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 거래소, 4만원만 내면 등록... 투자자 보호장치는 없다

    입력 : 2017.12.21 09:53

    [자본금 100만~2000만원 업체 수두룩… 신고서류엔 '통신판매업']


    주식의 10~30배 수수료 떼고 主고객 젊은층 단타 거래 엄청나
    빗썸, 올해만 수천억 수익 소문
    한국, 진입규제 없어 20여곳 난립… 美·日은 라이선스 도입해 관리


    국내에서 200만명 이상이 투자에 뛰어든 가상 화폐 광풍(狂風)이 불면서 가상 화폐 거래소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일반인들은 가상 화폐 거래소를 주식 거래하는 증권 거래소와 유사한 곳으로 인식하지만 증권 거래소와는 달리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대부분 통신판매업자로 손쉽게 등록해 영업하고 있다. 통신판매업자는 사업자 등록증을 갖추고 구청과 같은 지자체에 신고만 하면 영업을 할 수 있다. 은행이나 증권사처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일정 이상의 자본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규제도 받지 않는다. 이런 규제 사각지대를 이용해 자본금 100만~2000만원짜리 영세 기업들이 거래소 이름을 걸어 놓고 수백억원대의 고객 자금을 맡아 거래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금융ICT융합학회장)는 "국내 가상 화폐 투자 열풍이 불자 거래 수수료를 노린 영세 기업들이 너도나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이 기업들이 과연 제대로 된 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 고객을 보호할 수 있는 자금력이 있는지 전혀 검증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만 20여 곳 난립… 자본금 100만원인 영세 기업도


    본지가 주요 가상 화폐 거래소 14곳 자본금을 확인한 결과, 페이바오·코인룸·코인레일·코빗·코인피아 등 5곳은 자본금이 100만~5000만원에 불과했다. 웬만한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보다도 자본금이 취약한 곳들이다. 이번에 해킹 피해로 파산한 유빗(자본금 3억원)보다 자본금이 많은 곳은 4곳에 불과했다. 국내 최대 거래소인 빗썸을 운영하는 비티씨코리아닷컴이 자본금 205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이야코인(회사명 이야랩스, 자본금 20억5000만원)·HTS코인(한국블록체인거래소, 11억5410만원)·비트포인트코리아(5억원)가 그나마 많은 편이었다.


    지난 19일 해킹 피해를 입어 파산을 선언한 가상 화폐 거래소 '유빗(업체명 야피안)'의 서울 강서구 사무실 모습. 20여곳의 국내 가상 화폐 거래소 중 첫 파산이었다. /박상훈 기자


    영세 기업들까지 가상 화폐 거래소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엄청난 수수료 수익 때문이다. 가상 화폐 거래소들은 보통 거래액의 0.05~0.15%를 수수료로 받고 있다. 이는 증권사들이 주식 거래 때 떼는 수수료(통상 0.005% 안팎)보다 10~30배나 많다. 게다가 가상 화폐 거래는 가격 변동 폭이 크고 20~30대 젊은 층이 수십만~수백만원씩 단타 거래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상 화폐 거래소의 관계자는 "하루 거래량이 평균 5조원에 달하는 빗썸의 경우는 수수료 수익으로 올해 수천억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다"며 "한번 뜨면 수십억원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영세 기업들이 준비도 없이 뛰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상 화폐 거래소를 여는 등록 절차도 금융업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단하다. 관할 구청에 수수료 4만원을 내고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제출해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된다. 더러는 '소프트웨어 개발 및 공급업'으로 등록한다. 이렇다 보니 국내에 가상 화폐 거래소가 몇 군데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조차 안 된다. 통신판매업자의 신고를 맡는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현황을 파악하려고 해도 전국 지자체별로 수십만명에 달하는 통신판매업자 중에서 가상 화폐 거래소를 찾는 게 쉽지 않다"면서 "대략 20~30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일본은 엄격히 규제하는데… 한국은 규제 사각지대


    유빗 사태 같은 영세 거래소의 파산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비책이 전혀 없다. 미국·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1~2년 전 가상 화폐 거래소에 대한 규제에 나선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작년 5월 자금결제법을 개정해 정부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가상 화폐 거래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가상 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려면 '비트라이선스(BitLicense)'라는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자격증을 따려면 지배구조·재무제표를 주(州)정부에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하고, 사업자는 소비자가 언제든 가상 화폐를 달러로 교환할 수 있도록 일정 금액을 달러로 계좌에 넣어 둬야 한다.


    유빗 사태가 터지자 정부는 20일 부랴부랴 관계 부처 간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20일부터 3일간 가상 화폐 거래소 13곳을 대상으로 전자상거래법 등 관련 법률을 위반했는지 현장 조사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단시일 내에 가상 화폐 고객을 위한 안전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데다 정부 인가를 받지 않은 사적인 거래까지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대표는 "가상 화폐는 여전히 실험적인 단계이고 규제 밖에 있는 거래소는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다"며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위험성을 스스로 인지하고 조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