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도미노, 뿌리산업이 휘청거린다

    입력 : 2018.02.23 10:07

    [車·造船 떠받치는 주물업계 "납품 단가 안올려주면 내달 공장가동 전면 중단"]


    - 평균 직원 26명, 영세 주물업체들
    1년에 7000만원 안팎 더 들어… 최저임금 오르고 납품가 그대로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적자"


    - 대기업도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통상 압박에 자동차 업계 우울
    造船업계도 인력감축 나선 상황


    "올해 최저임금이 한꺼번에 16.4%나 인상됐다. 인건비가 오른 만큼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안 올려주면 우리같은 풀뿌리 영세기업들은 견디기 힘들다."


    22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 주물(鑄物) 제조업체의 대표 180여 명이 어깨띠를 두르고 모였다. 서병문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누적되는 적자로 더는 견딜 수 없는 고사 직전 상황"이라며 "다음 달 23일까지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인상해주지 않으면 다음 달 26일부터 협회 회원사들은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2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열린 주물업계 하도급 대금 인상 요구 결의대회에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주물업체 대표들이 납품 단가 인상을 촉구하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


    행사장을 가득 메운 주물업체 사장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현장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 사장은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가 나다 보니 주변에 현금 없는 기업들은 벌써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며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목소리라도 한번 내보려고 경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고 말했다.


    영세 중소기업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납품 단가 인상을 요구하는 실력 행사에 나섰다. 주물은 녹인 쇳물을 고정 틀에 부어 자동차, 선박, 기계 등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만드는 일이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주물을 포함한 주조 업종에서는 전국 1390여 중소기업들이 3만6500여 명을 고용하고 연간 12조877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 한 곳당 평균 직원 수 26명인 대표적인 영세 제조 업종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한 관계자는 "금형·도금·용접과 같은 뿌리 산업은 대표적인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 업종이며 대부분 인건비 비중이 크다"며 "가장 취약한 주물 업종이 먼저 머리띠를 두르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상대로 '납품가 인상' 요구


    인천에 있는 주물 제조업체의 김모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직원 24명의 인건비 추가 부담이 지난 1월 600만원가량 됐다"며 "일년이면 7000만원의 추가 부담이 생기는데, 현 납품 단가에서는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작년에만 대기업이 납품 단가를 두 번이나 깎았다"면서 "연초에 직원들에게 '이제 상여금은 없다'고 했지만, 상여금 지급 문제가 아니라 회사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기업들의 해외 이탈로 납품 물량이 주는 것도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다. 주물조합의 한 관계자는 "240여 회원사를 전수 조사했더니 2015년에 연간 220만t이던 생산량이 지난해 168만t으로 급감했다"면서 "물량이 줄어 허리띠를 졸라맨 상황에서 인건비가 급증해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함안에서 올라온 H사의 서모 대표는 "정부는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고 근로시간도 줄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원전(原電) 가동 중단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우려도 팽배했다. 주물 업체들은 대부분 전기로 고철을 녹이기 때문에 원가에서 전기요금의 비중이 15~20%에 달한다. 공병호 경기주물공업협동조합 전무는 "현재 정부가 검토 중인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주물 업계에 쓰나미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기업도 여력 없어


    하지만 영세 제조업체들의 납품 단가 인상은 실현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기업들의 경영 상황도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는 한국GM이 누적 적자를 견디지 못해 한국 철수 운운하고 있고,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중국 시장의 고전과 미국 통상 압박 등으로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현대차는 한때 8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렸지만 작년에는 4조원대로 떨어졌고 기아차도 작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0%나 줄었다. 조선업계는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주요 3사가 해외 수주량 급감으로 인력 감축에 나선 상황이다.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중소형 조선소는 생존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우리가 해외 해운업체에서 받는 선박 발주 단가도 예전에 비해 반 토막 난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할 수만 있다면 우리도 선박 발주 단가 인상 결의대회라도 열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주물 산업은 국내 주력 산업을 받치는 뿌리 산업"이라며 "최저임금 인상과 전기요금 인상 우려가 산업 전체에 도미노처럼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