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 이후 12년 만에... '세무조사 칼' 뽑아 다주택자 정조준

    입력 : 2017.08.10 09:30

    [부동산 투기 세무조사]


    국세청 "전국 단위 고강도 조사"


    - 8·2 부동산 대책 1주일 만에…
    "취준생이 서울에 아파트 소유 등 100여명이 자금 출처 불투명…
    가족·사업체 금융거래까지 추적… 추징은 물론 형사고발도 할 것"


    - "부동산 정책 과거로 회귀" 지적
    전문가들 "양극화 부각시키면서 국민 다수 지지 끌어내려는 의도"


    국세청은 9일 부동산 투기를 겨냥한 기획 세무조사에 전격 착수하면서 보도 자료를 통해 "이번 조사 대상 286명은 부동산 거래 관련 세금 탈루 혐의가 명백하다"고 밝혔다.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강한 표현을 사용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혐의가 명백하다는 표현은 '추징이 거의 100% 확실하고 형사 고발도 상당수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탈세를 밝히는 데서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이번 조사는 단발성이 아니라 '시리즈'가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세금 탈루 혐의 명백한 286명 추적 조사


    국세청은 이번 조사 대상을 5개 유형으로 분류했다. 상당히 구체적인 사례들까지 공개했다.


    첫째, '자금 출처가 불투명한 다주택자'다. 별다른 소득 없이 이미 보유한 집 3채 이외에 올해 상반기 서울 반포에 10억원짜리 아파트 1채를 더 산 20대, 27세 취업 준비생으로 소득이 따로 없는데 서울에 아파트와 분양권을 가진 경우 등이다. 이들은 자금 출처를 못 밝히면 집 살 돈을 부모·배우자 등으로부터 편법 증여받았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세무조사 대상 286명 중 자금 출처가 불투명한 다주택자가 1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9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이동신 국세청 자산과세국장이 '부동산 거래 관련 탈세 혐의자 세무조사' 대상과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둘째, '양도 차익 축소 신고'다.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혁신도시 등에서 고액의 프리미엄이 형성된 아파트 분양권을 12차례 양도하고, 세액은 400만원만 납부한 경우, 청약 당시 경쟁률이 33 대 1이고 프리미엄이 4억원 붙은 서울 강남 지역 아파트 분양권을 팔아놓고 차익이 없었다고 한 사례 등이다.


    셋째 '거액 전세금 편법 증여'다. 시아버지로부터 전세 자금을 받은 며느리가 본인 명의로 서울 강남에 있는 전세 15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며 고급 외제차를 굴리는 사례가 있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세 기간이 끝나 며느리가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으면 증여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넷째, '투기성 중개업자'다. 중개업소 3개를 운영하면서 본인 명의로 아파트와 단지 내 상가 30건을 양도하고 소득은 3년간 1000만원뿐이라는 경우, 중개업자가 본인 명의로 분양권을 사고팔면서 실제 거래 가격보다 낮은 값을 적어넣는 다운계약서로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경우 등이 실제 있었다.


    다섯째, '주택 신축·판매업자의 탈세'다. 빌라 수십 채를 새로 지어 팔아 번 돈으로 고가의 부동산, 주식, 고급 외제차를 사들여 놓고도 소득을 축소 신고해 세금을 덜 낸 사례가 나왔다.


    앞으로 국세청이 계획대로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를 확대 실시할 경우 조사 대상과 유형도 다양해질 가능성이 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사업체까지 추적"


    국세청의 이번 세무조사는 탈세 혐의가 있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까지 추적한다. 가족 간의 금융 거래 등을 일일이 확인해 탈세를 잡아낸다는 것이다. 조사 대상이 되는 가족에는 배우자와 자녀·부모 등이 포함된다. 기업을 하는 사람이 사업소득을 누락시켜 부동산 매입 자금을 마련했다면 그 기업도 세무조사를 받는다. 예컨대 물품 판매 대금을 현금으로 받아 만든 비자금을 배우자에게 건네 아파트를 사게 했다면 증여세와 함께 법인세도 물어야 한다. 기업 세무조사에서 다른 탈세가 드러나면 형사 고발도 당할 수 있다.


    국세청은 이번 세무조사가 부동산 시장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자금 출처 조사와 분양권 전매 차익 추적은 약효가 빠르다"며 "시장이 바로 반응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편법 증여를 통한 주택 매입 자금 마련이 막히고, 양도 차익을 감출 수 없게 되면 부동산 투기가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조명래 단국대 교수(도시계획부동산학)는 "시장 원리에 따른 것이 아니라 소수 투기 혐의자를 겨냥한 조치일 뿐"이라며 "집값 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이 못 된다"고 말했다.


    ◇상반기 부동산 탈세 추징 작년보다 27% 증가


    국세청은 이번과 같은 기획 조사와 병행해서 납세자의 신고를 받아 그 내용이 사실인지 확인한 뒤 탈세를 추징하는 일반 조사도 지속적으로 실시한다.


    올 상반기 이를 통해 추징한 세금은 2672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자녀의 주택 매입 자금을 변칙 증여하거나 분양권 양도 차익을 줄여 신고했다가 적발된 사례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