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충격파' 20년... 30대 그룹 중 11곳만 잔류

    입력 : 2017.11.21 09:19

    [대우 등 11곳 해체, 8곳 탈락]


    삼성(現1위)·LG(4위)·롯데(5위)… 주력사업 과감한 재편으로 약진
    포스코·농협 등 15곳 새로 진입


    고강도 구조조정했던 효성은 뒤늦게 분식회계 혐의로 곤욕


    1997년 1월 재계 순위 14위였던 한보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한보철강이 부도를 맞았다. 이후 삼미·진로·대농·한신공영 등 대기업의 연쇄 부도가 이어졌고, 7월에는 기아그룹이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연말까지 쌍방울·해태그룹의 화의 신청에 이어 고려증권과 한라그룹이 잇따라 쓰러졌다. 외환 부족으로 국가 부도 위기 상황이 벌어지자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IMF(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되어 부실 기업 살리기에 나섰지만 외환 위기로 많은 대기업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IMF 외환 위기 이후 30대 그룹 10곳 중 6곳 해체 또는 탈락


    셀 수 없이 많은 기업이 생멸(生滅)하지만 IMF 외환 위기는 한국 재계 지도를 단번에 흔들어놨다. IMF 위기 직후인 1998년과 20년이 흐른 지금의 30대 그룹 현황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30대 그룹 중 19개 그룹이 해체돼 사라지거나 업황 쇠락과 함께 덩치가 쪼그라들면서 30대 그룹에서 밀려났다.



    1967년 대우실업을 모태로 재계 3위까지 오른 대우그룹은 공격적인 확대 경영을 이어가다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지금까지 대우 이름을 유지해온 대우건설은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고, 대우조선해양은 방만한 경영과 글로벌 업황 부진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


    대우뿐만 아니라 쌍용(7위·이하 당시 재계 순위)· 동아(10위)·고합(17위)·진로(22위)·동양(23위)·해태(24위) 등 11개 그룹이 사라졌다. 한라·한솔·코오롱·동국제강 등은 20년 세월 속에 각종 부침을 겪으며 30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쪼개진 그룹도 4곳에 달한다.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면서 9개 그룹으로 분할됐다. 그룹의 '모태'인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사업을 추진하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10년 가까이 중단됐고, 지난해 현대상선마저 포기했다. 반면 현대그룹에서 분리된 현대차는 재계 서열 2위에 올랐고, 현대중공업과 현대백화점도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5개 그룹으로 분할한 LG그룹은 모태인 LG를 비롯해 GS·LS그룹이 여전히 건재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은 기업들


    삼성·LG·효성 등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덩치를 키우고 세계 1위의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도약했다. 삼성은 IMF 당시 사내 재무팀이 경영 상태를 진단한 뒤 '이익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주력 사업을 전자·금융·무역 등 3~4개로 압축하고, 나머지 계열사를 과감히 정리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술 제휴, 기술 개발 등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원천 경쟁력 확보에 주력해 온 게 지금의 글로벌 삼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20년 전 51조원이던 삼성의 자산 총액은 7배가 넘는 363조원으로 늘어났다.


    LG 역시 GS·LS 등이 계열 분리로 떨어져 나갔지만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핵심 업종에 집중해 4위를 유지하고 있다. IMF 직후 11위였던 롯데는 재계 순위 5위에 올라서 상승 폭이 가장 컸다. 지난 20년 사이 포스코·KT·신세계·미래에셋·한국투자금융 등 15곳이 새롭게 30대 그룹에 편입됐다.


    IMF 외환 위기 전인 1997년 4월 삼성에서 분리된 신세계와 CJ는 매출 성장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사업 확장으로 덩치를 키우면서 30대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20년 지났지만… 여전한 외환 위기 악몽


    IMF 이후 30대 그룹에 살아남은 11곳 중 하나인 효성도 비주력 계열사를 과감히 정리하고 스판덱스·타이어코드 등 핵심 사업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해 IMF 위기를 극복했다. 현재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는 세계 점유율 1위다. 재계 순위는 17위에서 25위로 떨어졌지만 자산 규모는 2배 넘게 증가했다.


    하지만 효성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외환 위기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효성은 당시 정부 요구대로 부실 계열사를 부도 처리하는 대신 우량 계열사와 합병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지난 2014년 검찰은 "분식 회계로 순익을 줄여 이를 부실 계열사에 지원한 것은 범죄"라면서 조석래 회장 등을 재판에 넘겼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정부의 요구대로 부실 계열사를 지원한 것이고, 다른 대부분 기업도 이런 정부 방침을 따른 것"이라며 "세월이 흐르고 정부가 바뀌자 당시 잣대가 아닌 지금의 잣대로 형사 처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