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뉴스·여론 조작... "구글·페북·트위터, 美 민주주의 위협"

    입력 : 2017.11.06 09:14

    ["정보 유통만 한다며 책임 회피"… 비난받는 거대 IT 기업들]


    인종·이민 등 민감한 문제 제기… 사회 흔드는 정치적 불화 조장
    러시아 친정부 조직 페북 계정 1억명에 가짜 게시물 8만건 노출
    러시아가 관리하는 트위터 계정 대선 기간에만 게시물 140만개
    정보 유통기업 책임묻는 법개정… 구글, 막강한 로비력으로 방해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가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인 구글·페이스북·트위터에 유통되는 가짜 뉴스(fake news)와 정치 광고들이 러시아와 연계된 것으로 드러나면서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뉴스·정치 광고 유통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또 이 기업들이 막대한 양의 정보를 유통하면서 콘텐츠 내용에는 책임을 지지 않고, 소셜 미디어에 축적된 데이터를 독점하며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선서하고 있는 미국 거대 정보통신(IT) 기업 고위 임원들. 왼쪽부터 션 에드깃 트위터 총괄고문대행, 콜린 스트레치 페이스북 법무총괄고문, 켄트 워커 구글 부사장 겸 법률자문. /블룸버그


    지난달 31일(현지 시각)부터 이틀간 열린 미국 상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는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법률 책임자 세 명이 나란히 불려 나와 이 사이트들을 통해 인종차별과 공권력에 대한 분노 등 허위 선동을 조장한 게시물이 집중 유포된 정황에 대해 증언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이를 "21세기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테크 기업들이 유럽에서 공짜 뉴스 논란과 세금 회피로 된서리를 맞은 데 이어, 본토에서도 궁지에 처한 것이다. 기존 미디어와 달리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이뤄진 여론 조작, "상상 이상 규모"


    뉴욕타임스는 이달 1일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운영하는 소셜 미디어와 구글의 유튜브를 통한 여론 조작 규모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전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페이스북 변호사인 콜린 스트레치는 러시아의 친(親)정부 성향 조직인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 보유 계정을 통해 2015년 1월부터 2017년 8월까지 가짜 게시물 8만여 건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고 밝혔다. 이 게시물을 직접 받은 이용자는 2900만명이며, 최대 1억2600만명에게 노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국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맞먹는 수준이다. 러시아와 연계된 세력은 페이스북에서 '텍사스의 심장' '흑인주의' '무슬림연합' 같은 계정을 운영하며 흑인인권운동과 이민자 폭력을 조장하는 게시물들을 집중적으로 올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트위터도 가짜 뉴스와 조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트위터는 이날 러시아가 관리해온 계정 2752개를 확인했으며, 러시아의 트윗봇(자동으로 트위터를 올리는 프로그램) 3만6000개가 선거 기간에만 140만개의 게시물을 작성했다고 증언했다. 구글 측은 러시아와 관련된 총 48시간 분량의 유튜브 영상 1108개를 확인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게시물들이 인종·이민 문제처럼 미국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민감한 문제를 제기해 정치적 불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러시아의 의도는 미국 사회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이라고 했다.


    ◇"개인 정보에 대한 접근 권한 제한해야"


    구글이나 페이스북이 허위 뉴스와 불법 게시물, 심지어 성매매 정보까지 전하면서 단지 '유통업자'라는 이유만으로 콘텐츠 내용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선 요즘 미성년자 불법 성매매의 80%가 이뤄지는 백페이지닷컴 같은 사이트를 처벌하기 위해 '사용자가 올린 콘텐츠에 대한 책임을 정보를 유통하는 인터넷 기업에 물을 수 없다'고 규정한 통신품위법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구글은 이를 적극 반대하고 있다. 니컬러스 크리스토프 칼럼니스트는 최근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구글이 막강한 로비력을 동원해 법안 통과를 막고 있다"며 "백페이지닷컴 같은 사이트와 은밀한 연대를 맺는 것은 '악해지지 말라(Don't be evil)'는 구글의 모토에도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유럽에선 내년 5월부터 이용자들이 인터넷 대기업을 상대로 과거 구매 기록을 포함한 개인 정보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미국 사회는 테크 기업들에 무제한에 가까운 개인 정보 접근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와 관련,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마크 워너 상원의원의 말을 빌려 "구글·페이스북·트위터가 광고를 더 많이 팔려고 만든 데이터 수집 시스템을 통해, 이제는 기업들이 정부보다 미국 국민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고 꼬집었다. 로버트 월콧 켈로그 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 1일 포브스 기고에서 "개인 데이터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는 규제를 도입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로서 합당한 책무 지워야"


    미국 의회는 최근 월 5000만명 이상 이용자를 가진 사이트나 소셜 미디어의 경우 500달러 이상을 낸 정치 광고에 대해 광고 날짜와 시간, 광고주 연락처를 공개하는 내용의 법안을 마련했다. 이른바 '정직한 광고법'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기존 TV·라디오·인쇄물에 적용하던 규정을 인터넷 기업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 청문회에 나온 구글·페이스북·트위터 변호사들은 이 법안에 대한 찬성 입장을 묻는 질의에 명확한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수많은 정보를 유통하면서 미디어로서의 책임을 추궁당하자 이를 회피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순다르 피차이(구글), 잭 도시(트위터) CEO(최고경영자)가 청문회에 불참한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우리는 지금 온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격변과 사이버 전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인 기업들은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며 "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 만큼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하원 정보위원회 애덤 쉬프 의원은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사회적 책임을 느낀다면 선정적 정보를 더 널리 퍼뜨리도록 설계된 데이터 알고리즘(논리 구조)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