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밀려... 장난감이 사라진다

    입력 : 2017.10.11 09:17

    [위기의 글로벌 키즈산업, '스마트 완구'로 돌파 안간힘]


    학교앞 오락실서 10代 손님 실종
    쇼핑몰 장난감 코너엔 완구 대신 어른 위한 프라모델·미니어처…
    美토이저러스, 법정관리 신청… 국내 1위 '손오공'은 외국에 팔려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 홍대 앞의 A오락실. 3층 규모의 이 오락실 1층에는 인형 뽑기 기계가, 2~3층엔 노래방 기기와 다트·농구 게임, 펌프 등이 자리 잡고 있었다. 고객 대부분은 20~30대. 오락실 직원 김모(27)씨는 "10대 손님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옛날 '학교 앞 오락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했다.


    같은 날 복합쇼핑몰 '스타필드 고양'의 장난감 가게 '토이킹덤'. 무선 조종차를 직접 조작해볼 수 있는 'RC카 존'은 어린이가 아닌 '아빠' 차지였다. 기차 모형 하나에 30만~50만원 선인 일본제 기차·철도 모형을 구경하는 사람도 대부분 어른이었다. 지난 8월 문을 연 이 가게에는 전통적인 장난감 소비층인 만 3~12세 아동을 위한 코너는 전체 6950㎡(약 2100평) 매장 면적의 절반 정도다. 나머지는 성인을 겨냥한 프라모델(조립식 장난감)과 미니어처(실물처럼 정교한 모형) 코너다.


    ◇"토이저러스가 스마트폰에 살해당했다"


    완구·오락실·테마파크 등 전통적인 어린이 산업이 스마트폰에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 '장난감 천국'으로 불리던 토이저러스가 지난달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법정관리)를 신청하자 데일리텔레그래프를 비롯, 주요 미국 언론들은 "토이저러스가 스마트폰에 살해당했다"고 보도했다. 장난감 주 소비층인 3~12세 아동들이 완구 대신 스마트폰 게임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장난감'으로 갖고 논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기자


    작년 13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선 글로벌 1위 완구업체 '레고'도 최근 전체 직원의 8%인 1400명을 감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어린이가 직접 조립을 하는 놀이도구 레고보다 '유튜브'에 흥미를 더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저출산·고령화로 아동 인구가 줄고 있는 한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국내 완구업계 1위였던 손오공은 작년 글로벌 완구업체 마텔에 인수됐고, 영실업은 2012년 홍콩계 사모펀드를 거쳐 2015년 홍콩 퍼시픽 얼라이언스그룹에 넘어갔다. 2015년 이마트의 완구 매출은 전년보다 13.6% 증가했으나, 2016년엔 '0% 성장'에 그쳤고, 올 상반기에는 8.3% 줄었다.


    어린이가 매장을 꽉 채우고 있던 오락실은 이제 사라졌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09년 3877개이던 국내 오락실은 2015년엔 500개로 87% 줄었다. 국내 한 테마파크 업계 관계자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어린이 손님이 40%였지만, 지금은 25%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장난감 대신 모바일 게임


    스마트폰의 영향력은 강력하다. 전북 전주에 사는 초등학교 3학년생 김서준군은 방과 후에 스마트폰 '실시간 전략 게임(Real Time Strategy)' '클래시 로얄'을 즐긴다. 가상의 공간에서 성(城) 을 쌓고 세력을 확장하는 이 게임 속에서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접속해 적과 싸운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초등학교 6학년 김은서양은 "친구들과 페이스북이나 B612(셀카 앱) 등에 사진을 올리며 시간을 보내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지 않는다"고 했다.


    올 초 연세대 바른ICT연구소가 스마트폰 이용자 6090명의 사용 시간을 분석한 결과 초등학생의 1일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평균 3.4시간으로 성인(3.35시간)보다도 길었다. 초등학생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웹툰, 음악 등 엔터테인먼트(40%) 기능과 게임(29%)을 이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6 대한민국 게임백서'를 보면 2015년 모바일게임(스마트폰, 태블릿 PC 합산)의 시장 규모는 3조4844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스마트폰과 결합한 '스마트토이'도 등장


    어린이만으론 매출 증대가 어렵자 업체들은 소비층 확대에 나서고 있다. 토이킹덤을 운영하는 신세계그룹의 김성호 팀장은 "과거 장난감 가게에서 고가의 프라모델·미니어처 등 비(非)아동 매출은 5% 안팎이었지만, 요즘 문을 연 점포에선 30%에 이른다"고 했다. '아날로그 완구'가 스마트폰에 밀리자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접목한 일명 '스마트 완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완구업체 마텔의 '헬로바비'의 경우 와이파이와 마이크가 내장돼 어린이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엔 만 6세만 돼도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더 관심을 보이는 상황"이라며 "한국의 경우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까지 겹치며 변화의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