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택자 집 팔라면서... 살 사람 대출 묶으면 어쩌란 말이냐"

    입력 : 2017.08.09 09:07

    [앞뒤 안맞는 8·2 부동산 대책… 졸속 규제에 불만·항의 봇물]


    - 분양권 보유 10만여가구 불만
    양도세 면제 2년거주 요건 추가… 기존 법 믿고 샀다가 날벼락 맞아


    - 젊은 부부·다주택자들 난감
    LTV 강화로 내집마련 멀어지고 투기지역 이미 양도세 10% 올라


    "인생 계획이 다 틀어질 판입니다. '거주 요건'이란 게 생길 줄 알았다면 지금 사는 용인 근처에서만 청약했겠죠.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법을 바꾸면 기존 법을 믿고 집을 산 서민은 뭐가 됩니까?"


    경기도 용인에서 전세로 사는 회사원 A씨는 2015년 서울 강북의 소형 아파트(전용면적 59㎡) 청약에 당첨됐다. 그는 "처음엔 입주하려 했는데, 둘째 아이를 갖기로 결심하면서 양육을 도와줄 본가 근처를 떠나기 어렵게 됐다"며 "서울 집을 2년 뒤에 팔아 용인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30평대 집을 사려 했는데, 난데없이 1주택자에도 거액의 양도세를 물리겠다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방위 규제를 담았다고 주장한 '8·2 부동산 대책'이 곳곳에서 허점을 노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대책 발표 이전에 계약금이 건너간 주택 거래에 대해서는 새로운 금융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는 등 보완책을 7일 발표했지만,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국민 생활에 파급력이 큰 부동산 정책을 너무 허겁지겁 발표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토부에 항의·문의 전화 쇄도


    8일 회원 수가 22만명이 넘는 한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8·2 대책'과 관련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정부에 본격적으로 항의하자" 등의 글이 잇달아 올라왔다. 실제로 국토부 해당 부처에 문의·항의 전화가 쇄도했다. "미리 알았으면 안 샀을 것 아니냐" "3년 만에 겨우 몇천만원 오른 동네가 왜 투기지역이냐" 등의 항의가 많았다. "우리 동네가 왜 규제 대상에서 빠졌느냐"는 전화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불만이 큰 규제로 A씨처럼 1주택자 양도세 면제 요건에 '2년 거주'가 추가된 것이 꼽힌다. 특히 서울과 세종 등에서 아파트에 당첨된 분양권 보유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8월 3일 이후 잔금을 치르거나 등기를 설정한 가구가 적용받기 때문에 계약금과 중도금만 낸 분양권 보유자는 모두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인포는 "현재 분양 계약을 하고 입주를 기다리는 경우가 서울 4만여 가구 등 규제 대상은 최소 10만 가구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2008년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정부는 이번처럼 1주택에 해당하는 분양권 보유자에게 '3년 보유, 3년 거주' 규제를 도입했다가 번복했다. 운정신도시, 판교신도시, 은평뉴타운 등 분양권 보유자들이 조직적으로 정부에 이의를 제기하자 이를 수용한 것이다.


    ◇젊은 층 "내 집 장만 더 어려워져" 불만


    서울에 사는 30~40대는 LTV(주택담보대출비율) 강화에 대한 불만이 크다. 정부는 실수요자들을 우대하기 위해 "부부 합산 연소득 6000만원 이하인 무주택 가구에는 LTV를 10%포인트 완화해 주겠다"고 했지만, 중위가격이 6억3000만원 정도인 서울 아파트값을 생각하면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연봉 6000만원인 전자회사 직원 황모(38)씨는 "세금 등을 뗀 실수령액은 연 5100만원인데, 5억원짜리 집을 사려 해도 연봉 절반 이상을 10년 이상 꼬박 저축해야 한다"며 "은행 대출이 막히면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가점제만으로 당첨 여부를 결정하는 청약 제도 개선안도 비판 대상이다. 국토부는 "청약 때 특별공급 기회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특별공급 대상자 중 '다자녀 가구'와 '노부모 부양자'는 이미 가점제로도 당첨 가능성이 크고, '결혼 5년 이내 신혼부부'는 현실적으로 자금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집을 살 수도 팔 수도 없다"


    다주택자들 사이에선 "뭘 어쩌란 건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온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내년 4월(서울 전역 다주택자 양도세 인상 시점)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사는 집이 아니면 좀 팔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 시내 11개 구(區)와 세종시는 3일 '투기지역' 지정과 동시에 양도세가 10%포인트 오른 상태다. 재건축이 진행 중인 아파트 소유자는 분양권 거래가 막혀 팔 수도 없다. 임대사업자 등록은 현실적으로 다주택자 입장에서 등록에 따른 재산권 제약과 추가 세금 부담이 양도세 면제 혜택보다 크다는 평가다.


    권대중 대한부동산학회장은 "정부가 다주택자에게 '집을 처분하라'고 하면서 재건축은 팔지도 못하게 하고, 매수자들은 대출을 못 받게 규제했다"며 "진로도 퇴로도 막혀 혼란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책을 급하게 바꾸면서 시장 참여자들이 '연착륙'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며 "지금처럼 '거래 절벽'이 계속돼 주택 매수 수요가 임대 시장으로 몰리면 전·월세 시세가 급등해 무주택자가 더 큰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