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개방 전쟁... T맵 개발정보, 100개社가 활용

    입력 : 2017.11.28 09:26

    [정보통신업체들, API 공유 통해 응용서비스 확대… 영향력 키워]


    SK텔레콤 'API 포털' 공개… 다른 회사 개발자가 사용 가능
    우유배달 등에 교통정보로 활용


    KT·네이버·카카오도 API 개방… AI 생태계 주도권 잡기 경쟁
    구글 등 ICT공룡 전략 보는 듯


    SK텔레콤·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대표 정보기술(IT) 업체가 모바일 지도와 인공지능(AI) 서비스의 바탕이 되는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며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공룡들의 생태계 확산 전략과 유사하다.


    SK텔레콤은 지난달부터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과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등 자사 기술 정보를 한곳에 모은 'API(프로그램 개발 정보) 포털'을 열고 누구나 쓸 수 있게 개방했다. API는 다른 기업의 개발자들이 공개 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응용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는 '프로그램 세트'다.


    네이버도 지난 6월 자사 음성인식 AI 플랫폼(기반) '클로바'와 AI 통·번역 서비스 '파파고' 기술을 공개했고, SK C&C와 KT도 AI 서비스 '에이브릴'과 '기가지니' 기술을 공개하며 우군(友軍) 확보에 나서고 있다.


    ◇부품처럼 가져다 쓰는 소프트웨어


    서울우유는 신선한 우유를 배송하기 위해 가장 빠른 배송 경로를 측정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길찾기 소프트웨어는 별도로 개발하지 않았다. 대신 T맵의 공개 기술 사이트(tmapapi.sktelecom.com)에서 교통량 예측과 최적 길찾기 기술을 가져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서울우유 관계자는 "내비게이션에 들어가는 기술을 필요한 것만 가져다 쓸 수 있기 때문에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모바일 내비게이션 서비스 T맵을 자동차 화면에 적용한 모습. 정보기술 업체들이 자사 인공지능 기술들을 잇따라 공개하며 세력 확장에 나서고 있다. /SK텔레콤


    SK텔레콤은 내비게이션 T맵에 들어가는 실시간 교통 정보와 경로 안내, 경로 최적화 등 11가지 기술을 공개했으며, 현재 기업 100여곳이 T맵 기술을 자사의 상품·서비스에 활용하고 있다. 음식 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은 앱에서 고객들이 집 주소를 등록하면 가까운 음식점 목록을 보여주는 데 T맵 지도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골프장 운영 업체 골프존카운티도 자사 앱으로 골프장 예약 고객에게 출발 시간을 미리 알려주는 서비스에 T맵 기술을 이용한다.


    김장기 SK텔레콤 전무는 "T맵 이용 고객이 많아질수록 데이터가 쌓이면서 서비스 품질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은 내년 상반기에 인공지능 비서 '누구'의 기술을 공개해 인공지능 분야에서 업체들의 협력을 이끌어낼 계획이다.


    ◇AI 기술 공개도 대세


    AI 분야에서도 국내 대표 IT 기업들의 기술 공개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KT는 음성인식 AI '기가지니' 기술 공개를 통해 금융·쇼핑·유통 분야에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KT는 지난 6월부터 미래에셋대우와 협력해 음성인식을 이용한 주가 조회, 국내외 시황 정보 제공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또 온라인 쇼핑몰 롯데닷컴과 함께 기가지니를 활용해 내년 초 TV 화면을 보고 음성 명령으로 상품을 검색·주문하고 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KT 이필재 전무는 "기가지니 기술 공개를 통해 국내 AI 생태계를 키우면서 KT의 영향력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SK C&C는 IBM 인공지능 '왓슨'의 한국어 버전 '에이브릴' 기술 공개를 통해 지난달 ING생명과 금융 상담 위주의 챗봇 서비스를 선보였다.


    인터넷 기업 네이버와 카카오도 AI 기술 공개를 통한 세(勢) 확장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 6월 음성 인식 AI 비서 '클로바'와 통·번역 서비스 '파파고' 기술을 공개했다. 현재 80여개 업체가 네이버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네이버로서는 80여개 기업을 우군으로 확보한 셈이다. 이에 맞서 카카오도 내년 초 '카카오아이'를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한국 대표 통신·인터넷 기업들이 자신들이 수백억원을 쏟아부어 개발한 기술을 공개하는 것은 생태계 확장을 통한 시장 선점을 위해서다. 더 많은 기업이 자사 기술을 사용할수록 더 많은 혁신 서비스가 나오고, 이를 통해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KT융합기술원 백규태 서비스연구소장은 "AI 시대에는 통신·제조·인터넷 기업 간의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해질 것"이라며 "초기 시장에서 적극적인 외부 제휴로 강력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곳이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