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보단 낫다더니... 허탈한 연금펀드

    입력 : 2017.06.20 09:33

    [운용사들 "돈 안된다" 대충 굴려… 10년간 연평균 수익률 3.3%]


    상대적으로 소규모라 수입 적어 초보 매니저에게 할당하기도
    선진국선 글로벌 시장에 투자, 자산배분형 펀드 6% 수익률
    맘에 안드는 펀드 해지보다는 갈아타는게 세금면에서 유리


    회사원 양모(48)씨는 지난 2009년에 가입한 연금저축펀드로 노후에 얼마나 덕을 볼 수 있을까 알아보곤 아연실색했다. 9년간 1259만원을 불입했는데 현재 평가액은 1476만원으로, 총 217만원 수익에 그쳤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이 호황이어서 자산을 늘릴 호기라는데 최근 1년 수익률은 플러스이긴커녕 마이너스(-)2%로 적자가 나 있었다.


    양씨는 "성과가 형편없어 운용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봤는데, 매매를 거의 하지 않는 방치 수준이었다"면서 "연말정산 혜택만 보면 된다고 생각해 수익률은 안 따져봤는데 가만히 있다간 손해만 키우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중산층이 노후 대비 수단으로 많이 활용하는 연금펀드의 장기 성과가 부진해 허탈감과 실망을 안겨주고 있다.


    19일 제로인·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10년간 매달 초에 적립식으로 연금펀드에 투자했을 때 연평균 수익률은 3.3%로, 같은 기간 시중은행 적금에 가입했을 때의 이자 수익(연 3.32%)과 비슷했다. '오래 투자하면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고 가입했던 연금펀드가 은퇴 후 삶의 질을 높여주기는커녕 은행 적금에 넣어뒀을 때보다도 못한 농사가 되고 만 것이다.


    ◇"기다리면 적금보단 낫다더니…"


    저금리 시대에 수익을 높이려는 투자자들이 늘면서 연금펀드 규모는 최근 10조원에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노후 안전판'이라는 제구실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품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연금펀드는 투자자들이 세액공제 한도(300만~400만원) 내에서 소액을 넣는 상품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금펀드 가입자가 1년간 납입한 금액은 계좌당 247만원이었다. 펀드 규모에 비례해서 수입이 생기는 운용사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소규모인 연금펀드를 우선순위에 놓고서 전력투구할 만한 매력이 없는 셈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연금펀드를 간판 상품으로 육성하겠다고 나서는 운용사는 보지 못했다"면서 "능력 있는 스타 펀드매니저가 연금펀드 운용을 맡을 가능성은 낮다"고 털어놨다. 다른 펀드를 운용하는 매니저가 형식상 이름만 올려놓거나 심지어 경험이 없는 초보 매니저에게 할당되어 운용되는 경우도 있다.


    또 연금펀드는 성과가 나빠도 중간에 환매해서 돈을 찾으면 손해(기타소득세 16.5% 적용)가 크다. '세금 족쇄'가 채워진 상황에서 투자자가 돈을 뺄 가능성은 희박하니까 운용사가 사후 관리를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있다.



    상품만 팔아놓고 나 몰라라 방관하는 은행·증권사도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은행·증권사는 연금펀드 가입자에게서 매년 0.1~0.5% 정도의 판매 보수를 따박따박 떼어간다. 하지만 수익률이 나쁘니까 대책을 세워보자며 먼저 연락하는 판매사는 드물다. 고객과 분쟁이 날까 봐 꺼리는 것이다. 회사원 구모(45)씨는 "금융 지식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 연금펀드로 특정 국가나 자산에 과도하게 쏠림 투자하면 판매사에서 관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돈을 제대로 못 굴린 운용사도 잘못이지만, 판매사도 공범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했다.


    ◇선진국 연금펀드는 지구촌 투자가 대세


    "10년간 펀드에 투자했는데 수수료 빼니 남은 게 없다." 구성훈 삼성운용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이런 투자자 불만을 듣고 진땀을 흘렸다. 구 대표는 "연금펀드는 장기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비용을 최대한 낮추고, 자산도 골고루 배분하도록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펀드 선진국인 미국에선 근로자들이 글로벌 시장 전체에 골고루 투자하는 자산배분형 연금펀드(TDF)에 주로 가입한다. 이 글로벌 자산배분형 상품들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6% 수준이다.


    현재 가입 중인 연금펀드 수익률을 확인해 봤는데 실망스럽다면, 펀드를 해지하지 말고 다른 펀드로 갈아타는 것도 방법이다. 다른 연금펀드로 계약을 이전하면 해지하지 않았다고 인정받아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다.


    현재 운용되는 국내 연금펀드는 상품별 수익률 격차가 매우 크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현재 판매 중인 171개 연금펀드 중 1등과 꼴찌 펀드의 연평균 수익률 차이는 40%포인트에 달했다.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고문은 "고령화는 국가의 문제이기도 해서 개인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 정부가 세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면서 "연금펀드가 양호한 성과를 올려 은퇴자들의 노후 자산을 불려주면 노령수당 같은 정부의 복지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연금저축펀드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가입하는 금융 상품으로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300만~400만원) 혜택이 주어진다. 자산 운용사가 자금을 모아 운용하며, 원금 보장은 받지 못하지만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 최소 5년 이상 불입한 뒤 만 55세 이후 연금으로 받아야 하고 중도 해지 땐 공제받았던 세금을 내야 한다.