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만 좀 팔고 싶은데... 11번가의 고민

    입력 : 2017.08.29 09:29

    [SK그룹, 신세계·롯데와 '11번가' 지분 매각 협상 난항]


    - SK "경영권은 못 내준다"
    월마트 압도하는 아마존 보며 兆 단위 외부 자금 긴급 수혈해 이베이 버금가는 회사 만들 계획


    - 신세계·롯데 "돈만 내라고?"
    단숨에 온라인 시장 평정 꿈꾸다 지분 일부 매각 방침에 반발
    "경영권 안 넘기면 협상 무의미"


    SK그룹의 온라인 쇼핑몰 '11번가'의 지분 매각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11번가는 SK그룹 계열사인 SK플래닛의 온라인 쇼핑 사업 부문이다. SK는 올 4월부터 신세계·롯데 측과 각각 테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지분 제휴 등 협력 방안을 모색해왔다. 하지만 최근 SK 측이 '11번가의 지분 일부만 팔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신세계와 롯데그룹 모두가 "경영권까지 넘기지 않으면 더 이상 협상은 무의미하다"며 맞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신세계나 롯데와 손을 잡고 온라인 쇼핑몰 시장을 흔들려던 SK의 전략도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 시장은 '1강 4중'의 구조다. 옥션·G마켓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뒤를 11번가·쿠팡·티켓몬스터·위메프가 쫓고 있다. 연간 거래액 13조~14조원으로 규모의 경제를 이룬 이베이코리아만 현재 흑자를 내고 있고, 나머지 4사(社)는 매년 1000억~5000억원대의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온라인 쇼핑업체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양측이 팽팽한 평행선이지만 다시 협상이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다"며 "SK는 여전히 조(兆) 단위 현금을 투자해줄 파트너가 필요하고 신세계나 롯데그룹은 매년 20%씩 급성장하는 온라인 시장에서 단번에 2위로 올라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SK, 4월부터 신세계·롯데와 각각 지분 매각 협의


    올 2월 SK플래닛의 모(母)회사 SK텔레콤이 신세계그룹에 온라인 쇼핑몰 지분 매각을 제안하면서 협상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SK텔레콤은 박정호 신임 사장이 취임한 직후였다. 외부 자금을 수혈해 거래 규모를 이베이에 버금가는 규모로 키우겠다는 전략이었다. 이후 4월 초순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인근의 한 건물에 양측 간 협의팀이 꾸려졌고 협상도 빠르게 진행됐다. 그런데 한발 늦게 소식을 접한 롯데가 뛰어들면서 4월 중순에는 서울역 근처에 SK·롯데 협상팀이 자리 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SK는 2장의 카드를 동시에 쥐고 저울질을 하는 입장이었다. 신세계 측은 당시만 해도 SK와 롯데 간 별도 협상이 진행되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와 롯데는 처음부터 11번가의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협상에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1번가를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 합작사를 설립하고 최대주주를 자신들이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신세계는 현재 온라인 쇼핑 'SSG닷컴'을 운영하지만 여전히 거래액이 2조원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롯데그룹은 온라인 쇼핑사업이 롯데닷컴·롯데백화점·롯데마트·롯데홈쇼핑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다. 두 회사 모두 11번가를 인수해 단숨에 온라인 시장을 평정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였다.


    ◇ SK그룹, "경영권은 못 준다"


    신세계는 지난달 SK플래닛에 협상 결렬을 통보했다. 공식 사유는 "사전 협의 없이 SK가 롯데와도 매각 협상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SK 측이 "지분 일부 매각일 뿐, 경영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순에는 롯데그룹이 SK 측에 "단순 지분 투자만 할 생각은 없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롯데 측에서는 "SK그룹이 처음에는 11번가 매각까지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입장을 바꿨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SK그룹 안팎에서는 최태원 회장이 최근 미국에서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대형마트 월마트를 압도하는 상황을 보면서 11번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는 말이 나온다. 온라인 쇼핑몰이 단순히 온라인에서 물건을 싸게 파는 게 아니라, 막대한 데이터를 축적하는 '테크놀로지 사업'이라는 것이다. SK플래닛의 서성원 대표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11번가가 주력 사업"이라며 "최근에 광고대행업을 SM엔터테인먼트에 매각하고, 패션서비스 등 일부 서비스를 종료한 것처럼 온라인 쇼핑과 무관한 사업 부문을 재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의 한 관계자는 "그룹 내에서는 11번가를 팔았다가 예전 '멜론'의 재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디지털 음원 멜론은 본래 SK텔레콤의 서비스였다가 사모펀드를 거쳐 카카오로 팔렸고, 지금은 국내 음원 시장 1위로 올해 1000여억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