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대책 최대 희생양 '은퇴세대'

    입력 : 2017.10.26 09:57

    60세 이상 임대업자 69만명
    퇴직금에 대출 더해 부동산 구입, 월세 받아서 노후 생활비 충당
    정부 대책으로 대출길 막히며 부동산 활용한 '노후 플랜' 타격
    정기예금 이자로는 생활 힘들어… 고령화시대 사회 문제 될 가능성


    지난봄 대기업에서 퇴직한 김모(58)씨는 퇴직금 등 종자돈 3억원에 담보대출 4억원을 더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대지면적 80㎡짜리 단층 단독주택을 사들였다. 이어 자기 집을 담보로 다시 1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3층짜리 소형 레스토랑으로 고친 다음 월세 300만원에 임대했다. 대출 이자를 제외한 월 순수입은 160만원 정도. 김씨는 "월세가 넉넉하진 않지만, 연금 소득 등을 보태면 그럭저럭 노후 대비가 끝난 거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담보로 한 대출을 활용하는 김씨 투자는 50대 후반이 넘은 '은퇴세대' 사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앞으론 부동산 투자로 노후 준비를 하기가 훨씬 어려울 전망이다. 부동산 대출에 대한 정부 압박이 한층 강해진 탓이다.


    부동산을 활용하는 은퇴세대 '노후 플랜'이 10·24 가계부채 대책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은퇴세대 중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대출을 '레버리지'로 활용, 소형 주택이나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해 월세 수입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0·24 대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은행 대출이 사실상 막히면서 이전처럼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일각에서는 "은퇴자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동산에 의존하던 은퇴세대 위기


    사회 전반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 은퇴 가속화, 사상 최저 수준 금리가 맞물린 최근 2~3년 동안 은퇴세대는 부동산 시장 '큰손'으로 떠올랐다. 60세 이상 부동산 임대사업자 수는 2015년 말 60만2000명에서 불과 1년 7개월 만에 69만2000명으로 급증했다.



    본지가 한국감정원 부동산연구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체 가구 중 투자 목적 부동산 보유 가구 비율이 2010년 9.1%에서 2014년 10.5%로 1.4%포인트 늘어나는 동안 가구주가 60~64세인 가구에서는 이 비율이 10.4%에서 19.7%로 대폭 증가했다. 노년 가구 5집 중 1집꼴로 투자용 부동산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65세 이상에서도 이 비율은 8%에서 10.1%로 늘었다. 그 결과 작년 기준 우리나라 60세 이상 가계 총자산 중 부동산 비중은 평균 79%까지 치솟았다. 전체 연령대 부동산 비중보다 10%포인트 높다.


    50세 이상 장년층은 부동산 투자에 '대출'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해온 계층이기도 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자신이 살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임대업 등 사업자금이나 부동산 매입(주택 외) 자금으로 쓰는 경우를 조사해 보니, 50세 이상은 50세 미만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문제는 10·24 대책이 여러모로 장·노년층과 부동산 임대업 대출에 불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정부는 내년 1월 도입하는 신(新)DTI(총부채 상환비율)를 통해 대출심사 때 대출자의 '장래소득'을 반영할 방침이다. 이는 퇴직을 앞뒀거나 이미 퇴직해 소득이 끊긴 경우는 반대로 예상소득이 줄어들어 대출금 전체가 줄어들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정부는 현재 '부동산 임대업'에 27%(1위)까지 쏠린 금융권 자영업자 대출도 다른 업종에 골고루 분배하는 방안을 다음 달 중 마련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대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자 비용 대비 임대소득이 일정 비율보다 낮은 경우에는 아예 대출을 제한하는 규제까지 검토 중이다.


    ◇"지나친 부동산 옥죄기 부작용 초래"


    대출 축소는 부동산을 활용해 노후 생활비를 마련해온 은퇴세대 수입 감소를 의미한다. 예컨대 그동안 종자돈 3억원을 들고 은퇴한 경우를 보면, 전액(全額) 은행에 정기예금을 넣으면 월 이자 37만원 정도를 받는다.


    하지만 이 돈에 주택담보대출 등으로 3억원(금리 연 3%)을 보태 주택 임대업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한국감정원의 3분기 전국 평균 주택 전세가율 74.4%와 전·월세 전환율 6.4%를 적용했을 때 이자를 제외하고 월세 165만원 정도를 벌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 똑같은 대출로 분양형 상가에 투자했다면, 월 170만원 정도 수익(최근 1년 전국 평균 기준)이 가능하다. 대출 없이 종자돈만으로 투자한 경우, 주택 임대 수입은 120만원, 상가 임대 수입은 122만원으로 쪼그라든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선진국들이 공적(公的) 영역에서 책임져 온 노인 복지를 우리나라는 사실상 개별 가정에 떠밀면서 상당수 개인이 부동산 투자를 통해 해결한 측면이 있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화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시장을 억압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노인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