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전환 어쩌라고?... 과학기술계도 대혼란

    입력 : 2017.10.11 09:35

    [과기부 가이드라인 없어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 논란만 가열]


    - 연구소 "새로 뽑아야"
    "비정규직 연구원 채용 이유는 특정 프로젝트 수행 위한 것… 정규직은 공개 경쟁 거쳐야"


    - 비정규직 연구원 반발
    "이러다가 낙동강 오리알 될 판… 연구소 경영진 논리대로라면 고위급 임원들도 검증 대상"


    과학기술계 비(非)정규직 연구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꼬이고 있다.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방침이 나온 지 2개월이 지나도록 정부 출연연구기관(출연연)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확정하지 못해 출연연 25곳 중 한 곳도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출연연의 비정규직은 전체 직원 1만1641명의 23%인 2677명이다.


    게다가 일부 연구 현장에선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다리다가 계약직 연구원마저 뽑지 못해 인력 공백을 겪고 있다. 비정규직 연구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12일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도 주요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규직 전환 쟁점 떠오른 '공개경쟁'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14일로 예정된 출연연의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를 연기했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은 "현장의 의견을 더 수렴해 정규직 전환 방안을 다시 손보라"고 지시했다.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가 늦춰진 것은 정규직 연구원을 새로 늘리는 방식을 두고 출연연과 연구원 노조 간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출연연 기관장들은 정규직을 공개경쟁으로 새로 뽑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연구원 노조는 이 같은 방침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이견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영근 기자


    출연연들은 지난달 초 전체 기관장 회의를 갖고 비정규직 연구원들의 일률적인 정규직 전환보다는 기존 비정규직을 모두 내보내고 공개 채용을 통해 정규직 연구원들을 새로 선발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출연연은 가이드라인 발표 예정일에 앞서 이 같은 의견을 과기정통부에 전달했다. 출연연 기관장들은 능력 검증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비정규직 연구원들을 정부 방침대로 일괄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하는 것은 출연연의 연구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출연연 고위 관계자는 "비정규직 연구원을 채용하는 것은 한시적으로 특정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는 목적"이라며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고급 전문직인 정규직 연구 인력으로 채용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정규직 전환이 무산된 기간제 교사들처럼 우리도 낙동강 오리 알 신세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신명호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장은 "경영진 논리대로라면 현재 출연연 고위급 임원도 모두 검증과 공개경쟁 대상"이라며 "결격 사유가 있는 인력만 걸러 내고 당초 정부 약속대로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측이 팽팽히 맞서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하는 과기정통부도 분주해졌다. 담당 공무원들은 추석 연휴 전후로 서울과 지방에 있는 출연연과 연구원 노조를 찾아다니며 양측 입장을 듣고 있다. 장홍태 과기정통부 연구기관지원팀장은 "양측 의견이 워낙 팽팽하게 대립하는 바람에 대책 마련이 늦어지고 있다"며 "양측의 불만이 하나라도 남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채용도 '올 스톱'


    정규직 가이드라인 연기에 따른 불똥은 고스란히 연구 현장에 튀고 있다. 10일 본지가 정부 출연연 25곳의 하반기 채용 현황을 확인한 결과, 그나마 매년 200~300명씩 뽑던 비정규직 채용 건수도 단 한 건도 없었다. 출연연에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기다리며 일상적인 비정규직 채용 절차조차 멈춘 것이다. 지방 출연연의 한 인사 담당자는 "정부 가이드라인이 나와야 몇 명을 정규직으로 바꾸고 계약직 연구원을 새로 뽑을지 인력 계획을 세울 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연연의 한 대형 연구 과제 책임자는 "이러다가 연구 프로젝트 진행에 차질이 빚어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구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 과제가 시작되면 정규직 인력이 연구를 주도하고 비정규직을 수시로 뽑는 게 우수 인력 확보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상천 전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은 "무조건 정규직 연구원만 뽑으면 첨단 프로젝트에 박사 학위를 갓 취득한 우수 인력을 투입하는 박사후 연구원 제도를 운용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연구직에 한해서는 세계적인 연구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