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운명이다!"

  • Interview 유승용 Editor 이호택

    입력 : 2017.06.20 13:42

    조운호 대표는 음료업계에서 히트상품 제조기로 통한다. 우리 고유의 음료를 찾아보기 어렵던 시절에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우리나라 작물을 활용한 음료를 출시했고 잇달아 히트상품 대열에 올렸다. 그는 대한민국 음료 역사에서 살아있는 토종 성공 신화를 썼다. 그런 그가 하이트진로음료 신임 대표이사에 취임하며 하이트진로그룹의 10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까지 세계를 호령할 수 있는 우리만의 국민음료를 만들어 내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신임 CEO 조운호 대표를 만나봤다.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 /Photographer 김성호


    조운호 대표의 직무실에 들어서자 먼저 큼지막한 액자에 걸려 있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새싹과 같은 형상이 가득한 캔버스 중앙에는 작은 샘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려는 듯, 역동적인 물결이 일고 있다. 이제 막 취임한 리더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로운 제품을 탄생시키기 직전의 고민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느낀 탓인지 조운호 대표는 첫 만남에서 생명이 착상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화두를 던졌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하나의 정자가 난자에 착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으로는 가장 튼튼하고 빠른 정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튼튼하고 빠른 1진은 자궁 안의 산에 의해서 다 죽습니다. 사실상 1진이 모두 쓰러지고 2진 중에 가장 강한 정자가 난자를 차지하죠. 생각해 볼만한 문제 아닙니까?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이죠. 초기에 시장을 진입한 선두주자가 살아남는 것을 보며 시장에 진입한 2진 중에서 성공하는 브랜드가 나오는 사례가 있죠. 시장 경쟁의 이치를 보면 핵심은 대동소이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음료에서 조운호 대표의 전략은 조금 다르다. 강한 1등을 선점하고 경쟁업체의 추격을 확실히 막아낼 수 있도록 지속성장 가능한 마케팅 전략을 짠다는 계획이다. 그는 이를 '요트의 1등 전략'으로 설명한다.


    "요트는 바람을 타고 경쟁합니다. 우선 선두에 올라서고 나면 확실히 1등을 유지하는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역전을 노리는 2위의 행동 패턴과 똑같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 1등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그는 이처럼 바람의 힘을 이용하며,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 전략에서는 환경과 시류를 고루 통찰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과거 그가 히트상품전문가로서 자신이 독특한 아이디어와 철학을 통해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장 전체의 역사와 시류를 읽는 통찰력을 기반으로 조직의 단결된 힘을 받아 지속 가능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가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좀 더 거시적이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음료업계에 몸담으며 늘 간직해왔던 '가장 한국적인 제품이 가장 세계적인 제품'이라는 제품 개발 철학의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각오다.



    '마실거리' 외길 100년의 역사, 승부를 걸 시점에 서다


    웅진식품에서 획기적인 신상품을 만들던 당시 조운호 대표의 나이는 30대 중반에 불과했다. 웅진식품 마케팅부장에서 대표이사까지 초고속 승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시장을 깜짝 놀라게 할만한 신제품의 연속적인 히트가 기반이 됐다. 보통 음료시장에서 단일 제품으로 100억원이 넘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내는 사례는 3년에 한번 꼴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웅진식품에 몸담고 있으며 100억원 이상의 히트상품만 7개를 출시했다. 그 중 3개는 1천억원이 넘는 '메가히트' 상품이었다. 아침햇살, 초록매실, 하늘보리 등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소재로 만든 순우리말 브랜드 제품들은 여전히 마케팅 성공사례로 인정받고 있다.


    30대 혈기왕성하던 그도 어느새 지천명의 나이를 넘겼다. 하지만 세월은 그에게 귀한 선물을 주었다.


    "웅진식품에 있을 당시, 그룹사 대표들을 모시고 아침햇살을 제안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모두가 부정적이었습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파트를 정리하라고 보냈더니 일을 오히려 키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죠. 맛이라도 봐주십사 하는 제 면전에서 시제품을 던지며 '가지고 꺼지라'는 수모도 당했습니다(웃음).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미래에 대한 명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버텨내고 이겨낼 수도 없었다고 봅니다. 세월이 흘러 어느새 음료업계에 몸 담은 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당시의 젊음은 이제 제게 없지만 세월은 ‘안목’과 ‘내공’이라는 선물을 줬습니다. 시장 전체를 보며 함께 끌어나갈 수 있는 신념과 혜안이 갖춰졌다고 확신합니다."


    예전과 지금의 그에게서 전혀 달라지지 않은 한 가지가 분명히 있다. 바로 '몰입'의 자세이다. 몰입은 성공에 대한 확신에서 출발한다. 해방 이후 산업의 발전과 함께 음료시장도 성장했다. 하지만 90% 이상이 외국의 것이었다. 외산 브랜드에 로열티를 주고 판매하던가 외국 음료의 제조 형태를 그대로 답습해서 만들었다. 우리만의 것이 나올 시점이 되었고,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는 과감히 우리만의 음료 개발에 몰입했고, 성공해 냈다. 물론 선발주자의 아픔도 있었다. 획기적인 제품을 만들어냈지만 지속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고 믿는다. 그는 세계시장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의 음료가 나올만한 시기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근거는 바로 하이트진로음료라는 회사의 정체성에서 찾았다.


    "2024년 하이트진로 그룹은 100주년을 맞이합니다. 승부를 걸 시점이 왔습니다. 하이트진로는 그간 국민맥주 하이트, 국민소주 진로를 만들어냈습니다. 진로 석수는 한국 생수시장의 효시였습니다. 당당히 '국민음료'가 나와야 하는 시점이고 그 책임이 있습니다. 100년의 역사 속에서 꾸준히 마실 거리라는 한 우물을 판 회사입니다. 그 철학의 깊이와 내공이 남다릅니다. 제가 웅진식품에서 처음 우리만의 마실 거리를 성공시키고자 했을 때의 몰입감 이상으로 어느 때 보다 몰입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미래의 성공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대업의 완성은 하이트진로만이 할 수 있고 해내야만 합니다."



    취임 100일, 세계적 한국음료 100년을 꿈꾼다
     
    모든 일에서 인연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 인연을 사람과의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시기의 관계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조운호 대표는 후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사람도 때가 있듯이 기업과 제품도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가 100년 가까이 국민소주, 국민맥주를 만들어 왔지만 그동안 주류 시장의 관점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 선두권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기도 모자랐다. 하지만 세계화를 준비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입장이자 100년 역사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는 그 확장성의 가치를 생각했을 때 음료를 생각할 시기가 된 것이다. 그는 그룹에서도 그 필요성을 느꼈기에 조운호라는 인물을 영입했으리라 본다. 짧지 않은 기업의 역사에서 수많은 위기와 유혹을 극복하며 한 길만을 추구했던 오너의 경영철학이 결실을 맺는 시점이다. 그 시점에서 운명적으로 조운호를 만났다. 그가 단순히 기업의 전문경영인의 입장을 너머 소명의식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표 취임 100일 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이트진로음료 내부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거세다. 우선 조운호 대표는 하이트진로음료 조직 변화의 첫 번째 키워드를 '통(通)'으로 설정했다. 고객과의 소통, 대리점과의 소통, 부서간의 소통, 조직 상하간의 소통을 먼저 중시했다. 때문에 그는 역피라미드 구조를 제시했다. 피라미드 꼭지점은 아래를 향하고 있다. 가장 아래에 조직의 리더가 있고 가장 큰 부분을 고객으로 둔다.


    현 정부의 키워드가 '적폐청산'이라면 하이트진로음료의 키워드는 '체증청산'이다. 하위 조직부터 대리점 영업사원까지 그간 운영에서 갑갑함을 느꼈던 체증부터 제거함으로써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그만큼의 애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내부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듣다 보니 늘 제품과 조직의 발전을 위해 고민해 왔던 제안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 발생의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비용을 투자로 인식 전환을 했습니다. 비용은 소모되어 사라지는 것이지만 투자는 더 큰 이익을 위한 든든한 발판이 되죠. 역피라미드의 가장 높은 곳에는 고객이 있습니다. 내부고객이든 외부고객이든 고객으로부터 문제의 해결점을 찾아냈습니다. 전국 대리점을 방문하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개선점과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받고 실제로 투자가 가능한 부분은 과감히 실행하고자 합니다. 조직개편도 마찬가집니다. 조직원이 일하기 원하는 부서에 대한 의견을 충실이 듣고, 또한 각 부서별 핵심 인력에 대한 배치에도 공을 들였습니다. 중복이 될 경우에는 충분한 조율을 통해 상호 이해를 이끌어 냈죠. 결과적으로 일하고 싶은 조직, 즐겁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세계적인 음료 코카콜라는 연간 40조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명실상부 글로벌 대표 음료의 자리를 확고히 지키고 있다. 조운호 대표의 꿈은 국민음료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코카콜라가 세계적 음료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과연 '명품음료'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만의 음료가 궁극적으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들의 건강과 실생활을 이롭게 만들 수 있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제 200여년이 넘은 세계 음료시장에서 한국의 음료가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 운명적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보통 100일은 생존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때문에 거대한 목표보다는 큰 충돌 없이 안전하게 안착하는데 중점을 두기도 한다. 일종의 '허니문' 기간인 것이다. 하지만 조운호 대표의 100일은 앞으로의 100년을 바라본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한 그의 도전이, 최초로 세계인이 사랑하는 한국 음료의 탄생으로 귀결될지 주목해 볼만 하다.



    출처 및 기사 링크
    리더피아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