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中企... 결국 최저임금 때문이었다

    입력 : 2018.01.31 10:24

    [기업 체감경기 아우성]


    株價 사상 최고치 찍어도 기업들 "인건비 걱정에 잠 안와"
    투자·고용 위축 현실화 가능성
    한국 진출한 유럽기업 61%도 "2년 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져"


    충남 아산에 있는 케이블 제조회사인 화일전자의 윤장혁 대표는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다가 근로시간 단축 문제까지 겹쳐 노동문제가 큰 걱정인데 환율도 심상치 않고, 금리도 더 인상될 것 같아서 걱정이 태산"이라며 "경영계획을 세우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주가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경제성장률이 3%대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일선에서 뛰는 기업들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기업들의 현장 체감경기가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30일 발표한 1월 제조업 업황 경기실사지수(BSI)는 전달보다 4포인트 하락하며 5개월 만에 다시 80선 밑으로 떨어졌으며, 중소기업과 내수기업의 하락폭이 유독 컸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 체감경기 악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확인되면서, 투자와 고용 위축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인건비 부담스럽다"는 기업, 역대 최고


    기업들의 체감 경기가 급랭한 가장 큰 이유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 때문이다. 한국은행 조사에서 제조업체 중 9.1%가 '인력난 및 인건비 상승'을 가장 큰 경영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지난달 8%에서 한 달 만에 1.1%포인트 상승해 2003년 1월(9.8%) 이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건설업과 서비스업 등 노동력이 많이 투입되는 비(非)제조업종에서 체감하는 상황은 더 심각하다. 같은 조사에서 인력난 및 인건비 상승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은 비제조업체는 12%로 지난달보다 2.7%포인트 급등했다. 2004년 7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직전 최고치였던 지난해 7월(10.1%)을 크게 뛰어넘었다.


    그래픽=김성규


    국내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들조차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ECCK)가 국내에서 경영 활동을 하는 유럽기업 108개사 경영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 기업 중 61%가 지난 2년 전에 비하여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답변했고, 그 주요 원인으로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 저하와 인건비 상승을 꼽았다. 인건비 상승을 심각하게 여기는 기업은 지난번 조사 때 65.2%에서 이번에 73.1%로 증가했다.


    기업들이 느끼는 앞으로 전망도 밝지 않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서 2월 전망치는 91.8을 기록, 21개월 연속으로 기준선인 100을 밑돌았다. BSI가 100을 넘기면 경기를 긍정적으로 내다보는 기업이 더 많다는 뜻이고, 100을 밑돌면 그 반대다. 김윤경 한경연 기업연구실장은 "미국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본격화와 원화 강세, 유가 상승에 의한 채산성 악화에 내수 부진 우려까지 겹쳤다"고 설명했다.


    ◇경제 착시 현상 심화… "최저임금 보완책 찾아야"


    증시 호황과 달리 기업 체감 경기는 냉랭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도체·화학 등 일부 업종에 국한된 호황과 풍부한 유동성에 가려진 착시 현상"이라고 말한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 주가가 오르는 것은 실물경기가 좋아서라기보다 풍부한 유동성 때문"이라며 "특히 내수경기에 관련한 지표들을 보면 현장에서의 기업들 고충을 '엄살'이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화성에 있는 반도체부품회사인 A사 대표는 "업황이 좋아 올해도 5% 이상의 매출 성장을 예상하지만, 직원의 20%가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병역특례대상자"라며 "올해 영업이익은 지난해보다 10~2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에 있는 포장재 제조회사인 B사는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움직임에 대비하기 위해 최근 2교대 생산제를 3교대제로 바꿨다. B사 대표는 "생산인력을 추가로 구하기 어렵고 시급까지 올려줘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체감경기 악화는 투자와 고용 위축으로 이어져 장기적으로 매출과 성장률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현재 양호한 몇몇 경제지표에 도취되지 말고, 기업들의 불안감을 해소시키려는 선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전문가는 "정부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여파가 몇 개월 뒤면 사라진다고 하지만 그건 현장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면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조절하거나 지역·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줄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