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족쇄' 두달 만에... P2P 금융 성장세 뚝

    입력 : 2017.08.09 09:14

    ['개인 간 거래' P2P 금융 싹 자르는 가이드라인]


    美·英·中보다 제약 훨씬 강해
    계속 상승세 타던 대출 증가액 7월 들어 반토막 아래로


    "내가 내 돈으로 투자를 하는데 왜 더 못하게 하는 겁니까. 한 해에 1000만원밖에 못하는 줄 알았으면 다른 데 투자했을 텐데요…."


    8일 오전 서울 역삼동에 있는 P2P(peer to peer·개인 간) 금융회사인 '테라펀딩'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걸려 왔다. 이 투자자는 '1년에 한 회사당 1000만원'으로 금융 당국이 정한 P2P 금융 투자 한도 때문에 테라펀딩엔 더 투자할 수 없게 되자 불만을 토로했다. 이 회사 정수현 팀장은 "홈페이지 등에 투자 한도가 1년에 1000만원이라고 공지하고 있지만 투자자들이 '이해할 수 없다'고 항의하면 난감하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가 투자자를 보호한다며 만든 'P2P 금융 가이드라인'이 시행 석 달째에 접어들면서 부작용이 가시화되고 있다. 출발부터 늦었던 한국의 P2P 산업이 채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어가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7월 P2P 대출 증가액, 이전의 절반 수준


    P2P 금융은 돈이 필요한 사람이 전문 중개 업체를 통해 대출 금액·사용처 등을 올리면 불특정 다수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금융 서비스다. 대출을 받는 사람은 2금융권보다 저렴한 금리로 돈을 빌리고 투자자는 은행보다 높은 이자를 챙길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온라인으로 모든 거래가 이뤄져 대표적인 핀테크(fintech·금융과 정보기술의 결합) 산업으로 꼽힌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한국P2P금융협회가 8일 발표한 7월 대출액 현황을 보면 지난 7월 누적 대출액은 1조2092억원으로 전월(1조1163억원)보다 463억원 정도 늘었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P2P 금융 누적 대출액은 월평균 1158억원씩 늘어 왔는데 증가세에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P2P 금융 누적 대출액은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1년 동안 월평균 15.5%로 늘어 왔지만, 증가율 역시 7월엔 4.0% 수준으로 추락했다. 6월 증가율은 14.9%였다.


    P2P 금융 업계는 증가세가 꺾인 주요인으로 5월 28일부터 시행된 'P2P 금융 가이드라인' 규제를 지목하고 있다. 이 가이드라인엔 투자자가 한 회사를 통해 투자할 수 있는 한도를 한 해에 10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업계는 첫 달에는 한도가 찬 투자자가 많지 않았지만 두 달째인 7월에 접어든 후 한도에 걸려 투자를 못한 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1000만원 투자 한도' P2P 산업 싹 자르나


    금융 당국은 P2P 금융은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고 투자 만기 전에 돈을 빼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강력한 투자자 보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또 P2P 금융 가이드라인이 설정한 투자 한도가 회사당 1000만원이기 때문에 여러 회사에 분산투자를 하면 투자액을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P2P금융협회 회원사 수는 54개로 이론적으로는 한 해에 5억4000만원(1000만원×54개사)까지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P2P 금융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반박한다. 한 P2P 금융회사 대표는 "P2P 금융 상품은 은행의 예·적금과 달리 금리 외에도 투자한 돈을 누구에게 빌려주는지, 중개 회사의 신뢰도는 좋은지 등 투자자가 투자하기 전에 연구해야 할 항목이 훨씬 많다. 투자자들은 중개 회사가 그동안 쌓은 신뢰도를 매우 중시하기 때문에 한도가 찼다고 다른 업체를 찾아가 재깍 투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중국·영국 등 한국보다 앞서 P2P 금융이 발달한 나라들도 나름의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지만, 한국보다는 제약이 훨씬 덜하다. 미국은 투자 한도가 없는 대신 대출 채권에 대해 정확하고 세세하게 공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중국도 대출자가 빌릴 수 있는 돈에만 한도(1인당 100만위안·약 1억7000만원)를 2015년 도입했을 뿐 투자자에 대한 제약은 없다. 영국은 P2P 중개 회사의 자본금 등 인가 관련 규제만 도입해둔 상태다. 미국의 지난해 P2P 금융 규모(신규 대출액 기준)는 약 367억달러, 중국은 738억달러로 한국(4억달러)의 91배, 184배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