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붐, 그 뒤엔 '자산 뻥튀기' 가능성

    입력 : 2018.02.12 10:59

    [금감원, 주가 급등한 바이오기업 'R&D 비용 회계처리' 조사 나서]


    일부 기업, 신약 개발 초기부터 연구개발 비용을 자산으로 돌려
    실제보다 영업이익 부풀린 의혹


    당국 "불투명한 처리 관행 고쳐야"
    업계 "투자자들은 실적뿐 아니라 미래 기술 전망까지 고려해 투자"


    금융 당국이 기업의 연구·개발(R&D)비 회계 처리 방식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에 나서면서 'R&D 비용 자산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바이오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R&D 비용 자산화는 기업들이 신약 개발에 투입하는 R&D 지출을 회사 자산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장부상으로 나타나는 이익 규모가 더 커진다. 최근 해외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바이오 기업들의 R&D 비용 자산화로 영업 실적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가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반면 바이오업계는 "금융 당국이 바이오업계 전체를 분식 회계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한 바이오 벤처기업의 임원은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 실적뿐 아니라 미래 기술 전망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한다"며 "바이오 기업의 회계 처리 방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금감원 "불투명한 회계 처리 관행 바로잡아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부터 작년 코스닥 시장에서 주가가 급등한 제약·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R&D 비용 회계 처리에 대한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주요 바이오 기업들로부터 회계 자료를 넘겨받아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기업은 R&D 비용을 회계 장부에 기록할 때 '무형자산'과 '비용'으로 나눠 처리한다.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하면 R&D에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회사 자산으로 남게 된다. 그럴 경우 회사의 영업이익이 증가해 재무구조도 개선된다.


    현행 규정상으로는 정부에서 R&D 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기업 자율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따르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에는 '기술적 실현 가능성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처리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일부 바이오 기업들은 이 점을 이용해 신약 개발 초기부터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돌리는 방법으로 실제보다 영업이익을 부풀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신제품(신약)이 나오기까지 연구·개발에 시간·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R&D 성공 여부도 100% 보장하기 힘든 상황에서 재무구조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상장사 152곳 중 83곳(55%)이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하고 있다.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 제약·바이오 기업 중 지난해 1~3분기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비중이 50% 이상인 곳은 코미팜(98%), 바이로메드(96.5%), 제넥신(86.3%), 셀트리온(76%) 등 9곳으로 대부분 최근 코스닥 바이오 붐을 이끈 기업들이다. 독일계 증권사 도이체방크는 지난달 18일 보고서를 통해 "셀트리온이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R&D 비용을 빼면 실제 영업이익률은 57%(2016년 기준)가 아닌 30% 수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대형 제약사들은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R&D 비용을 상용화 직전 단계인 임상 3상 전까지 '비용'으로 처리한다. 유한양행·종근당 등 전통 제약사들의 R&D 비용 자산화 비중은 1%도 채 안 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신약 개발 기대감으로 주가가 올랐던 바이오 벤처들이 신약 개발에 실패할 경우 무형자산으로 잠정 처리한 연구·개발비가 순식간에 손실로 바뀌고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자산화 근거 구체적으로 밝혀야"


    바이오 기업들은 R&D 비용의 자산화 처리 비중이 높은 것에 대해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셀트리온 등 바이오 복제약 기업들은 "신약 개발이 기존 오리지널 의약품을 그대로 복제하는 일이어서 실패 확률이 적다"고 밝히고 있다. 다른 바이오 벤처들도 "R&D를 통해 획득한 각종 기술들이 다른 신약 개발에 활용될 수 있어 이를 개발하기 위해 들어간 돈도 회사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바이오 기업들의 불투명한 회계 처리 관행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R&D 비용 회계 처리에 대한 지적이 나올 때마다 일부 기업이 말을 바꾸거나 불충분한 설명으로 투자자 혼란만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업 공시에서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처리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대로 밝히는 기업도 거의 없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제약·바이오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기업의 투명한 회계 정보는 필수"라며 "R&D 비용을 자산화할 경우 이에 대한 상세 내역을 구체적으로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