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vs 통신사 3라운드... 이번엔 月 2만원대 요금제

    입력 : 2018.02.05 09:08

    [NOW] 보편요금제


    - 보편요금제 올해 도입될까
    저소득층 253만명 감면과 선택적요금 할인율은 이미 실시
    데이터 1GB·음성통화 200분, 월 2만원대 요금제 도입 추진
    통신 3사와 전문가들은 "해외도 없는 규제… 5G 위축"


    정부가 그동안 논란을 빚어온 '보편요금제' 도입을 위해 오는 6월 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히면서 실제로 도입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월 3만원대 요금제에 가입해야 제공받는 통신 서비스(데이터 1GB·음성통화 200분)를 월 2만원대 요금제에서 가능토록 한다는 것이 정부의 보편요금제 구상이다. 이를 위해 아예 법으로 통신업계 1위인 SK텔레콤에 보편요금제 신설을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KT·LG유플러스 등 다른 통신업체들도 경쟁사의 보편요금제와 유사한 상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보편요금제 도입 법안이 연내 정기국회(9~12월)에서 통과되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며 "보편요금제는 스마트폰이 필수 생활용품이 된 상황에서 늘어나는 데이터 사용에 따른 국민들의 통신비 부담을 줄이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신 3사가 "정부 주도의 인위적 요금제를 민간 기업에 강제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일 뿐 아니라 위헌(違憲) 요소가 있다"고 반발하는 데다, "경영에 타격을 입은 통신업체들이 5G(5세대 이동통신) 관련 기술·설비 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돼 장기적으로는 고객 서비스 질(質)이 떨어지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 또 현재 시행하고 있는 정부의 다른 통신비 절감책들과 달리, 보편요금제는 관련 법안이 '여소야대' 구도인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 만큼, 실현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분석도 많다.


    ◇'통신비 절감책' 대부분 실현…보편요금제만 남아


    당초 보편요금제는 지난해 6월 말 이번 정부의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의 '통신요금 기본료(1만1000원 상당) 폐지' 대선 공약을 대신할 통신 요금 절감 대책으로 내놓은 것이다. 당시 보편요금제와 함께 발표됐던 ▲선택적 요금 할인 확대 ▲저소득층 요금 월 1만1000원 감면 등은 각각 지난해 9월과 12월 시행됐다. 여기에 기초연금을 수급하는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월 1만1000원을 감면하는 정책도 이르면 올 3월쯤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의 통신 요금 절감 대책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보편요금제는 가장 파급력이 센 정책이다. 월 3만원대 요금제에 해당하는 데이터양이 2만원대에서 가능해지면 현재 3만원대 이상 요금제에서 제공되던 데이터양까지 연쇄적으로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는 보편요금제에 따른 연간 통신비 절감액을 1조원에서 최대 2조2000억원으로, 증권가(메리츠증권 보고서)에서는 1조원에서 최대 1조4000억원으로 추산한다. 바꿔 말하면 통신 3사 입장에선 1조원 이상의 수익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다.


    정부는 보편요금제 도입 배경에 대해 "통신 서비스는 공공재인 주파수를 할당받은 통신 3사가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만큼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신업계가 반발하더라도 보편요금제 도입은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통신업체들은 저가 요금제와 고가 요금제 간 서비스 혜택을 너무 차이 나게 해 이용자들이 고가 요금제를 선택하도록 유도해왔다"며 "데이터 사용량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요금 제도를 이번에 개선하지 않으면 이용자들의 통신비 부담이 더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대부분의 통신 요금제에서 음성통화 서비스가 '무제한'으로 제공되는 것처럼 데이터 역시 보편적 서비스 성격이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당장 시민단체들은 "월 2만원대인 보편요금제에서도 음성통화를 무제한 제공하고 기본 데이터 제공량을 2GB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신 3사의 4분기 실적이 당초 우려보다 양호한 것도 이런 강공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LG유플러스가 지난 1일 발표한 실적에서 지난해 4분기 매출은 3조3282억원, 영업이익은 2013억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각각 6.6%, 9.2% 증가했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8만원대 이상 고가 요금제 고객을 많이 유치해 요금 할인 상향 조치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상쇄했다"고 밝혔다. SK텔레콤과 KT도 작년 4분기 영업이익이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이 증권가에서 우세하다.


    ◇통신업체 "해외에도 없는 규제"


    통신업체들은 "보편요금제가 도입 방식이 너무 과격하고 통신 산업에 주는 충격이 워낙 커 수용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통신 3사는 정부가 통신비 관련 논의를 위해 지난해 11월부터 학계·시민단체까지 참여시켜 만든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에서도 매번 이런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26일 열린 정책협의회 내용을 정리·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통사는 정부의 보편요금제 도입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하면서 특별한 대안이나 수정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통신업체들은 막강한 규제 권한을 쥔 정부와의 공식 회의에서는 항상 정부의 입장과 정면 충돌하는 모양새를 피하는 게 관행이었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물가안정법에 따라 관리되는 전기·가스 요금조차도 긴급한 재정·경제상 위기나 내우외환 등의 경우에 한정해서만 요금의 최고 한도가 정해진다"면서 "보편요금제처럼 정부가 개입해 직접 요금제를 만들어 통신업체에 강제하는 시도는 해외에서도 유사 사례조차 없고 우리 헌법이 보장한 자유시장경제 질서에도 위배된다"고 말했다.


    정부가 4차 산업혁명 경쟁력을 위해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온갖 규제들을 풀겠다고 홍보하면서 정작 통신 시장에 대해선 반대로 규제를 강화하는 모순된 행동을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또 통신업계에서는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한 원인은 이용자들이 TV와 노트북으로 볼 수 있는 실시간 방송·VOD (주문형비디오) 등 대용량 동영상을 스마트폰으로 보기 때문인데 이를 위해 보편요금제가 필요한 건지 의문"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통신 3사는 4분기 실적은 일시적인 현상이며 보편요금제가 시행되면 통신업종 전체가 실적 악화와 완연한 침체의 길에 접어들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선택적 요금 할인제'와 '저소득층 요금 감면' 등에다 보편요금제까지 시행되면 통신업체들의 매출 손실이 연간 2조~3조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며 "당장이야 이용자들은 요금 부담이 일부 줄어들긴 하겠지만, 장기적으론 5G(5세대 이동통신)와 같은 미래 투자가 위축돼, 세계 최고의 통신 품질이라는 국내 통신망 인프라의 경쟁력이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