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개척한 스타트업들, 카카오에 울다

    입력 : 2017.12.07 09:12

    [온라인 골목상권 침해 또 논란]


    주차·대리운전·송금·배달 등 새로운 서비스 만든 벤처들, 나중 뛰어든 카카오에 속수무책
    "카카오가 어디에 관심 있다더라" 소문만 돌아도 스타트업계 비상


    빈 주차장을 추천해주는 주차장 앱(응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파킹클라우드는 요즘 비상이 걸렸다. 이 회사는 2년 전 국내 최초로 자동 결제 기능을 갖춘 주차장 앱을 출시하며 올해 매출이 240억원에 이를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인터넷 기업 카카오가 2개월 전 이 시장에 진출하면서 상황이 180도로 달라졌다. 전국 주요 주차장 업체들이 "스타트업보다는 카카오와 계약하겠다"면서 이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의 신상용 대표는 "직원 300여 명이 매일 전국 주차장을 돌아다니면서 하나씩 계약을 따내서 590여 곳을 모았는데 카카오가 진입한 뒤 시장 분위기가 돌변했다"며 "지금 밀리면 3년간 공들인 탑이 한꺼번에 무너진다"고 말했다.


    인터넷 기업 카카오가 온라인에서 교통·음식·금융 등으로 무차별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 국내 스타트업 사이에서 카카오발(發) 온라인 골목 시장 침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카카오가 3~4년 차 벤처 기업들이 개척한 신규 시장에 진출해 한꺼번에 시장을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이용자 4200만명을 보유한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을 바탕으로 미용실 예약, 간편 송금, 음식 배달하기 등 각종 기능을 추가하면서 시장을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다. 벤처기업들의 서비스는 이용자가 따로 앱을 설치해야 하지만, 카카오의 신규 서비스들은 카카오톡이나 카카오T(구 카카오택시) 앱에 업데이트 형태로 추가되는 형태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카카오는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곧바로 가장 위협적 경쟁자가 된다"고 말했다.


    ◇음식 배달에서 주차장 추천까지… 문어발식 확장 나선 카카오


    파킹클라우드가 제공하는 주차장 앱 '아이파킹'은 전국 주차장 업주와 계약해 자동 결제 장비를 설치하고 운전자에게는 주변의 가까운 주차장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운전자는 신용카드를 사전에 등록해 놓으며, 결제기가 차량 번호판을 자동으로 인식해 모바일 앱을 통해 주차요금이 나가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신 대표는 "카카오가 우리 사업 모델과 너무 유사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신 대표는 "2015년 카카오가 투자 제의를 했고, 사업 모델과 각종 자료를 모두 넘겨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카오는 작년에 이 회사의 경쟁사를 인수했고 올 10월에 이 회사와 거의 똑같은 주차 서비스를 내놓았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등장하자마자, 지방자치단체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공영 주차장을 빠르게 확보하고 있다.


    카카오의 온라인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대리 운전을 예약하고 요금을 지불하는 서비스인 대리운전 앱은 작년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이 만든 '버튼대리' 앱이 인기였다. 하지만 카카오가 작년 6월에 대리운전 서비스를 당시 카카오택시에 추가한 뒤 경쟁에서 밀렸다.


    카카오가 이마트와 손잡고 지난 4월 출시한 카카오 장보기 서비스는 스타트업 더파머스의 신선 식품 주문·배송 서비스 '마켓컬리'와 유사하다. 마켓컬리는 대형 마트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 모바일로 장을 볼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카카오톡을 통해 배달 음식을 주문하는 '카카오 주문하기'는 '배달의 민족'과 같은 배달 앱 벤처와 경쟁하고 있다. 카카오의 맛집 추천 서비스 '카카오플레이스'는 포잉, 망고플레이트 등 벤처기업의 기존 맛집 추천 앱과 거의 똑같은 서비스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카카오는 자본력과 우수한 기술력이 있기 때문에 스타트업계에선 '카카오가 어떤 사업에 관심을 보인다더라'는 소문만 돌면 비상이 걸린다"며 "당장은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카카오에 버틴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으론 장담 못 한다"고 했다.


    ◇카카오 "인수·합병 통해 정당한 대가 지불"


    카카오는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에게 '골목 상권 침해'로 집중 질타를 받았다. 김성태 의원(자유한국당)은 국감에서 "네이버와 카카오가 전사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면서 사이버 골목 상권이 잠식되고 있다. 유망한 스타트업과 중소 상공인의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카카오의 이런 행태는 골목의 불량배나 하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카카오 측은 "최근 내놓는 우리의 온라인·오프라인 연계 서비스들은 오프라인의 영세 자영업자 매출을 늘려주는 효과도 있다"면서 "또 새로운 사업 진출은 스타트업에 대한 인수·합병과 투자를 통해 정당한 가치를 지불한 것"이라고 했다. 카카오는 또 "주차장 앱 서비스는 파킹클라우드를 인수하려다가 다른 스타트업을 인수해 제공하는 것"이라며 "파킹클라우드가 독자 서비스라고 주장하는 무인 결제 기술도 이미 비슷한 해외 서비스와 국내 기술이 있기 때문에 카카오가 모방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도윤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카카오의 서비스가 소비자 처지에선 더 좋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카카오의 확장이 기업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줘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미흡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