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요금 악몽... 내려도 죽고 안 내려도 죽는다

    입력 : 2017.08.08 09:10

    [통신 3社, 내달 통신비 강제 인하 앞두고 소송까지 검토]


    - 내리자니…
    "매년 3조원 넘는 매출 줄어들고 국내외 주주들 배임소송 우려"


    - 버티자니…
    막 출범한 정부의 핵심 공약, 적폐로 몰릴까봐 전전긍긍


    통신비 인하를 사이에 놓고 정부와 통신업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다음 달 1일부터 선택약정 요금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는 내용의 행정처분을 시행키로 하고 최근 통신 3사에 오는 9일까지 의견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SK텔레콤·KT·LG유플러스는 부정적 견해를 담은 의견서를 제출하는 한편, 실제 행정처분이 이뤄질 경우 법정 소송까지 고려하고 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선택약정 할인율 인상은 법적 근거가 희박하고 민간 기업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처분 취소 및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통신요금 인하가 대통령 핵심 공약임을 앞세워 통신비 인하를 관철하겠다는 입장이다.


    ◇"손실 규모 감내하기 힘들다"


    통신업계가 새 정부 초기인데도 법정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정부안대로 추진될 경우 매출 손실이 조(兆) 단위를 넘어서는 데다 이로 인한 주가 폭락으로 경영진들이 배임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7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을 받는 선택약정 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인상할 경우 가입자 평균 요금 월 4만6200원을 기준으로 현재 약정할인 가입자 1500만명에게 연간 4158억원을 추가 할인해줘야 한다. 제도 시행 후 추가로 선택약정으로 전환하는 숫자도 올해 600만명, 내년 1800만명으로 늘어나 매년 연간 1조4500억원 수준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근 입법 예고한 기초연금 수급자 월 1만1000원 요금 감면에 따른 매출 손실은 연간 517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내년 상반기 2만원대의 보편적 요금제까지 도입되면 통신업계로선 연간 3조원이 넘는 사상 초유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선택약정 할인율을 25%로 올리면 요금에서 할인받는 금액이 단말기 보조금보다 많아져 '보조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을 규정한 법률 취지에도 전혀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모순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신업계, "소송해도 죽고 소송 안 해도 죽는다"


    통신 3사는 벌써부터 국내외 주주들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한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주주들이 아직은 정부안이 그대로 시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어 그나마 주가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 정책이 가시화되면 주가 폭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도 최근 "이명박 정부 때 추진했던 기본료 1000원 인하, 문자메시지 50건 무료 등으로 2007~2011년 사이 4년 동안 가입자당 평균수익(ARPU)이 17% 하락했으며 이로 인해 통신업체의 시가 총액이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증권가에선 이번 조치가 시행될 경우 당시보다 훨씬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해외 투자자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제도(ISD·Inv 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이 제도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국내 통신업계의 외국인 주주 비중은 SK텔레콤 42.9%, KT 49% LG유플러스 48.6%에 이른다. 독일 도이치방크는 지난 6월 발행한 한국 이동통신산업 관련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의 통신시장에 대한 잘못된 인식 때문에 한국 통신사업자들의 가치가 약 42% 저평가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통신 3사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 힘든 속사정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부 출범 초기에 정부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가 자칫 적폐 세력으로 몰려 고초를 겪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통신업계 고위 관계자는 "정부를 상대로 감히 소송을 제기할 수도 없고, 배임 소송을 당할 게 뻔한데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도 없고 이래저래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통령 공약 반드시 관철시키겠다"


    정부는 기존 통신요금 인하안에서 한발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유영민 과기정통부 장관이 지난달 말 통신 3사 CEO(최고경영자)들을 잇따라 만났을 때도 "통신비 인하는 소득 주도 성장을 내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이란 점을 시종일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통신업계가 선택약정할인율 적용 범위를 신규 가입자로 축소하는 방안 등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정부에서 모두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통해 "작년 통신 3사는 3조6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고, 올해도 1·2분기 영업이익 늘어나고 있음에도 통신비 인하 정책에 반발하고 있다. 선택약정할인율 상향 조치를 수용하고 보편요금제 출시하라"며 통신 3사를 압박하고 나섰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요금 인하안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마케팅 비용과 5G(5세대 이동통신)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다"면서 "마케팅 비용이 급감할 경우 전국 2만여 영세 유통사업자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