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곳은 충분" vs "살고 싶은 곳이 부족"

      입력 : 2017.08.11 09:41

      [서울 주택 공급량 논란… 아파트 값은 75주 만에 하락]


      - 정부 "공급 충분하다"
      오피스텔 등 대체 주거공간 늘고 올해 분양 예년보다 60~80%↑


      - 업계 "살 수 없는 집까지 통계 포함"
      1000명당 주택수 한국 355가구… 뉴욕 412, 도쿄 579, 파리 605


      "서울에 집이 모자라나?"


      지난 '8·2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서울 주택 공급량을 두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며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기준 주택 보급률은 전국 102.3%, 서울 96%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추가 분양하는 주택을 더하면 올해 서울 주택 보급률이 100%에 근접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정부 주택 보급률은 현재 주택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며 "정부 정책 기반이 된 '주택 공급량'에 대한 개념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전문가 "살 만한 곳 부족"


      주택 공급 부족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주택 보급률 계산식이 잘못됐다고 본다. 현행 주택 보급률은 대상 지역 내 '총 주택 수'에서 '일반 가구' 수를 나눈 값. 이 '일반 가구'에는 외국인 가구 등 13만 가구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면 서울 주택 보급률은 90%대 초반까지 떨어진다고 추정한다.


      '주택의 질(質)' 문제도 나온다. 실수요자들이 '살 만한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낡은 집이 많다는 얘기다. 최소 주거면적과 용도별 방 개수, 전용 부엌 등을 기준으로 따진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가구는 전국 102만7000가구 정도. 이 중 51.7%가 수도권에 있다. 서울 한남뉴타운 등에도 벽에 구멍이 뚫려 사실상 사람이 살지 못하는 집이 있는데 이 역시 주택보급률 통계에 포함된다. 이런 공가(空家)가 서울에만 5000여 가구로 추산된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건축 연한이 오래 지나 일반인들이 거주하기 꺼리는 주택이나 멸실(滅失) 주택까지 모두 포함하기 때문에 주택 보급률이 높아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투기 수요 지역으로 지목한 강남 집값 상승 역시 '공급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전문대학원 교수는 "올해 하반기에만 서울 강남 4구 재건축 예정 단지에서만 1만3000가구가 이주할 예정인데 해당 지역 올해 입주 물량은 1년 동안 9640가구에 불과하다"며 "공급이 모자라면 가격이 오르는 게 당연한데 정부가 '투기'로만 몰아간다"고 말했다.


      ◇정부 "살 곳 충분"


      정부는 주택 보급률에 외국인 가구를 포함시킨다고 해도 오피스텔 등 아파트를 대체하는 주거 공간이 늘어나 현재 주택 보급률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주장한다. 외국인 가구는 2005년 8만5000가구에서 2015년 43만3000가구까지 늘어났고, 주거용 오피스텔은 같은 기간 15만7000실에서 32만7000실로 늘었다. 김영국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과장은 "올해 분양 물량은 지난 5~10년 평균보다 60~80% 많아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고 있다"며 "올해 말 서울 주택 보급률이 97.8%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서울 송파구 잠실 주공 5단지. 이곳은 정부가 '8·2 부동산대책'에서 투기 지역으로 지정한 서울 강남 4구 중 하나다. 정부는 "서울 아파트 공급량이 충분한데도 가격이 오르는 건 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부에선 "서울 공급량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정부가 '공급량 충분'을 주장하는 또 다른 근거는 주택 시장 호황으로 최근 2~3년간 분양 물량이 크게 늘어 공급 예정 물량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 5년간 서울에 분양된 아파트는 연평균 3만8000가구. 올해는 6만1000가구가 분양될 예정이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강남에 살고 싶은 사람 수요만큼 공급을 해야 한다면 수백 층짜리 아파트를 지어도 부족할 것"이라며 "서울 인근 수도권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울로 통근할 수 있는 범서울 지역이 늘어났고, 수도권은 과잉 공급을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000명당 주택 수는 부족


      주택 보급률 대신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를 지표로 사용하는 해외와 비교했을 때 우리는 상대적으로 주택 수가 부족하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주택 수는 355가구. 뉴욕(412가구)·도쿄(579가구)·런던(399가구)·파리(605가구)보다 많게는 220여 가구까지 차이가 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외국에 비하면 절대 주택 수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통상 주택 보급률이 서울 등 수도권은 110%, 지방은 120%까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도 "주택 보급률이 과대 계산되어 있다"며 "최근 몇 년간 전세금과 매매가가 동시에 상승한 것은 투기 세력이 아니라 공급이 부족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한편 '8·2 대책' 효과로 급등하던 서울 아파트 값이 1년 반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국감정원은 7일 기준 서울 지역 주간 아파트 값이 지난주 대비 0.03% 떨어졌다고 10일 밝혔다. 서울 주간 아파트 값이 하락한 것은 작년 2월 29일 이후 75주 만이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큰 폭(0.33%)으로 올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