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美IT기업들 '디지털 독식' 깨려... 전방위 규제 나섰다

    입력 : 2017.07.10 09:15

    [실리콘밸리 기업 때리는 유럽]


    유럽 주요국, 구글 동시 압박… 영국은 '알파고' 사업에 제동
    독일은 '페이스북法' 만들어 가짜뉴스 등 방치 땐 벌금 부과
    프랑스, 우버 재진입 막기 총력


    - 유럽, IT기업 성장 토양 만들기
    구글, 유럽 검색시장 92% 점유
    AI·자율차 시장 등도 뺏길 우려 미국 독과점 기업에 '철퇴' 내려
    자국 기업들에 기회주려는 의도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미국 인터넷 기업 구글에 24억2000만유로(약 3조10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구글이 검색 분야의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자사 온라인 쇼핑 서비스인 구글쇼핑에 불법적인 혜택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EU가 반독점법 위반에 부과한 과징금으로는 최대 금액이다. 앞선 최대 과징금 기록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인 인텔에 부과한 10억6000만유로였다.


    유럽연합과 유럽 주요 국가들이 구글·애플·아마존·페이스북·트위터·우버와 같은 미국 IT 기업들을 상대로 전방위 규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반독점법 위반에서 탈세 혐의 조사, 현지 법률을 위반한 영업 중지 등 최고 강도의 규제가 즐비하다. 수천억원대 과징금이나 추징금 부과는 물론이고 미국 IT 기업 임원을 상대로 형사 고발한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알파고에 태클 건 영국, 페이스북 압박하는 독일


    구글에 대한 압박은 유럽 주요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번 과징금 부과와 별개로 광고 서비스와 스마트폰 운영 체계(안드로이드) 등 다른 2건의 반독점 혐의를 추가 조사하고 있다.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최근 "예비 조사 결과, 이 2건에서도 구글이 경쟁법을 위반했다는 증거와 정황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등 유럽 각국은 구글에 법인세를 추징했거나 현재 탈세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블룸버그


    영국 정부는 아예 구글의 인공지능 신사업을 가로막고 나섰다. 이달 3일(현지 시각) 영국의 정보보호위원회(ICO)는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 딥마인드와 영국 의료보험기구(NHS)의 환자 정보 공유 협약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딥마인드는 바둑 기사 이세돌과 커제를 연이어 꺾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만든 회사다. 딥마인드는 지난 2월부터 영국 런던의 로열프리병원 환자 160만명의 정보를 활용해 인공지능 의료 서비스 개발에 나선 상태였다. 이에 대해 영국 정부가 "환자들은 자신들의 정보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지 못한다"며 제동을 건 것이다.


    독일에선 페이스북·유튜브·트위터와 같은 미국 소셜 미디어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독일 연방 하원이 가짜 뉴스나 테러·폭력을 선동하는 게시물을 방치하는 소셜 미디어 기업에 최고 5000만유로(약 650억원)의 벌금을 물리는 네트워크운용법안(일명 '페이스북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헤이코 마스 독일 법무장관은 "이런 거대한 기업들은 정치적 압력 없이는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에 법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지난 5월 EU로부터 메신저 서비스 와츠앱을 인수할 때 허위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1억1000만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애플은 무려 130억유로(약 16조6000억원)짜리 세금 폭탄을 맞고 EU 측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작년 8월 EU의 거액(巨額) 법인세 추징에 불복해 유럽사법재판소(ECJ)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EU는 애플이 유럽에서 거둔 이익을 아일랜드 법인으로 이전한 뒤, 조세 당국과 협의해 낮은 법인세만 낸 것이 위법이라는 입장이다.



    차량 공유 업체인 우버는 프랑스 택시 시장에 재진입하기 위해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사실상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달 초 "유럽사법재판소의 법률 자문관이 프랑스 정부가 우버에 적용한 교통법은 법적·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의견서를 재판관 측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는 2년 전 우버의 시장 진입 후 택시 기사와 문제가 불거지자, 교통법을 개정해 우버의 임원 2명을 형사 고발하고, 택시 영업을 막았다. 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스페인 등 많은 유럽 국가가 우버 서비스의 일부 또는 전체를 불법으로 규정해 막고 있다.


    ◇자국 인터넷 시장을 송두리째 뺏긴 유럽의 고민


    유럽의 미국 IT 기업 압박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선 유럽 국가 한 곳이 특정 기업을 상대로 규제 선례를 만들면 이를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른 기업으로 확대 적용하는 식이다. 예컨대 영국 정부가 2015년 구글이 영국 내 매출을 다른 나라로 이전해 법인세를 회피해온 행위에 대해 추징하자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이 같은 논리로 탈세 조사에 나서는 식이다. 또 애플·아마존 등으로 규제 대상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불거진 독일의 '가짜 뉴스 법안'이나 영국의 '의료 정보 협약 제동' 등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유럽의 각종 규제에 대해 불복 소송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럽 압박 배경에는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디지털 독과점'을 깨고 유럽 IT 기업의 성장 토양을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유럽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점유율은 90%를 넘을 정도로 막강하다. 아예 점유율 1%짜리의 유럽 현지 검색 업체조차 존재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소셜 미디어, 전자상거래 등 다른 인터넷·모바일 시장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대로 두면 인공지능이나 자율자동차와 같은 차기 시장도 모두 송두리째 미국에 뺏길 가능성이 크다. 유럽 정부가 미국 독과점 기업들에 철퇴를 내려 유럽 IT 기업들에 더 많은 기회를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소수의 미국 거인(giants) 기업들이 과도하게 몸집을 불리고 부(富)를 장악하는 현 상황에 대해 명확하게 경고해야 한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