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울리는 주식 공매도... 폐지 땐 得보다 失이 크다는데

  • 조선닷컴 뉴미디어경영센터

    입력 : 2017.06.26 09:09

    [말 많은 공매도 유지하는 이유는]


    - 엔씨소프트 주가 폭락 사태
    공매도 쏟아지며 주가 11% 급락… 불공정 거래 의혹 조사 진행 중


    - 공매도 폐지하지 않는 이유는
    나쁜 정보가 제때 반영 안되면 다른 투자자들에게 피해 전가
    금지 효과 크지 않다는 연구도


    - "공매도 운영 방식에 문제"
    주식 빌리기 어렵고 정보 격차… 개인 투자자에게 '불공정 게임'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리니지 M' 출시를 하루 앞둔 20일. 엔씨소프트의 주가가 11.4% 폭락하자 각종 주식 게시판에는 "공매도(空賣渡) 세력이 주가 폭락의 주범이다"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주가 폭락은 리니지의 핵심 인기 요소 중 하나인 '거래소' 콘텐츠가 제외된 채 출시된다는 발표와, 이 회사 배재현 부사장이 보유 주식 8000주를 최근 매도했다는 공시가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매도가 쏟아지면서 주가가 폭락했다. 엔씨소프트 주식에 대한 공매도 규모는 6월 1~19일까지 하루 평균 3만주, 121억원 수준이었는데, 20일 갑자기 19만주, 762억원으로 폭증했다. 다음 날에는 31만주, 1122억원으로 상장 이후 최고치까지 찍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은 배 부사장의 주식 매각과 공매도 급증에 불공정 거래 의혹이 있다고 보고 조사를 진행 중이다.


    주식회사의 탄생 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투자 기법인 공매도는 이번 엔씨소프트 주가 폭락 사태뿐 아니라 세계 각국 증시에서 벌어진 숱한 주가 폭락의 원흉으로 지목돼 왔다. 그런데도 공매도 제도가 주요국 증시에서 꿋꿋하게 명맥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매도는 정말 유죄일까?


    ◇ '박스권 증시'가 키운 공매도


    공매도는 말 그대로 없는 것을 내다 판다는 뜻이다. 가령 현재 1만원짜리 주식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자. 이때 이 주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빌려서 1만원에 팔았는데 주가가 실제로 하락해 9000원이 됐다. 그때 주식을 9000원에 사서 되갚으면 1000원의 차익을 남기게 된다.



    이런 투자 기법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탄생과 함께 고안돼 금융 선진국에서 보편화됐다. 제시 리버모어라는 전설적인 투자자는 1929년 미국 대공황 때 공매도를 통해 1억달러를 버는 대박을 터뜨렸다.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중반까지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한국 증시가 꾸준히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에 숏(매도)보다는 롱(매수)이 돈 벌기에 수월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한국 증시가 박스권에 갇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롱숏펀드(주가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사고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은 팔아 절대 수익률을 추구하는 펀드)와 헤지펀드 시장이 커지면서 공매도의 위력이 배가됐다.


    이에 따라 유가증권시장에서 하루 평균 공매도 거래 금액은 2014년 1981억원에서 2017년 3492억원으로 73% 급증했다. 이와 함께 공매도가 시장을 교란해 개미들을 울리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지난해 9월 한미약품에서 악재성 공시를 하기 직전 공매도 물량이 급증하고 주가가 급락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줬다. 지난해 11월 대우건설도 회계법인의 '의견 거절' 감사보고서가 나오기 직전 공매도가 쏟아지면서 금융 당국이 조사에 나섰다.


    ◇주가 하락 때마다 몰매…안 없애나, 못 없애나


    공매도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 주가가 추락하면, 해당 주식 보유자들은 큰 손실을 본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공매도를 없애려는 시도는 멀게는 18세기 유럽 일부 국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가깝게는 2008~2009년 금융 위기 당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금융주를 중심으로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시킨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공매도 제도는 번번이 부활했다.


    공매도가 생명력을 유지하는 이유는 나름대로 시장에 미치는 순기능이 있고, 공매도 금지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은 2008년 9월 "공매도 금지 조치가 시장의 균형을 복원시킬 것"이라고 했다가 3개월 후 "앞으로는 그 같은 조치를 다시 하지 않겠다. 공매도 금지의 비용(단점)이 이익(장점)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전문가들이 공매도를 옹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공매도가 시장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보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좋은 정보든 나쁜 정보든 주가에 빠르게 반영되는 것이 효율적인 시장"이라며 "나쁜 정보가 제때 반영되지 않은 가격은 '버블'이며, 그 피해는 결국 다른 투자자에게 전가된다"고 말했다. 공매도가 없더라도 떨어질 주가는 어차피 떨어진다는 얘기다. 또 공매도는 한 기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진 투자자가 '긍정적 의견'을 가진 투자자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무기가 된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즉 긍정적 의견을 가진 투자자는 '매수'라는 행위를 할 수 있지만, 부정적 의견을 가진 투자자는 공매도 제도가 없을 경우 시장에 참여할 방법이 없어 거래에서 배제되고, 결국 시장의 왜곡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공매도 금지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연구도 있다. 영국 경제정책연구센터(CEPR) 알레산드로 웨버 교수는 2008년 1월부터 2009년 6월 사이에 걸쳐 30개국에서 시행된 공매도 금지 조치의 효과를 분석한 후 "매수·매도 호가의 격차를 벌려 시장을 교란하는 부정적 효과가 있었으며, 특히 중소형주, 그리고 옵션이 연계돼 있지 않은 주식에 부정적 영향이 컸다"는 논문을 냈다.


    ◇'개인에 불리한 불공정 게임'이 근본 문제


    공매도 자체보다는 우리나라 공매도 운영 방식이 개인 투자자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는 것이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무엇보다 기관·외국인과 개인 간에 공매도 시장 접근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 공매도를 하려면 일단 주식을 빌려야 하는데, 외국인이나 기관은 주식을 대량 보유한 연기금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쉽게 주식을 빌릴 수 있지만 개인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공매도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이 때문에 공매도 투자 주체는 외국인과 기관이 7대3을 차지하고 개인의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황세운 실장은 "개인 투자자의 공매도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증권사가 대주(貸株·주식을 빌려주는 것) 중개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보의 비대칭성과 격차도 공매도를 불공정 게임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공매도꾼'들은 미공개 내부 정보를 이용하거나 허위 정보를 퍼뜨려 공매도를 통해 이득을 얻는 범죄까지 서슴지 않으면서 정보의 비대칭을 부풀리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불공정 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얻는 경제사범에 대해서는 매수든 매도든 구분 없이 엄벌에 처해야 투자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부터 공매도 개선책을 고심하고 있다. 작년 7월 특정 종목을 집중 공매도한 사람의 신원을 공개하는 '공매도 실명제'를 도입했고, 올 들어서는 공매도 과다 종목에 공매도를 제한하는 '공매도 과열 종목 지정제'를 내놓았다. 공매도 거래 현황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공매도 포털'도 26일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