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무성했던 면세점 1·2차 大戰... '보이지 않는 손' 있었다

    입력 : 2017.07.12 10:29

    [면세점 선정 조작] 2015년 사업자 선정때 무슨 일이


    - 7·11월 두차례 '심사 조작'
    매장면적, 다른 잣대를 적용해 롯데 점수 깎고 한화 유리하게
    기부금 기준 바꿔 두산 낙점


    - 관세청 '밀실 심사'
    "부작용 크다"며 점수 비공개
    2016년 3차땐 근거 자료 조작해 사업성 없는데도 4곳 추가 선정


    김낙회 前 관세청장(왼쪽), 천홍욱 관세청장.

    관세청이 2015년 면세점 사업자 선정 당시 '점수 조작'으로 특정 기업에 특혜를 준 것으로 드러나자, "믿기지 않는 황당한 일"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인허가 상당수는 평가 절차와 결과가 당사자들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기준을 바꿀 수는 있어도 점수를 노골적으로 조작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관세청은 심사위원·채점 결과 등을 공개하라는 요구에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밀실에서 마음대로 '점수 조작'을 일삼았다. 업계에서는 "관세청이 제2롯데월드 인허가 등으로 이명박 정부 특혜설이 나돈 롯데를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원천 배제하기로 작정하고 점수표를 조작한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부가 원칙도 없이 '고무줄 정책'을 펴온 면세점 제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조작할 수 있나"


    감사 결과 관세청은 1차 선정(2015년 7월) 당시 3개 항목 점수를 한화에 유리하게 해 롯데를 탈락시켰다. 먼저 업체들의 '매장 면적'과 '공용 면적'을 구분해 점수를 매겨야 했지만, 한화의 경우에만 매장 면적에 공용 면적을 포함시켜 점수를 높게 줬다. 또 법규 준수도를 평가하면서 '보세 구역 운영인 점수'(89.5점)와 '수출입 업체 점수'(97.9점)를 93.7점을 줘야 하는데도, 이 중 높은 '수출입 업체 점수'만 반영했다. 이 같은 조작은 업체가 제출한 정보와 채점 결과를 공개하면 금방 드러나지만, 관세청은 '비공개'로 이를 숨겼다. 감사원은 "제대로 평가했다면 롯데가 271점 차이(1만점 만점 기준)로 선정되지만, 실제로는 한화가 159점 차이로 선정됐다"고 밝혔다.


    관세청은 2차 선정(2015년 11월) 때도 2개 항목 점수를 조작했다.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을 최근 5년간 실적으로 평가하겠다고 공고해 놓고, 2년간 실적만 평가해 롯데에 120점 적게 줬다. 이 때문에 롯데는 104.5점 차이로 두산에 뒤졌다.



    관세청의 점수 조작이 검찰 수사와 재판에서 확정되면 한화와 두산의 면세점 사업권은 취소될 수도 있다. 관세청 담당자들은 "방대한 자료를 검토하느라 발생한 실수"라고 감사원에 해명했다. 한화나 두산 측도 "관세청의 선정 과정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지시로 추가 선정… 배후는?


    업계는 특정 업체를 선정 또는 탈락시키려는 의도가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관세청 수뇌부가 기업의 로비를 받고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 청와대 등 정치 세력이 지시했는지 등은 검찰 수사로 밝혀질 전망이다. 다만 2016년 계획에 없던 서울 면세점을 추가로 선정한 배경에는 청와대가 개입한 사실이 감사에서 드러났다. 2년마다 발급하기로 한 신규 사업권을 1년도 안 돼 또 내주기로 한 것이다.


    손님이 없어 한산한 서울 여의도의 한화갤러리아면세점(위 사진)과 동대문의 두타면세점(아래 사진). 이 면세점들은 관세청의 점수 조작으로 롯데면세점이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하자 대신 문을 열게 됐다. 최근 면세점 매출이 줄며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은 임원 연봉을 10% 삭감했고, 두타면세점은 영업 면적을 줄이고 영업 시간도 단축했다. /김연정 객원기자·조선일보DB


    2015년 1월 기획재정부·관세청 등은 추가 면세점 선정은 2년마다 검토·발표하기로 했지만 그해 12월 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수석실에 "2016년에도 신규 사업권을 발급하기 위한 법령 개정을 19대 국회 임기 내(2016년 5월)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경제수석실의 E 비서관은 곧바로 기재부에 이를 지시했고, 관세청은 2016년 4월 서울 면세점 사업권 4개를 추가 발급하겠다고 발표했다.


    ◇면세점 사업권 남발, 업계 위기로


    관세청은 면세점 시장이 포화 상태인데도 기초 자료를 왜곡해 신규 사업권 4개를 추가 발급하는 근거를 마련, 2016년에 이를 허가했다. 규정상 신규 사업권을 내주려면 해당 지자체의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30만명 이상씩 늘어나고, 전년도 전체 시내면세점 매출액 중 외국인 비중이 50% 이상이 돼야 한다. 당시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외국인 방문객이 전년 대비 6.8% 감소했다.


    그러나 관세청은 2015년 면세점 선정 과정에 사용한 2013년 대비 2014년 서울 외국인 관광객 증가분을 근거 자료로 재사용했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는 "최근 면세점 업계에 적자가 지속되는 총체적 위기가 온 것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사업자를 선정하고 사업권을 남발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났다"며 "면세 사업은 정부가 사업권을 쥐고 흔들 게 아니라 외국처럼 경제 논리와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