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대폭 인상 발표 뒤에... 사장님은 동남아 공장 찾아 출장중

    입력 : 2017.08.02 09:22

    ["1명 인건비로 베트남선 10명 고용… 해외 안가는 게 더 이상하지 않나"]


    섬유업계 인력, 인건비 부담에 2000년 33만명서 절반 급감
    국내공장 줄이고 해외로 눈돌려


    섬유·완구·장갑 등 中企대표 "딱 내 세대서 단종될 업종"


    7월 28일 경기도 포천에 있는 화학섬유업체 D사의 생산 공장. 축구장 5개 크기(약 3만9000㎡)의 대형 공장에 들어서자, 끝없이 늘어선 대형 철제 걸이에 하얀 실뭉치 1만여 개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실에서 원단(原緞)을 뽑는 대형 기계 100여 대 가운데 90여 대는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 회사는 한국 포천과 베트남 꽝남성에 공장이 있는데, 해외 바이어들의 주문이 베트남 공장으로 옮겨가면서 한국 공장은 주문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 대표는 "최저임금 16% 인상이 적용되는 내년에는 국내 공장을 더 축소하고 해외 공장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섬유공장 '스톱' - 지난 28일 섬유업체 D사의 경기도 포천 공장 내 원단 생산 기계가 가동을 멈춘 모습. 출고되지 못한 원단은 공장 바닥에 늘어져 있다. /주완중 기자


    이 회사에서 29년째 근무 중인 이모씨는 "최저임금 인상이 발표된 뒤, 직원들은 우리 사장의 베트남 출장을 무서워한다"며 "사장의 베트남 체류 기간이 길어질수록 한국 공장이 문 닫는 날이 더 빨리올 거라며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된 7월에는 베트남에 2주 이상 머물렀다"고 했다.


    한때 30만명 이상을 고용했던 국내 섬유(纖維) 업계에 고용 쇼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최저임금 인상이 진행되는 내년에 국내 공장 폐쇄·축소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다. 섬유 업계는 2000년만 해도 국내에서 33만여 명을 고용했지만 지금은 16만명으로 뚝 떨어졌다. 정명효 경기섬유산업연합회장은 "최저임금 7530원은 손익계획 세울 때 한 번도 상정해본 적이 없는 숫자"라며 "대부분의 국내 섬유 공장들은 이런 금액으론 이익을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섬유업계뿐만 아니라 완구·장난감·장갑과 같은 '인건비 한계 업종'들도 내년에 고용을 대폭 줄일 전망이다. 인건비 비중이 높고 최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이런 산업군은 그간 중국·베트남에 밀리면서도 고품질을 앞세워 근근이 국내 공장을 돌렸지만 최저임금의 벽(壁) 앞에 급속하게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7월 28일 서울 관악구에 있는 완구업체 한립토이스의 생산공장. 지하 1층 300㎡(약 90평) 규모 작업장에서 40~60대 중년 여성 10여 명이 수작업으로 플라스틱 모형을 조립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0~20년씩 일한 직원이다. 이 회사 소재규 대표는 "20년 전 완구업체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할 때 '직원들 버리고 어떻게 떠나나' 하는 생각에 남았다"며 "하지만 이제 더는 어려울 것 같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소 대표는 "내년에는 고용을 줄이고 모자라는 물량은 중국에서 주문자제작생산(OEM)으로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국내 공장 포기하는 인건비 한계기업들


    국내 완구 업계에서는 내년 최저임금 16% 인상을 앞두고 '올해가 한국산 완구 마지막 해'라는 말이 돈다. 1980년대 후반 수출 10억달러(약 1조원)를 기록했던 완구산업이지만 작년에는 9130만달러(약 920억원) 수출에 그쳤다. 그 대신 수입은 작년 8억달러를 넘었다. 중국과 베트남의 저가 공세에 속수무책인 것이다. 한국완구공업협회의 김문식 전무는 "이제 국내 생산은 한계에 왔다"며 "소규모라도 공장을 돌리는 국내 업체는 30~40곳에 불과하고, 나머지 300여 곳은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해외에서 물량을 떼와 판다"고 말했다.


    국내 공장 폐쇄·축소는 노동집약 업종에서 공통적인 현상으로 나타난다.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대성장갑의 김영곤 회장은 "40년 넘게 공업용 장갑을 만들어왔지만 시급이 이만큼 올라가면 더 버티기 쉽지 않다"며 "가는 데까지 가보다가 안 될 때 손 놓겠다"고 말했다. 국내에 이 회사처럼 20~30명 규모의 공장을 가진 장갑 제조업체는 20여 곳에 불과하다. 이들은 베트남에서 만든 저가(低價) 장갑이 국내 시장에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품질 좋은 단골 제조사'라는 이유로 버텼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시급 올라갔다고 단골에게 납품가를 올릴 수는 없다"며 "장갑은 딱 내 세대에서 단종될 업종"이라고 했다.


    ◇최저임금 급등, 해외 이전 가속화할 것


    국내 중소기업들의 해외 이전은 역대 최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집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들이 작년 한 해 동안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총 60억2300만달러(약 6조8700억원)다. 해당 통계를 작성한 1980년 이래 역대 최고치다. 해외 법인 설립도 1594개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았다. 최저임금 인상이 이런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포천 화섬업체 D사 관계자는 "현재 최저임금 기준으로도 국내 근로자 1명 인건비면 베트남에선 8명을 고용할 수 있다"며 "내년부턴 10명을 고용할 수 있는데, 안 나가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했다. 이 회사 국내 공장의 최저임금 근로자의 인건비는 월 240만원, 베트남 공장은 월 250달러(약 28만원)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 생산을 포기하고 베트남 등에서 생산해 싸게 납품해달라"고 압박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