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AI 반도체 경쟁... 한국은 삼성에만 의존?

    입력 : 2018.02.26 09:18

    [미래 산업 주도권 다툼 가열]


    "인간의 뇌 닮은 반도체 개발" 美, 구글·애플·인텔 등 앞장
    인수합병·기술 개발 투자 확대… 中, 국가 차원서 스타트업 지원
    한국은 삼성전자만 뛰어들어
    과거 인텔·퀄컴 등에 의존했던 반도체 종속 되풀이할 가능성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아마존이 최근 사내에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 조직을 구성하고 AI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마존은 2015년 인수한 이스라엘 반도체 개발 업체인 안나푸르나의 기술 인력을 내세워 자사의 AI 스피커인 에코와 클라우드(가상 저장 공간) 서버용 AI 반도체를 개발할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존뿐만 아니다.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IT 기업인 구글·애플·페이스북과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엔비디아도 경쟁적으로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섰다.


    이에 맞서 중국은 기술력을 갖춘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들을 중심으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의 캄브리콘 테크놀로지스는 창업 1년 만인 작년 11월 음성·이미지 인식에 쓰이는 AI 반도체 3종을 출시했고, 허라이즌로보틱스·디파이도 인간의 뇌 구조를 본뜬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다. 이들 기업의 기업가치는 각각 10억달러(약 1조800억원)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 역시 소니·소프트뱅크·후지쓰 등을 중심으로 AI 반도체 개발에 막대한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AI 반도체는 인공지능의 두뇌…시장 선점이 필수


    세계 각국의 테크(기술) 기업들이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이유는 향후 미래 산업의 주도권이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연산 능력과 그래픽 반도체 분야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인수합병과 기술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인텔은 2016년 AI 기업인 네르바다를 4억달러(약 4300억원)에 인수했고, 작년 매출의 21.2%인 130억달러(약 14조원)를 연구·개발(R&D)에 썼다. 구글은 2016년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텐서프로세싱유닛(TPU)'을 데이터 서버(대용량 컴퓨터)에 본격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애플도 아이폰X(텐)에 자체 AI 반도체를 탑재했다. 엔비디아는 다음 달 열리는 개발자대회에서 기존 GPU(그래픽용 반도체)의 성능을 한층 향상시킨 반도체를 선보일 전망이다.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은 반도체 기업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자사 서비스에 최적화된 AI 반도체를 개발하기 위해 엔지니어를 대거 영입하고 내부 조직도 키우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 국가인 중국은 AI 반도체 시대를 맞이해 반도체 독립을 이루겠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과거 메모리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거대 국영 기업을 앞세웠다. 하지만 AI 반도체 분야는 스타트업을 대거 육성하고 대기업과 국부 펀드들이 뒤에서 지원하는 전략을 세웠다. 실제 작년 중국의 스마트폰 업체인 화웨이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모바일용 AI 반도체는 자국 스타트업인 캄브리콘 테크놀로지스의 기술을 활용해 개발했다.


    ◇삼성에만 의존하는 한국


    한국에선 삼성전자가 작년 하반기에 처음으로 AI 기능을 탑재한 모바일 칩셋인 '엑시노스9'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은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정부는 최근에야 반도체 관련 기업·학계 관계자들을 불러 설명회를 열고 R&D 예산도 책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사업 시작까지는 1년여 이상 더 소요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계속 주도하면서도, 미래 기술의 핵심인 AI 반도체 분야에서는 뒤처질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 인텔의 CPU(중앙처리장치)나 퀄컴의 모바일 반도체에 의존해야 했던 상황이 AI 반도체에서도 재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미국·중국 기업들은 AI 반도체를 스마트폰·AI 스피커 등 실제 제품에 탑재하고 여기서 확보한 방대한 사용자 데이터를 토대로 다시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국내 IT 대기업들과 미국·중국 기업 간 기술 격차가 상당히 벌어져 있는 상태"라며 "늦기 전에 정부와 기업이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이미지·음성 인식이나 자율주행차 작동 등 복잡하고 다양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반도체. 과거 PC의 핵심인 CPU(중앙처리장치)나 스마트폰용 반도체가 한 번에 한 가지 연산을 했다면, AI 반도체는 동시에 많은 연산을 진행해 결과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