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더치페이, 속만 긁는다

    입력 : 2018.01.09 09:36

    카드사 요청으로 도입했지만…
    앱 설치하고 가입까지 해도 같은 카드 아니면 결제 안 돼
    핀테크 업체와 손잡고 개선 시도


    지난 연말 고깃집에서 대학 친구 10여명과 송년회를 한 직장인 김모(32)씨는 모임 전에 '신용카드 더치페이(각자 내기)' 서비스를 알아봤다. 그동안은 매번 총무인 김씨가 대표로 음식 값을 결제한 뒤 다음 날 다른 친구들에게 인원수로 나눈 금액을 송금받아왔다. 김씨는 "친구들이 바쁘다 보니 송금을 바로 해주지 않아 신경이 많이 쓰였고 독촉해야 해 불편했다"며 "카드사들의 '더치페이(각자 내기)' 서비스가 너무 반가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금세 실망했다. 카드사 더치페이 앱을 설치하고 가입까지 했으나,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모든 구성원이 해당 카드 사용자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카드사 간 장벽이 사라지지 않으면 있으나마나 한 서비스가 될 것"이라며 "핀테크 강국이 된 중국은 알리페이를 이용해 테이블에 앉아 각자 계산이 바로 되던데 우리도 그런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년 9월 금융위원회가 '더치페이' 결제 서비스를 허용한 이후, 일부 카드사가 관련 서비스를 내놨지만 불편함이 많아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연말연시에 카드 더치페이 사용 적어


    우리카드와 신한카드는 더치페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사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카드 더치페이 서비스는 한 사람이 대표로 결제한 뒤 모바일 앱인 '우리페이'를 통해 나머지 사람들에게 분담 결제를 요청하는 방식이다. 문자 등으로 요청을 받은 사람이 링크를 눌러 앱에 접속한 뒤 결제 승인을 하면 더치페이가 완료된다. 대표 결제자의 결제 금액에서 그만큼 자동적으로 차감된다. 작년 12월 더치페이 서비스를 시작한 신한카드도 같은 방식이다. 모바일 앱 '신한FAN'에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을 이용하기 위해선 함께 비용을 분담할 구성원 모두가 해당 카드로 결제해야 하며 앱에도 가입돼 있어야 한다. 다른 카드사 고객도 이용하려면 타사 고객 정보를 가져와야 하는데, 현재는 카드사 간에 이런 연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카드는 "서비스 초기인 데다 카드사 간 고객 정보 연동이 되지 않은 탓에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지금까지 이용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신한카드 관계자도 "아직까지는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고객정보를 연동하는 문제는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8개 카드사 중 2개사만 더치페이 서비스를 하고 있어, 카드업계 전체가 연동하는 방안이 추진되지 않고 있다. 당국도 이 문제를 업계에 맡겨 놓은 상태다.


    금융위는 작년에 더치페이 시장을 열어주면서 "회사 간 고객정보 연동 문제는 여신금융협회를 중심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한발 뺐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물론 식음료 업주들도 '더치페이'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높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고깃집 실장은 "더치페이를 위해 'N(인원수)분의 1'로 나눠 각자 카드 결제를 하려는 사람들로 계산이 밀리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점 보완한 '테이블페이'


    자사 앱을 통한 더치페이와 달리 외부 핀테크 업체와 손을 잡고 더치페이 서비스를 내놓은 카드사도 있다. KB국민카드는 핀테크 업체 '더페이'와 협약을 맺고 '테이블페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작년에 시범 운영기간을 거쳐 올해 서비스를 시작했다. 더페이에 가맹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한 뒤 주문서나 테이블에 있는 QR 코드를 휴대폰으로 찍으면 결제 창이 열리는데, 여기서 메뉴별 또는 인원수로 나눠 결제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각자 카드로 현장에서 결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정보 연동이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에 다른 카드사들도 이런 방식의 더치페이 서비스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롯데카드, 하나카드 등이 이런 제휴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KB국민카드 관계자는 "외부 핀테크 업체와 각 카드사가 제휴를 맺는 방식으로 더치페이 서비스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며 "KB카드는 현재 가맹점이 30개뿐이지만 꾸준히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