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3년前 주장을 왜곡... 진짜처럼 퍼진 '삼성 국유화論'

    입력 : 2017.08.30 09:29

    "국민연금을 삼성 대주주로" 아이디어를 眞意와 다르게 퍼날라
    해외투기자본으로부터 지키자는 것… 경영권 보장해주는 방식
    '재벌 해체'와는 달라… 장하성 실장도 장 교수와 생각 같지 않아


    ''삼성 국유화'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회자되는 대한민국, 이렇게 시나브로 빈곤 국가로 전락하는 건가', '장하준의 삼성 국유화 발언 현실로, 곧 농경 사회로 회귀하겠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실형 선고 이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선 '삼성 국유화론'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이 주장의 뿌리는 3~4년 전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몇몇 언론 매체와 인터뷰한 내용이다. 네티즌들은 '삼성 잘못되면 나라가 휘청… 원칙적으론 국유화해야'란 제목의 장 교수 인터뷰 기사를 퍼 나르면서, '삼성 국유화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해석을 달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발탁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장 교수의 사촌 형이라는 점은 현실화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의 해석은 장 교수의 주장을 왜곡한 것이다. 장 교수 주장의 요체는 해외 투기 자본으로부터 삼성을 보호하고 삼성 일가의 경영권은 보장해 주자는 것이지, 삼성그룹 소유권을 국가가 박탈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하준의 삼성 국유화론, 진실은?


    장 교수의 재벌에 대한 입장은 '노동 세력이 재벌과 대타협을 해서 경영권은 보장하는 대신, 재벌로부터 복지 재원 등을 얻어내자'로 요약된다. 진보 성향 경제학자들이 외치는 '재벌 해체'와는 크게 다르다. 삼성 국유화론도 '재벌과 대타협'이란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장 교수는 2014년 언론 인터뷰에서 "자본 시장이 개방된 상황에서 법대로 해서 (삼성 3세들이) 상속세 낼 거 내고 지분 잃고 계열사가 해체되면 우리 국민에게 안 좋다고 생각했다"며 "그걸 막기 위해 경영권을 (가족 지배 구조로) 유지하자는 거다"라고 말했다. 삼성의 상속 과정에서 세금을 내느라 삼성의 경영권이 해외 투기 자본에 위협받으면 국가 경제에는 이로울 게 없기 때문에 삼성을 국유화하고 삼성 일가의 경영권은 보장해주자는 얘기다.


    장 교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삼성이 외국 투기 자본의 먹잇감이 되는 것"이라며 "삼성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으려면 일단 삼성의 현 경영 구조를 유지해줄 필요가 있다. 대신 경영을 제대로 못 하면 경영권을 뺏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삼성 국유화 방법도 일각에서 해석하는 '재산 몰수' 형태와는 완전히 다르다. 장 교수는 "(2014년) 현재 국민연금의 삼성 지분이 7~8% 정도 된다"며 "정부가 삼성 3세들의 상속세를 주식으로 받아 국민연금에 넘기면, 국민연금이 대략 12~13% 가진 최대 주주가 된다"고 했다.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서, 외국 투기 자본으로부터 삼성을 보호해 주는 대신, 삼성은 국가를 위해 공익적 역할을 좀 더 하는 것을 말한다. 장 교수는 해외의 모범 사례로 독일 자동차 대기업 폴크스바겐을 제시한다. 폴크스바겐은 2차 세계대전 후 한때 파산했었는데 독일 니더작센 주정부가 돈을 넣어 살리는 대신 19%의 주식을 갖게 됐다. 대신 공장을 폐쇄하거나 회사를 옮길 때 주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기업과 정부가 서로 견제하며 상생의 길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장하성과 장하준의 재벌 철학은 달라


    장하성 정책실장과 장하준 교수는 재벌과 재벌 개혁 이슈를 보는 관점도 크게 다르다. 장 교수의 '노동과 재벌의 대타협'은 현재 재벌의 모습을 어느 정도 용인하자는 주장인 반면 장 실장은 과거 소액주주 운동을 하면서 시장의 압력을 통해 재벌을 시장 경제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 간에 갈등도 있었다. 장 실장이 김상조 한성대 교수(현 공정거래위원장)와 함께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자 장 교수는 "소액주주 운동은 투기 자본에 이용당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했고, "(소액주주 운동이 추구하는) 주주 가치 극대화 논리가 한국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액주주 운동 대신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장 실장은 과거 "타협을 한다는 건 무엇을 양보하고 주고받는 것인데, 총수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대가로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얘기가 없다"며 타협론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며 "사회적 미디어를 통해 설익은 주장을 펼칠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토론해야 할 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