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변호사' 세계 경제대통령 됐다

    입력 : 2017.11.03 09:24

    [제롬 파월 美연준 차기 의장… "매도 비둘기도 아닌 현명한 올빼미"]


    40년만에 경제학 학위 없는 의장… 여러 의견 경청하는 중재자 면모 완만한 금리 인상 기조 이어갈 듯
    술 삼가는 등 철저한 자기 관리… 일각선 "과감성 부족" 우려
    2000만달러 넘는 자산가이지만 종종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파월은 매파(hawk·강경파)도 비둘기파(dove·온건파)도 아닙니다. 현명한 올빼미(owl)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롬 파월(64)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이사와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피셔 전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의 파월에 대한 평가다. 1일(현지 시각) 미국 언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미국 중앙은행 수장이자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연준의 차기 의장으로 파월 이사를 지명하기로 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금리를 결정하는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급격한 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강경파인 매파, 온건한 금리 상승을 원하는 비둘기파로 크게 나뉘는데, 파월 이사는 그 둘 사이에서 여러 의견을 경청한 후에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는 자세를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월 이사를 차기 의장으로 공식 지명하면 그는 미 상원 인사청문회와 인준 투표를 거쳐 내년 2월부터 4년간 미 연준을 이끌게 된다. 연준 역사상 첫 여성 의장이었던 재닛 옐런 현 의장은 4년 임기를 한 번만 마치고 퇴임하게 된다. 파월 이사의 금리에 대한 입장을 굳이 분류하자면 옐런 현 의장과 같은 '비둘기파'에 속한다. 이 때문에 그는 옐런 의장이 틀을 잡았던 완만한 금리 인상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한 현 연준의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두 차례 금리 인상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 CNBC는 "(파월 지명이) 연준엔 지루한 선택이 될 수 있지만, 시장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평했다.


    ◇변호사 출신 연준 이사… 중재자의 면모


    공화당원인 파월 이사는 2011년 말 민주당 출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연준 이사로 지명했다. 당시 파월 이사가 공화당원임에도 '초당적 정책 센터'에서 일하면서 국가 부채 한도 증액에 반대하는 공화당을 설득하는 데 공헌했기 때문이다. 연준 이사로 출발할 때부터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보인 것이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대부분 경제학을 전공했던 기존 연준 의장과 다른 길을 걸어왔다. 그가 의장이 되면 윌리엄 밀러(1978~1979년 재임) 전 의장 이후 40년 만에 경제학 학위가 없는 연준 의장이 된다. 경제학 석·박사는 물론 학사 학위도 없다. 하지만 경제 분야 실무를 민·관에서 두루 섭렵했다. 뉴욕에서 변호사와 투자은행가로 일한 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행정부에서 3년간 재무차관을 지냈다. 1997년부터 2005년까지는 대형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의 파트너로 일했다.


    그는 당초 연준 의장 후보 가운데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나 옐런 현 의장에 비해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콘 위원장이 버지니아주(州) 샬러츠빌 인종주의 사태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한 뒤 후보군에서 배제되고, 옐런 의장을 향한 공화당 내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1위 후보로 떠올랐다.


    파월 이사는 월가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어 학자 출신인 옐런 현 의장에 비해 금융 규제 완화를 선호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 미 연준은 한국은행과 달리 금융 감독도 책임지기 때문에 금융 규제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 파월 이사는 지난달에도 "규제를 더 늘리는 것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각선 "금리정책 이해도 다소 부족할 수도"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매사에 신중하고 저녁엔 술도 삼갈 정도로 자기 관리에 철저한 성격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격 때문에 일각에선 우려도 나온다. 위험이 따르고 어렵더라도 신속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은 연준 수장 자리를 맡기엔 과감성이 부족하고 판단이 느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연준에 정치적 압력이 가해질 때나 금융 위기가 닥쳤을 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단 얘기다. 법률가로서 금융 규제 분야에 전문성을 갖고 있지만, 통화정책에 관한 이해도는 다소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파월 이사는 칼라일그룹 등에서 일하며 상당한 재산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재산이 최소 2000만달러(약 220억원)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은행가였던 매리너 에클스 전 총재(1934~1948년 재임) 이후 가장 부유한 연준 의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취미는 비교적 소박하다. 평소 기타 연주를 즐기고 종종 자전거를 탄 채 집에서 13㎞ 떨어진 연준으로 출근하기도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