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 AI기술·인재 빨아들이는데... 삼성은 속수무책

    입력 : 2017.08.29 09:20

    [리더십 공백에 얼어붙은 삼성… 글로벌 첨단기술 경쟁서 뒤처져]


    삼성, 한때는 스타트업시장 큰손… 모바일 페이 일찍 눈돌려 대성공
    실패 위험 적잖은 대규모 투자 책임질 사람 없으니 진행 못해
    브랜드이미지 훼손도 큰 타격… S급 인재 불확실성 꺼려 안 와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려는 IT 공룡들의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미국 구글·페이스북·애플·인텔, 중국 바이두 등은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보이는 인공지능 스타트업들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들은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인재를 흡수해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올해 인공지능 스타트업 인수를 한 건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총수 부재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로 인해 M&A와 같은 중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헝클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 전쟁서 삼성전자만 뒷걸음질


    글로벌 IT 기업들은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나 영국뿐 아니라 이스라엘·캐나다·호주 등 다양한 지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인수하며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인수한 스타트업들이 보유한 기술도 딥러닝(심층 학습), 얼굴 인식, 자율 주행, 이미지 검색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삼성전자도 과거 스타트업 시장의 큰손이었다. 삼성전자가 2014년 인수한 사물인터넷(IoT) 기술 기업 '스마트싱스'의 기술은 집 안의 가전제품을 모두 연결해 사용자가 음성으로 통제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스마트홈' 구상의 기반이 됐다. 2015년 인수한 전자 결제 기업 '루프페이'는 최근 누적 결제 금액 10조원을 돌파한 모바일 결제 시스템 '삼성페이'로 이어졌다. 작년 10월 인수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비브랩스'는 삼성전자의 AI 비서 '빅스비'를 탄생시켰다. 빅스비는 올해 프리미엄 스마트폰 '갤럭시S8'과 스마트홈 냉장고에 탑재됐다.


    2014년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가한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와 나란히 행사장을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은 전 세계 IT(정보기술)·미디어·투자 거물들이 모이는 이 행사에 지난해까지 8년 연속 참석하며,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과 친분을 쌓았다. /블룸버그


    하지만 삼성전자는 올들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수사가 본격화 되면서 M&A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유망 스타트업 인수에는 최소 수백억원에서 조 단위의 비용이 든다"면서 "인수한 뒤에 실패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책임 있는 결단을 내릴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과 미래전략실 해체 등 리더십 부재로 인해 삼성전자가 첨단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창경 한양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교수는 "스타트업 인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누구보다 빨리 발굴해 더 많은 금액을 제시할 수 있는 결단력"이라며 "IT 산업은 속도전에서 한번 뒤처지면 영원히 경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높은 분야라는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인재 영입도 '빨간불'


    해외 우수 인재 스카우트에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최지성 전 부회장 등 최고경영진들이 구속되면서 삼성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 데다 회사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올 초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특검 수사 소식이 전해지자 연봉 계약서에 서명만 남겨뒀던 부사장급 해외 인력이 입사를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며 "해외에서는 요즘 사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강해 삼성전자에 대한 선호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급 인력의 경우 사장급 임원이 현지 출장 때 면접을 본 다음 미래전략실 최고 경영진에 채용 여부를 승인받는 구조였다"며 "미래전략실이 해체된 이후에는 제대로 된 인재 영입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의 한 기업에 근무하는 김모(39)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삼성전자 사람들이 페이스북·구글·인텔 등의 한국인 직원들을 적극적으로 접촉하면서 영입 제안을 했다"면서 "올 들어서는 이런 움직임 자체가 뜸해졌다"고 말했다.


    그룹 경영이 불안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인재 이탈 우려도 나온다. 올 7월 이종석 북미총괄 부사장이 노키아테크놀로지 사장으로 옮긴 것과 같이 이직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이런 상황이 국내 산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해외 대기업이나 연구소에 있던 인력들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파이프라인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박사급 인재들은 우선 삼성전자로 이직하면서 국내로 복귀한 뒤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었다"면서 "다른 IT 회사들의 인재 확보에도 영향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