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순대·두부·자전거까지? "법으로 진입장벽 세워야" vs 법으로 막으면 기업 자율권 침해다 "中企 경쟁력만 약해질 뿐"

    입력 : 2017.08.21 09:01

    [새정부 공약 '생계형 적합업종' 법제화 앞두고 찬반 논란]


    대기업 사업진출 가능 분야
    동반성장委가 중재해오다 11년 만에 제재법률 부활 임박


    이달 초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인 제너시스BBQ가 특허청에 자사의 푸드트럭 상표권을 출원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자본력을 갖춘 BBQ가 푸드트럭 사업에 뛰어들면 대부분 자영업자인 기존 푸드트럭 사업자의 매출이 급감할 것이란 우려 때문입니다. BBQ가 이 사업에 뛰어들면 다른 프랜차이즈 업체의 진입이 잇따를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푸드트럭 자영업자들은 "푸드트럭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전국 휴대폰 판매점들은 지난 6월 말 동반성장위원회에 "휴대폰 판매업을 적합업종으로 정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전국이동통신유통협회는 최근 1년 6개월 동안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휴대폰 판매점 1000곳 정도가 폐업했으며 이는 통신업체의 직영점 증가(같은 기간 380여 곳)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통신업체가 수억원씩 들여 핵심 상권에 인테리어 번듯한 직영점을 내면 주변의 휴대폰 판매점 매출이 타격을 입는다는 것입니다. 동반성장위는 현재 실태 조사에 나선 상황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 간 갈등이 터질 때마다 항상 거론되는 제도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입니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자영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이 해당 업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제도입니다. 현재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중소기업과 협의해 적합업종을 지정하면 대기업이 협의대로 자율적으로 따라주는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달 국정 5개년 계획에서 '생계형 적합업종'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아예 법적으로 대기업의 진입을 차단하는 더 센 규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적합업종 제도는 대·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한 불가피한 보호 정책이라는 긍정론과 함께 기업의 자율성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중소기업·자영업자 보호하는 법률… 2006년 폐지됐다가 부활 논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본래 1979년 생긴 '중소기업 특화업종 지정' 제도가 뿌리입니다. 1970년대 정부 주도 수출 전략에 따라 대기업이 급격하게 성장하면서 대기업·중소기업 간 격차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으로 경제적 성과를 독식하는 현상을 막기 위해 봉제 완구, 세탁비누, 성냥, 우산 등 중소기업만 할 수 있는 23개 사업 영역을 법률로 정했습니다. 이후 1982년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1989년에는 최대 237개 업종으로 확대됐습니다. 이후 신규 지정을 중지하고 점차 축소하다가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폐지됐습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이 제도가 사라진 2010년 초반 대기업 집단의 오너 일가와 친인척들이 빵집 사업에 진출하면서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이 커졌습니다. 순대, 자전거 판매업, 두부, 예식장 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부는 여론을 등에 업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동반성장위원회를 2011년 발족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게 과거 고유업종 제도와 유사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입니다. 지금까지 제과점업·간장 고추장 같은 장류·두부 등 70여 개 업종이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대기업의 진출을 법률로 사전 차단하지는 않았습니다. 과도한 시장경제 간섭이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합의에 따라 적합업종 품목을 지정하도록 했고, 지정 기간도 최대 6년으로 제한했습니다. 당시 적합업종들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해제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계에서는 해제 이후 대기업의 재진입과 확장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번 정부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를 대체할 수단으로 '생계형 적합업종'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업종을 지정해 보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정부가 생계형 업종을 지정하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해당 분야에 신규 진출하지 못하며, 이미 영업 중인 기업은 확장이 제한됩니다. 적합업종 법률이 11년 만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과도한 기업 경영 침해 반론도


    생계형 적합업종의 법제화 과정에는 많은 진통이 뒤따를 전망입니다. 취지는 좋지만 예상되는 부작용도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먼저 해외 국가와의 통상 마찰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이 제도를 폐지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 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정부는 대기업의 참여를 막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매년 보고서를 낼 때마다 이 제도를 무역 장벽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협의를 통한 자율 규제지만, 생계형 적합업종은 법으로 강제하기 때문에 통상 마찰 우려는 한층 더 커질 전망입니다.


    기업 자율권에 대한 과도한 침해라는 비판도 있는 상황입니다. 식품이나 제과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중견기업이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지적입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고 있는 SPC는 제빵 분야에서만 특화해 지금까지 성장해왔는데 이런 규제 때문에 매장을 확대하지 못합니다. 풀무원이나 샘표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70여 년간 간장·고추장·된장 사업에만 주력해온 샘표식품은 이제 주력 분야인 장류 사업을 더 키워선 안 되는 상황입니다. 적합업종 제도가 자율 경쟁을 저해해 오히려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저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적합업종은 이렇게 찬반이 갈리는 논쟁 대상의 제도입니다. 우리 경제·산업이 더 이상 대기업만으로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국내 고용의 89%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맡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자영업자가 모두 윈-윈하는 해법을 찾는 노력이 이번 국회에 상정될 '생계형 적합업종 법률' 논의에 반영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