자들이 유튜브에서 머문 시간은 한 달에 총 257억분으로, 네이버(126억분)의 2배에 달했다. 여기에 AI와 클라우드 등 신기술의 등장으로 현재 네이버의 성공 모델이 5년 후에도 유지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이버 직원 수가 2600여명으로 늘어나면서 관료화가 진행되는 것도 부담이다. 조직에서 결정권을 쥔 서비스별 리더들은 대부분 40대 중반이다. 인터넷 서비스는 10대와 20대 이용자를 잡아야 하는데 이미 한 걸음 멀어진 상태다. 네이버 고위 관계자는 "아직 출범 6개월밖에 안 된 조직이라 당장 큰 성과를 내긴 어렵다"면서도 "신입 사원들이 대표에게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사실 자체가 각 서비스의 부서장들을 긴장하게 하는 역할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