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니콘' 키워내는 큰손, 한국 아니었군

    입력 : 2018.03.14 13:16

    유니콘 등극 앞둔 토종 벤처들, 대부분 해외서 투자 받아 성장
    우아한형제들·비바리퍼블리카… 美·中서 800억~1000억원 유치
    큰 성공 거둬도 과실은 해외로
    국내 벤처캐피털, 자금 규모 작아 대형 투자 꺼리고 안정성 중시


    IT(정보기술) 서비스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베스핀글로벌은 올해 직원 450명을 뽑을 계획이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직원 수 240명이었던 벤처기업이 몸집을 3배 가까이 키우는 것이다. 영입 대상 직원 대부분은 국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근무하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말 싱가포르의 벤처캐피털 STT로부터 300억원을 투자받았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의 자회사인 STT는 베스핀글로벌이 앞으로 3~4년 내 유니콘(기업 가치 약 1조원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고 배팅한 것이다.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용 소프트웨어 개발·운용 업체인 이 회사는 최근 1년 새 삼성전자·현대자동차·인민일보 등 한국·중국의 200여 기업들을 고객으로 확보하며 초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니콘 후보 기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비바리퍼블리카, 미미박스, 베스핀글로벌, 센드버드, 야놀자, 직방 등 배달·송금·메신저·부동산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유니콘 후보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니콘 후보들은 대부분 해외 벤처캐피털에서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한국 유니콘들이 기업공개(IPO)를 할 경우 과실도 고스란히 해외 투자자 몫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해외의 투자로 성장한 한국 유니콘 후보들


    배달 앱 배달의민족으로 유명한 우아한형제들은 기업 가치 1조 원대로 평가받는 곳이다. 14조원대의 국내 음식 배달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아한형제들의 최대 주주는 창업자인 김봉진 대표가 아니라 중국계 벤처캐피털인 힐하우스캐피털 컨소시엄이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한 번에 570억원을 투자할 수 있는 벤처캐피털이 아예 없었다"고 말했다.



    송금 앱 토스를 서비스하는 비바리퍼블리카는 이르면 올 2분기 유니콘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 이 회사의 이승건 대표는 "동남아시아 등 해외 진출에 공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벤처캐피털들과 추가 투자 유치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 역시 현재 최대 투자자는 작년 초 550억원을 투자한 미국 페이팔컨소시엄이다.


    작년 말 미국 벤처캐피털에서 1600만달러(약 170억원)를 투자받은 모바일 채팅 앱 업체 센드버드는 최근 미국 내 월 이용자 수 2000만명을 넘었다. 이 회사의 김동신 대표는 "그동안 별도 마케팅 없이 소문으로만 이용자가 늘어났지만 올해는 투자 자금으로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선다"며 "연말까지 월 이용자 수 1억명 돌파가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최대 부동산 중개 앱인 직방은 미국 골드만삭스에서 380억원, 영상 메신저 '아자르'를 운영하는 하이퍼커넥트는 일본 소프트뱅크벤처스 등에서 100억원을 투자받았다.


    이뿐이 아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오 기업인 셀트리온도 싱가포르의 테마섹이 2대 주주다. 2010년 셀트리온이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과도한 리스크 우려로 외면받을 당시 테마섹은 무려 3574억원을 투자했다. 바이오 대장주인 셀트리온에 대한 테마섹의 지분 가치는 현재 6조원이 넘는다.


    ◇펀드 규모 작아 대형 투자 못 하는 국내 벤처캐피털


    국내 유니콘 후보 스타트업들이 해외 투자자들에게 의존하는 이유는 민간의 투자 생태계와 문화가 여전히 선진국 수준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 벤처캐피털인 세콰이어캐피털은 78억달러(약 8조3000억원)를 운영하는 데 반해 국내 투자 펀드는 1000억원을 넘는 경우도 거의 없다. 현재 국내 718개 투자 펀드의 평균 운용 자금은 280억원에 불과하다. 게다가 국내 벤처캐피털은 대부분 정부 모태(母胎) 펀드로부터 지원을 받아 투자하기 때문에 펀드 자금을 10억~30억원씩 분산 투자하는 성향이 강하다. 대형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내면 다음부터는 정부의 자금을 못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계 벤처캐피털인 알토스벤처스의 김한준 대표는 "한국 벤처캐피털들은 손실 없이 펀드를 운영해야 다음번 투자 펀드를 만들 수 있어 안정성을 최우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