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규 지엘컴 대표 "새로움은 더 나아지려는 것이다"

  • Interview 정선혜 방송인, 패션 스타일리스트

    입력 : 2017.08.31 16:16

    스토리가 있는 만남. 작은 식당에서 시작해 대한민국을 열광시켰던 2002 월드컵 경기의 응원전을 움직이고, 이제는 세계인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 지엘컴(GL COMM.)의 조중규 대표를 만나본다.


    시간이 지나가도 좀처럼 잊히지 않는 그런 순간이 있다.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날"로 기억되는 바로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던 군중의 함성은 서울시청 광장을 흔들어 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 한 편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제는 국가적 스포츠 이벤트가 있으면 당연하게도, 서울시청 광장으로, 월드컵 경기장으로 사람들은 몰려든다. 2002년 그 때 그 자리, 우리의 기억 속의 응원단과 윤도현 그리고 크라잉넛의 열광적인 무대를 통해 새로운 응원문화를 만들었던 사람. 지금은 전 세계의 1% VVIP를 초대하는 글로벌 프로모션 이벤트에서부터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IT 콘텐츠, 건축 인테리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지엘컴(GL COMM.) 조중규 대표를 만나본다.


    GL COMM. 본사 빌딩 제일 위층에 자리한 대표 사무실은 그의 취향을 보여주듯 단정하며 정갈한 이미지로 정돈되어 있다. 하늘이 훤히 보이는 투명한 천정은 언제나 새로운 뭔가를 꿈꾸며 비상하고자 하는 대표의 의지가 엿보인다.


    바쁜 업무 중에도 흔쾌히 만남에 응해준 조중규 대표는 우리가 상상하는 글로벌 '비즈니스맨'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부드럽게 염색한 머리카락, 약간은 수수한 듯 보이는 눈매와 지긋이 머금은 미소는 상대의 긴장을 풀어준다. 아무렇게나 두른 것 같지만 그의 머플러, 셔츠 그리고 재킷의 미묘한 색감의 매치가 딱 떨어지며, 편안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빈틈이 없는 룩을 보여 주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도 참 수수하다.


    조중규 지엘컴(GL COMM.) 대표


    정선혜 : 최근에 큰 행사가 끝난 것으로 안다


    조중규 지엘컴(GL COMM.) 대표(이하 조중규) : 송도 모터 페스티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했고, 베를린에서 IFA(국제가전쇼) 2016 전시가 끝났다. 세계적인 모터쇼처럼 IFA 전시회도 가전제품쇼 중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행사이다. 우리는 LG 시그니처 행사를 담당했는데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정선혜 : 주요 사업에 대해 소개를 해 달라


    조중규 : 2002 월드컵 시청 광장 응원 행사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주력으로 하고 있는 것은 국제 홍보행사, 기업체 프로모션, 국제 컨퍼런스, 이벤트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스페이스 사업팀을 통해 건축 인테리어 일도 병행해서 하고 있다. 버거킹, 작가 건축물, 주택, 웨딩홀 건설 등을 수행했다. 아무래도 큰 행사의 프로모션을 하게 되면 무대 디자인팀의 구성이 필요한데 그 팀이 우리 오더만 갖고는 자생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된 다양한 일들도 추진하게 됐다. 그리고 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컨버전스 팀도 있다.


    정선혜 : 최근에 IT 관련해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조중규 : 다양한 행사를 하다보면 국제행사가 많다. 그 때마다 1천여 명 정도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통역과 관계되는 꽤 복잡한 업무가 있는데, 고가의 기기를 대여하고 관리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아예 우리가 통역 앱(App)을 개발했다. 이미 개발 막바지 단계인데 자사 행사 중에 가져가 앱을 깔고 테스트를 해 보았다. 실용화에 성공했고 보완하는 단계이며 곧 정식 오픈될 계획이다.


    정선혜 : 어떤 앱인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


    조중규 : 국제행사에서 연사가 강연을 하는 동안 무대 뒤 쪽 부스에서는 중국어, 영어 등 다양한 언어로 동시통역 된다. 이때 주로 적외선 통역기를 사용하는데 1천명 규모의 행사가 끝나면 여러 가지 이유로 50개씩 분실 되곤 한다. 하루에 대당 렌트비는 3~4,000원 정도지만 분실하면 한 대에 25만원 가량을 배상해야 한다. 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아직도 그런 제품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항상 이 부분이 많은 고민이었다. 손실도 그렇고 진행시에 생기는 불편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답이 우리가 통역 및 다른 기능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통역 부스에서는 인터넷 방송하듯 진행하면 되고, 참가자에게는 동영상 지원이 가능한 앱을 다운받도록 하고 확인하고 이어폰만 주면 된다. 사용 방법에 대한 특허 정리는 이미 끝났고 다양한 행사에서 실용화를 시도하고 있다.


    컨퍼런스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은 이 앱을 깔아 놓으면 원하는 강연을 언제든지 다시 들을 수 있고, 유료화 서비스를 통해 강연자는 자신의 강연에 대한 러닝 개런티도 받을 수 있다. 단순한 통역뿐만 아니라 컨퍼런스에서의 플랫폼이 되는 것이다. 홍보 및 광고에도 효과적이다. 작년 SDF 행사에서부터 시범적으로 사용해 보았고, 올해 2016년에는 SBS에서 주최한 IT관련 경진대회에서 우승까지 했다.


    이 앱은 다양한 매체에서 동시통역, 자막 제공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우먼스톡' 같은 쇼핑몰에서 팔아도 이 앱을 통해 동시통역이 가능하다다. 중국 플랫폼에서도 얼마든지 한국 상품이나 홈쇼핑 방송을 바로 보낼 수 있게 된다. 홈쇼핑에서는 40% 가까운 수수료를 내야 하지만 이 앱을 통하면 중국에서도 동일한 가격으로 동시에 판매도 가능하다.


    정선혜 :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장이 생길 것 같아 기대가 된다. 이런 새로운 사업들을 어떻게 구상하게 됐는가?


    조중규 :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보다 하고 있는 일에서 연계되는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지금까지의 새로운 사업들은 대부분 하나의 일을 좀 더 잘 하려다 보니 파생된 일들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사업은 이벤트 기획 일이지만 경쟁업체들과의 비딩에서 10개 중 5개가 선정되기만 해도 대박이라고 할 정도로 쉽지 않다. 처음 제안서를 보고 무대 디자인을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늘 숙제 같고 힘들다. 이 작업 부분을 타 업체에게 맡기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며 순발력이 떨어진다. 그래서 직접 디자인을 하는 부서를 두었으며 입찰이 없을 때의 수익을 위해 별도의 건축, 설계팀으로 재편해서 영업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원부서가 자생력으로 영업을 하게 되었고, 버거킹, 미스터 피자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소풍 웨딩홀 등과 같은 건축 설계 사업도 하게 됐다. 그리고 컨퍼런스 등의 국제행사를 하며 불편해서 개선점을 찾다 보니 어플도 개발하고 회사가 주최하는 행사에서 시범적으로 적용해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정선혜 : 일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인다. 힘든 점은 없는가?


    조중규 : 큰 금액의 일은 보통 대기업 행사이다. 대기업 일은 규모가 큰 반면 그에 따르는 리스크도 엄청나다. 이런 순간을 상상해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정주영 회장이 도착해서 연설을 하려는 순간, 마이크에 문제가 생겨 목소리가 청중들에게 들리지 않는다면? 행사는 엉망이 되고 그 순간부터 우리 일은 끝나게 될 것이다. 그 여파로 몇 년간은 국제행사가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화려해 보이는 이벤트 업무는 한 번의 실수로 단 번에 생명이 끝날 수 있는 살얼음 같은 비즈니스다. 반면, 항상 위기 속에 살고 있기에 행사가 잘 끝났을 때 그 기쁨과 감동은 표현 못 할 정도로 크다.


    정선혜 : 어떤 계기로 이벤트 일을 시작하게 됐는가?


    조중규 : 젊은 시절 신림동에서 '돈토'라는 식당을 운영했다. 점주 모임에서 총무 역할을 맡았는데 식당도 홍보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새끼 돼지를 강아지처럼 끌고 다니며 '손님 구함'이라고 적힌 전단지를 배포했다. 그렇게 한 집에 80만원을 받고 40곳을 홍보해 주었다. 신림동에 이어 경희대, 숙대 등에서 흔히들 말하는 대박이 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이벤트 사업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그 이후로 대학교 대동제 등 이벤트 사업을 해왔고 점차적으로 큰 기획사의 에이젠시로 규모를 키워왔다. '밥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대형 기획사의 운영팀으로 활동했는데 현장에서는 우리 회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정선혜 : 회사 대표인데도 현재까지 현장에서 뛰고 있다. 이유가 있는가?


    조중규 : 사실 작은 실수도 용납할 수 없는 현장에서는 모든 게 다 예민한데 그 일이 끝나고 난 후 느끼는 희열은 그 무엇도 따라 올 수 없는 강렬한 중독성의 매력이 있다. 성공적인 행사 후에 느끼는 클라이언트의 칭찬에 전율을 느끼며 마무리하는 일과는 참으로 행복하다. 그래서 다른 사업으로 외도했다가 현장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정선혜 : 지금까지 행사 중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조중규 : 2002 월드컵때이다. SK에서 진행한 행사였는데 총괄은 연안기획, 운영은 우리 팀이 맡았다. 전국 투어 하는 '비 더 레즈' 사전 프로모션 행사였는데 폴란드전에서 이기고 대학로에 이어 시청 앞 길을 막고 행사를 진행했다. 경기에서 우리나라가 계속 이기면서 행사 규모가 점점 더 커졌다. 특히, 스피드 011 등을 페이스 페인팅, 바디 페인팅으로 노출된 경우 캡쳐 된 건당 일정 금액과 인건비를 책정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모두 섭외하고 응원 자리를 맨 앞으로 정해 주며 직접 발로 뛰었다.


    결과적으로 경기장과 시청 앞 응원장 등을 통해 언론에 노출 된 건이 엄청나게 많았다. 우리나라가 4강까지 진출하며 계속 이기니까 오히려 이쪽 수입이 더 좋을 정도였다. 내가 2002 월드컵의 최고 수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이다. 시청 광장 응원 무대에서 시민들과 학생들이 쿵쿵 뛰는데 무대가 무너질까봐 무서울 정도였다. 땅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이기면 이겨서 울고 지면 져서 서로 부둥켜 같이 울었다. 행사가 끝난 후 문화시민 의식을 통한 청소까지 부탁했을 때 행사장도 정말 깨끗해서 마무리까지 정말 감동적이었다. 행사 내외적으로 모든 것에서 성공적으로 끝낸 행사였다.



    정선혜 : 파란만장한 사업 경험이다. 청소년기 시절은 어떠했나?


    조중규 : 중학교 때 8만원을 용돈으로 받았는데 아버지는 늘 하시는 말씀이 "회수권 빼고 한 번에 다 써라. 친구들에게 한 턱을 내더라도 크게 한번 내고 쓰는 거다. 네가 떡볶이 먹을 때 4~5만원 어치 한 번에 사면 500, 600원 돈 안 내고 먹어도 넌 괜찮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용돈을 쓸 때 다른 부모님과 다른 씀씀이를 가르치신 것 같다. 아버지는 선글라스 쓰고 오토바이를 타며 주말이면 많이 다니고 그러셨다. 어머니는 생활력이 강한 가락시장 중개인이셨다. 새벽에 경매에 나가시고 낮에 주무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난다.


    중학교 때 연합고사가 끝나고 저녁마다 군고구마 장사를 동네에서 시작했다. 그 당시 5kg 한 박스에 6000원 정도였는데 하루에 2~3만 원정도 팔았다. 고교 때는 가락시장에서 리어카 끄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 새벽에 가면 리어카를 1000원에 빌릴 수 있다. 리어카 부르면 1박스에 7000원을 받고 짐을 나른다. 새벽에 일하면 6~7만원을 벌 수 있었다. 점점 더 거래처가 많아지고 친구들 여러 명도 함께해서 졸업 후 번 돈으로 차도 샀다. 그 차로 새벽마다 어머니를 모셔다 드렸다.


    정선혜 : 어린 시절부터 아르바이트를 한 이유가 있는가?


    조중규 :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폴로, 게스 등의 옷을 사 입고 싶었는데, 부모에게 돈 달라고 하기엔 너무나 죄송했다. 엄마는 새벽마다 그렇게 일을 하는데 차마 그러질 못했다(웃음). 어린 마음에도 나중에 자식들에게 부끄러울 까봐 수원대 합격 후 반 학기 다니다가 결국은 중퇴하고 한참 후에 다른 대학에서 학사를 마무리했다. 지금은 중앙대 대학원에서 늦은 공부를 하고 있다. 뒤늦게 공부를 하니 재미가 있다. 다만 주말 수업이라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주말엔 아이들과 꼭 같이 놀아주고 싶기 때문이다.


    정선혜 : 사업이 본인에게 맞는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가?


    조중규 : 그냥 스스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배터리를 넣으면 움직이는 8가지 종류의 중국산 공룡 인형을 못 팔고 재고를 쌓아 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당시에 영화 <쥬라기 공원>이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었다. 그래서 나는 1개에 500원 정도로 총 3,200만원에 인수하기로 했는데 그 돈이 없어 돈을 빌려가며 겨우 사들였다. 공룡 인형을 내게 넘긴 사람은 도매로 넘겨야지 그게 팔리겠냐며 오히려 걱정을 해 주었다. 그때 내 대답은, "그냥 앉아서 팔죠"였다. 그냥 꼭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포 시네마 앞에 기념품 파는 아저씨에게 하루에 3만원을 줄 테니 라면 박스 놓을 자리만 달라고 해 박스 깔고 건전지 넣어서 <쥬라기 공원> 조조 상영부터 팔기 시작했다. 인형 1개에 3,000원씩, 8마리 한 세트면 20,000원에 팔았다. 잠도 못 자가며 태엽을 하도 돌려서 손가락에 물집이 생길 정도였는데 결국 다 팔았다. 3,000만원이 1억이 된 것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이 일이 나에게 맞는구나'라고 확신이 들었다. 스스로가 대견하고 즐거웠다.


    정선혜 : 그 1억으로 무엇을 했나?


    조중규 : 통신관련 사업과 앞서 말한 식당 사업의 씨드 머니로 사용했다.


    정선혜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조중규 : 희망사항이지만 45살에 은퇴하는 것이다. 얼마를 벌면 은퇴해야지 했다가 욕심이 자꾸 생겨서 결국은 은퇴를 못할 것 같아 나이를 정했다. 회사는 후배들에게 분사시켜 나눠줘야 할 것 같다. 규모를 키우려고 하면 욕심이다. 그리고 모든 것을 케어 하는 것이 어렵다. 분사시켜서 패밀리 식구를 만드는 것이 좋다. 부장급 정도가 되면 광고주를 껴서 분사시켜 주려고 한다. GL푸드 스토리 등에서 이미 자기자본 없이 시작한 업체를 회사에서 후원해 주고 있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일이라 나의 주변 사람들이 일하기 좋은 컨디션을 만들어 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또 계획하고 있을 것 같다.



    조중규 대표의 스토리를 마치며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나 시작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있다. 조중규 대표는 작은 사업부터 시작해서 희망을 확신으로 담고, 계속되는 새로운 도전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있었다. 학벌과 인맥이 중요하다고 하는 우리 사회에서 보란 듯이 그는 과감하게 자신의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달리고 있다. 남들이 박수를 치고 있는 동안에도 보이는 곳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자신뿐 아니라 동료와 함께 나누고 만들어가는 삶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나도 그처럼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희망에 차 있었을까? 두려움을 그리고 그 짜릿함을 즐길 수 있었을까?


    꿈을 현실로 만드는 조중규 대표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된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